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 유럽의 심장을 관통하다

우익사상과 성전주의(Jihadism)의 두 가지 극단적인 사상의 상호교차와 영향으로 유럽사회는 앞으로 해결되지 않는 국면을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온라인팀 news@inewschina.co.kr | 2016-06-23 17:4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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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왕치룽(王齐龙)


두 차례의 폭발음 후 터미널의 유리 외벽이 깨지며 짙은 연기가 솟아올랐고 공항 안의 관광객과 직원들이 황급히 대피했다.


현지시각 2016년 3월 22일 오전 8시. 벨기에의 수도 브뤼셀 북동쪽 교외에 있는 자벤텀(Zaventem) 공항에서 두 차례 폭발이 일어났다. 그 후 1시간 10분여만에 EU본부가 있는 인근 말베이크(Maelbeek) 지하철역에서 세 차례의 폭발이 일어났다. 생존한 승객들이 놀란 울부짖는 장면이 SNS를 통해 전파되었다.


<중국신문주간(中国新闻周刊)>이 보도할 때까지 세 차례의 테러로 최소 34명이 사망하고 200명이 넘는 부상자가 발생했다.

▲ 3월 22일 독일 프랑크푸르트공항. 완전 무장한 경찰이 순찰을 하고 있다. 벨기에의 수도 브뤼셀에서 테러가 발생한 후 유럽 각국은 공항, 역 등 유동인구가 많은 공공장소의 안보를 강화했다. 사진/IC

공항에서의 두 차례 폭탄테러 직후 벨기에 정부는 테러재발방지를 경계등급을 4급으로 높인다고 발표했다. 사건 당일 브뤼셀의 대중교통이 마비되고 휴대전화 신호가 중단되었다. 안보경계등급은 3일 후에야 3급으로 낮아졌다.


벨기에에 본부를 둔 유럽전략정보안보센터(ESISC) 제품팀장이자 안보전문가 이프게냐 고프체바(Evgenia Gvozdeva)는 <중국신문주간>과의 인터뷰에서 “안보 비상조치로 도시 전체가 거의 마비상태였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테러의 영향은 벨기에에 그치지 않았다.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등 유럽국가가 안보조치를 강화 헸다. 2015년 11월 13일 파리테러사건 후 테러의 먹구름이 유럽을 뒤덮고 있다.


잠재적인 위험 더 많아


소식통에 따르면 벨기에 브뤼셀에는 성전주의 세력의 네트워크가 활동하고 있으며 소규모 비밀조직이 파리의 테러사건과 같은 규모의 테러를 꾸미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파리 연쇄 테러사건의 주범인 살라흐(Salah)도 브뤼셀에 은거 중인 것으로 확인되었다.


3월 15일 연합조사 중인 벨기에와 프랑스 경찰 당국이 브뤼셀 남부 포레스트의 아파트를 돌격수사 하던 중 용의자와 총격전 끝에 불법체류 중인 알제리 국적의 용의자가 총에 맞아 숨지고 나머지 용의자 두 명은 도주했다. 경찰병력 1,000명을 동원해 대대적인 수색을 펼쳤으나 살라흐 등 중요인물의 행적은 찾지 못했다.


사건 후 벨기에 경찰 당국은 도주한 두 명의 용의자가 그 후 브뤼셀 폭탄테러를 일으킨 엘 바크라오위(El Bakraoui) 형제임을 확인했다.


수사 중 경찰 당국은 몰렌베이크에서 6마일 정도 떨어진 아파트에서 IS 깃발과 극단적인 종교사상의 책, 그리고 파리테러사건 용의자 살라흐의 지문을 발견했다.


이 유럽의 최우선 지명수배자는 3일 후 벨기에 경찰 당국이 브뤼셀 서북부 몰렌베이크를 기습수사 하던 중 체포되었다.


살라흐의 체포로 벨기에여론이 고무되었다. 벨기에당국과 안보전문가들은 전부터 살라흐가 벨기에에 남아있다면 브뤼셀에서 테러를 일으킬 것이라 경고했다. 살라흐는 부인으로 일관했지만, 그가 체포된 지 4일째 되던 날 브뤼셀에서 연쇄 폭탄테러가 발생한 것이다.


