우치스, 견문이 넓어야 중화문화를 감상할 수 있다(2)

온라인팀 news@inewschina.co.kr | 2015-08-28 14:4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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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한시 되는 아시아계 다민족혼인

 

34세의 우치스는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의 이민가정에서 태어나 열살 때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 교외로 온 가족이 이사를 왔다. 물리전문가인 아버지는 NASA에서 일하고 어머니는 화학전문가로 오하이오주 주립대학 교수였다. 

 

부모님은 두 아이도 과학자가 되기를 바랐지만 우치스의 언니는 이러한 기대를 져버리고 엔지니어가 되고 우치스는 장래희망이 다양했다. “고생물학자가 되고 싶었는데 생각 해보니까 공룡은 멸종 된 것으로 끝인 거에요. 우주비행사도 되고 싶었는데 너무 어려울 것 같아서 포기했고요.” 


글쓰기는 우치스가 어려서부터 사랑에 빠진 후부터 변함 없는 취미이다. 10살 때 그녀는 어린이잡지에 첫 번째 이야기를 발표해 원고료 2달러를 받았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학교 문학간행물 에디터로 창작한 연극을 아동극축제 무대에 올리기도 했다.

 

하버드대학 영어학과 시절, 그녀는 졸업 후 기자 같이 글 쓰는 일을 꿈꾸기 시작했다. 한 조교의 격려로 그녀는 미시간 대학의 유명한 문예창작 석사 진학을 신청했는데, 이때도 머뭇머뭇 글쓰기를 업으로 삼겠다는 결심은 서지 않았다. 우치스는 “어머니가 당신이 강의하는 대학 영문과에 알아 보더니 문예창작 석사학위를 따면 대학에서 작문강의를 할 수 있다고 하셔서 공부했죠.”라고 고백했다. 


그러나 7년전 엄숙하고 진지하게 <소리 없는 고백>을 쓰면서 우치스는 이야기에 필요한 소재가 그녀 자신이 살면서 직접 겪었던 일임을 발견했다.그녀의 집은 피츠버그의 백인이 주로 거주하는 지역에 있어 매우 고립돼 보였다. 

 

언니의 말을 들어보니 이웃집 아이가 그녀의 집 우체통에 폭죽을 넣어 놓은 적도 있다고 했다. 그녀가 태어나기도 전의 일이다. 클리블랜드는 상대적으로 다양한 민족이 모여 사는 곳으로 아시아계 사람들이 많진 않지만 백인천하고 아닌 지역이었다. 이곳 주민들은 종족문제에 대해 깊이 이해하고 있었다.

 

이곳 클리블랜드에서 우치스는 종족문제를 실감하기 시작했다. 11세이던 해의 어느 날 그녀는 홍콩에서 여행 온 외숙모, 외삼촌과 함께 번화가로 쇼핑을 갔다. 가게를 들어선 순간 술 취한 사람이 그들에게 달려들며 “중국, 한국, 아니면 다른 나라로 꺼져.” 라고 소리쳤다. 


“그때 저도 너무 놀라고 외삼촌, 외숙모님도 어쩔 줄 모르고 있는데 한 백인여성이 와서 그 사람을 말려줬어요.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 용감히 나서서 그 사람을 말린 사람이 저였다면 정말 좋았을 것 같아요.” 우치스가 말했다. 


고등학교시절, 우치스는 학교의 ‘민족관계활동동아리’에 가입해 여가시간이면 친구들과 함께 민족문제를 연구하고 초등학교나 중학교를 방문해 어린 아이들에게 민족관계를 가르쳤다. 그때에 비하면 오늘날의 미국 민족차별양상은 크게 달라졌다. 

 

우치스는 “그때 우리가 주목하던 민족관계는 소수민족 아이들이 학교에서 친구들을 괴롭히는 등 더 직접적이고 두드러진 문제였어요. 하지만 지금은 미국의 민족관계문제가 달라져서 직접적이고 눈에 띄는 차별보다는 드러나지 않는 차별이 점점 많아지고 있어요.”라고 설명했다. 


우치스 역시 이런 드러나지 않는 차별을 당한 적이 있다. “넌 어디서 왔니?”라고 묻기에 “미국”이라 대답했더니 상대가 “아니, 진짜 고향이 어디냐고?”라고 되물었다. 외모만으로 그녀를 외국인이라 단정하고 이야기할 때 일부러 천천히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었다.

 

드러나는 차별에 비해 드러나지 않는 차별에 대응하기가 어렵고 차별이라 할 수 없다고 보는 견해도 있지만 우치스는 이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녀는 <중국신문주간>과의 인터뷰에서 “이런 사람들은 실제로 악의는 없지만 적어도 조금만 신경을 써 소수민족의 상황을 이해하고 아시아 민족이 새로운 이민자, 본토박이 미국인 등 다양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지적 헸다. 


현재와 과거를 비교해 보면 미국사회의 또 다른 뚜렷한 변화는 다민족혼인을 대하는 태도이다. 미국은 1967년에야 다민족혼인을 합법으로 인정했다. 갤럽(Gallup)이 1958년부터 진행중인 다민족혼인관련 연례 설문조사에 따르면 1997년 다민족혼인을 인정하는 사람은 겨우 절반이 넘었다. 우치스는 이러한 결과에 매우 놀랐다. 오늘날은 <소리 없는 고백>의 다민족혼인가정이 이류(异类)로 받아들여지는 운명이 크게 변한 것을 체험했기 때문이다. 


우치스와 그녀의 백인 남편은 대학시절 알게 되어 사귀었다. 그녀의 친구들도 대부분 다민족결혼을 했다. 가족이 모여 식사를 할 때 우치스의 어머니는(아버지는 몇 년 전에 돌아가셨다) 식탁에서 꼭 뜨거운 물을 마시는데 그녀의 남편은 시원한 물을 마시는 등 가정 안에서의 문화차이는 여전히 존재한다.

 

그녀의 책이 성공한 후에도 변호사인 남편은 서양사람들의 방식대로 매우 직접적으로 기쁨을 표현한 데 반해 그녀의 어머니는 동양 어머니들의 방식대로 간접적으로 자랑스러움을 표현했다. 우치스는 기자에게 “남편 같으면 ‘여보, 난 당신이 정말 자랑스러워.’리고 말하고는 제 책을 사무실의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두겠지만 어머니는 책을 슬그머니 모든 친구분들께 보낼 거에요.”라고 말했다. 


다민족결혼에 대한 사람들의 이상한 시선은 거의 없어졌고 다문화가정에 태어난 아이들이 소설의 세 남매처럼 가정환경 때문에 마음고생 할까 더 이상 걱정하지 않는다. 우치스는 “언젠가 아들이 커서 이 책을 읽으면 책의 이야기가 우리 집 이야기가 아닌 게 정말 감사하다고 할 거에요.”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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