이프게냐 고프체바는 “살라흐가 체포되면서 테러리스트들이 자신의 계획이 저지당할까 테러를 앞당겨 시행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EU 본부와 많은 국제기구가 모여있는 브뤼셀은 ‘유럽의 수도’라 불린다. 브뤼셀이 ‘중상’을 당하면서 많은 사람의 ‘신경’을 건드렸다.


벨기에 반(反)테러전문가 피터 반 오스타인은 <중국신문주간>과의 인터뷰에서 앞으로 몇 달 동안 유럽에서 테러사건이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경고했다.


벨기에 경찰 당국의 테러용의자 수색이 계속되는 가운데 파리의 테러사건에 가담한 용의자 모하마드아브리니(Mohamed Abrini)는 현재까지 종적을 감춘 상태이다.


외부에서는 도주한 용의자가 또 다른 테러사건을 꾸밀까 매우 걱정하고 있다.


미국 반(反)테러전문가 클린트 와츠(Clint Watts)는 파리의 테러사건 발생 후 기고문을 통해 이미 발생한 테러사건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라며 ‘모든 테러리스트에게는 무기제공, 정찰, 통신, 협조 등 보통 3~4명의 보조인력이 지원된다’고 소개했다.


그는 또한, 브뤼셀 연쇄 테러사건은 파리테러사건의 후속편일 뿐 진행 중인 테러계획이 더 있는지는 단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3월 22일 벨기에의 수도 프뤼셀 근교 자벤텀공항에서 폭탄테러가 발생한 후 한 남성이 옷에 피가 묻은 채 대피하고 있다. 사진/IC

몰렌베이크


3월 18일 벨기에 경찰 당국이 브뤼셀 북서부 몰렌베이크의 한 주택에 들어가 수색하던 중 주택에 숨어있던 살라흐가 큰길로 도주하다 경찰이 쏜 총에 다리를 맞고 체포되었다.


소식을 들은 몰렌베이크의 청년들이 몰려와 살라흐는 ‘영웅’이라 외치며 경찰을 향해 병 등을 던지며 분풀이를 했다.


현장의 분위기가 갈수록 험해져 경찰 당국은 질서유지를 위해 폭력진압 병력을 추가로 파견할 수밖에 없었다.
살라흐가 체포된 것은 파리테러사건 126일 만이다. 이 기간에 파리테러사건에 직접 가담하고도 유일하게 건재하던 용의자인 그는 유럽 각국이 공동으로 좇던 ‘최우선 지명수배자’이다.


그는 파리 북부 프렌치 체육관에서 자살테러를 계획 중이었으나 마지막 결정적인 순간에 용기가 없어져 브뤼셀에 있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을 벨기에로 도주시켜달라고 부탁했다.


그 후 살라흐는 친구와 가족들의 도움으로 브뤼셀 몰렌베이크와 인근 지역 이곳 저곳을 전전하며 친구와 가족들이 보내오는 음식으로 허기를 채웠다.


벨기에 연방검사 프레드릭 반 리우(Frédéric Van Leeuw)는 3월 19일 조사결과를 공개 발표하는 자리에서 “살라흐가 사전에 마련되어 있던 관계망의 도움으로 짧은 시간에 계획을 변경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올해 26세인 살라흐는 대부분 시간을 몰렌베이크에서 보냈다. 형 이브라힘(Ibrahim)과 현지에서 운영하던 술집 문을 닫은 것도 파리 테러사건 2주 전의 일이다.


브뤼셀 시내 번화가에서 운하 하나의 거리밖에 떨어져있지 않은 작은 도시는 한때 브뤼셀의 오래된 공업지대로 외지의 이민자들이 많이 사는 곳이다. 그들의 대부분은 살라흐 가정같이 모로코의 무슬림 집단이다.


40년이 넘는 발전을 거쳐 몰렌베이크에는 ‘모로코 무슬림 커뮤니티’가 생겨났다. 현지의 모로코 상인들은 몰렌베이크가 자신들의 땅이라 생각하며 이름을 통해 조국 모로코를 기리고자 이 지역을 ‘모로코코(Molokko)’라 부르기까지 했다.


그러나 산업구조 조정이 진행되면서 몰렌베이크는 취업의 기회가 점차 줄고 많은 무슬림 청년들이 높은 실업률 및 사회부적응의 문제와 마주하게 되었다.


이프게냐 고프체바는 <중국신문주간>과의 인터뷰에서 “살기가 어려워지다 보니 이민자의 자식들이 자연스럽게 급진 이슬람선전의 표적이 된다”고 전했다.


몰렌베이크의 이슬람사원 20여 곳 중 일부에서는 극단적인 성전사상이 선전되고 있다.


프리랜서기자 힌디 프라이히(Hind Fraihi)는 2005년 몰렌베이크의 무슬림 커뮤니티를 심층 조사 한 적이 있다. 사회학 학생처럼 차려 입고 당시 브뤼셀 무슬림 커뮤니티의 정신적 지도자이자 벨기에 이슬람센터 창립자 아야츠 바삼(Ayachi Bassam)을 인터뷰했다.


힌디 프라이히와 대화에서 아야츠 바삼은 자신이 성전주의에 동의한다고 숨김없이 이야기했으며 빈곤하며 언론의 자유가 없는 아랍국가에서 성전(圣战)을 일으켜 이슬람혁명을 장려해야 한다고 직언했다.


힌디 프라이히는 “아야츠 바삼은 ‘아프가니스탄의 문’이라 불린다.”며 그가 몰렌베이크의 청년들에게 ‘벨기에에 남아있지 말고 아프가니스탄으로 가서 싸우라’고 권했다고 밝혔다.


10년 후 알카에다와 연계된 아야츠 바삼은 시리아를 전전했다. <워싱턴 포스트(The Washington Post)>지 보도에 따르면 2015년 69세 고령이 된 아야츠 바삼은 ‘이슬람전선(Islamic Front)’ 조직의 일부 단원을 이끌고 IS 무장세력과 함께 시리아 정부군과 교전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힌디 프라이히는 벨기에 연방정부가 벨기에 이슬람센터가 성전주의자 모집에 사용되고 있음을 알고 센터의 일부 활동을 제한했으나 완전히 폐쇄하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2006년 힌디 프라이히는 자신의 조사경험을 <침투: 나는 어떻게 이슬람 극단주의자가 되었나(Infiltrée: parmi les islamistes radicaux)>라는 책으로 엮었다. 책을 통해 이슬람 극단주의 사상이 무슬림사회에 퍼지는 문제가 사회적으로 중시되길 바랐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벨기에에서는 이슬람교, 종족융합, 이민과 관련된 문제들을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지 못해요.”


파리와 벨기에의 테러사건뿐만 아니라 2001년 탈레반의 영웅적인 인물 샤 마수드(Shah Massoud) 반대세력의 암살시도, 2004년 3월 마드리드 열차폭탄테러, 2014년 브뤼셀 유대인박물관테러, 2015년 1월 프랑스 주간지 <찰리(Charlie)> 테러와 파리 유대인 식료품 잡화점테러 등 모든 테러사건이 몰렌베이크와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러나 성전주의는 몰렌베이크 하늘만 덮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이프게냐 고프체바는 <중국신문주간>과의 인터뷰에서 수십 년 동안 급진이슬람세력 네트워크가 오랜 세월 벨기에에서 운영되고 있으며, 주로 브뤼셀의 저소득이민자 커뮤니티와 기타 도시에 집중되어 있다고 밝혔다.


런던대학 국왕학원 국제 급진주의 연구센터의 데이터에 따르면 시리아나 이라크로 향해 ‘성전’에 가담하는 인구가 100만 명당 40명에 달하는 등 벨기에의 IS 가입인구비율이 서유럽국가에서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벨기에정부는 이 나라에서 온 ‘성전(圣战)전사’가 500명가량에 이르리라 예측했다.


포풀리즘의 득세


벨기에 정부가 안전을 이유로 평화여행을 취소한 상황에서 3월 27일 많은 사람이 아침부터 수도 브뤼셀 시중심의 익스테인지 스퀘어(Exchange Square)에 모여 브뤼셀 테러희생자들에 대한 애도를 표했다.


그러나 차분해야 할 추모의식이 우익세력 때문에 혼란에 빠졌다. 검은 옷을 입는 남자 수백 명이 극단주의 세력 IS에 반대한다고 찍힌 깃발을 들고 광장을 몰려들었다. 그 중에는 보닛과 익명자의 가면을 쓰고 있는 사람이 많았다.


이 검은 옷의 시위자들은 자신이 ‘축구광’이며 ‘정치와 무관하다’고 주장하지만, 조문객 중에 있는 무슬림 여자를 볼 때마다 일부러 저지하고 나치 식으로 경례하며 모욕적인 구호를 외쳤다.


눈앞의 혼란스러워지는 광경에 현장에서 경계하던 경찰이 개입해 물 대포로 우익시위자들을 몰아낼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오늘 이곳에 온 것은 평화를 위해, 사람들의 우애를 위해 왔다. 어떤 우익세력의 행동도 일어나서는 안 된다. 시간과 장소 모두 잘못되었다.” 52세 테오필(Theophile)이 말했다.


시리아 내전으로 인한 난민 위기가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는 데다 테러의 그림자까지 가시지 않고 있다. 이에 사회가 불안정하며 위협을 받고 있다 느낀 일부 유럽 국민이 우익사상으로 기울면서 유럽의 극단 우익세력이 끊임없이 커지고 있다.


3월 13일 끝난 독일의 3개 주(州) 의회선거에서 메르켈 총리가 이끄는 기독교민주연합이 참패하며 바덴뷔르템베르크와 라인란트팔츠에서의 주도권을 잃었다.


반면 2013년 창당한 우익정당 독일 선정당(选项党)은 난민수용정책을 거부한다는 분명한 기치로 유권자들의 많은 지지를 얻으며 앞서나갔다.


기독교민주연합이 유일하게 승리한 작센안할트에서마저 선정당과의 지지율은 5.6%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전에는 프랑스에서도 우익세력이 맹위를 떨쳤다. 작년 12월 있었던 프랑스 지역선거에서는 마린 르 펜(Marine Le Pen)이 이끄는 극우정당 ‘국민전선(Front National)’이 1차 투표에서 13개 지역구 중 6개에서 앞섰다.


‘국민전선’은 2차 투표에서 최종적으로 역전 당해 13개 지역구에서 모두 패배했지만, 우익세력으로서의 급부상에 유럽 전역의 정계가 놀랐다.


“유럽은 변해야 합니다.” 이탈리아 랜지(Renzi) 총리는 프랑스 지역선거에서 국민전선이 앞서고 있다는 것을 알고는 자신의 SNS에 ‘노선을 바꾸지 않으면 유럽 행정기관은 펜(Pen)이나 그녀와 비슷한 사람이 주도하게 될 것이다’라고 남겼다.


“전략적인 계획이 부족하다면, 특히 경제성장 부분에서 포퓰리즘이 유행해 결국 머지않아 대권을 잡게 될 것이다.”


중국 인민공안대학 반(反)테러학부의 우샤오중(吴绍忠) 교수 역시 유럽에서 극단 우익사상이 고개를 드는 현상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그는 <중국신문주간>과의 인터뷰에서 “우익사상은 매우 배타적이며 극단적이다. 따라서 한번 활약하면 유럽사회에서 소외되고 주류사회에 들지 못한 이민자들, 무슬림 집단이 자신들이 더욱 배척당하고 고립되었다고 느끼게 된다. 그 결과로 극단적인 사상을 받아들여 극단주의자가 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또한, 우익사상과 종교극단주의가 서로 부딪히면서 영향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상대의 성장을 서로 촉진하고 나아가 사회갈등이나 테러를 일으켜 향후 유럽사회가 반드시 직면해야 할 곤경과 난제가 될 것이다.


이프게냐 고프체바 역시 계속되는 테러로 극우사조와 사회 양극화 심화는 피할 수 없다며 “오늘날 서유럽식 민주와 EU의 핵심이념이 모두 심각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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