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얼굴의 샌프란시스코

여름에만 피는 국화 — 샌프란시스코의 여름은 늦가을보다 춥다
온라인팀 news@inewschina.co.kr | 2016-04-05 14:2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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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리캉캉(李抗抗)

 

내 기억 속의 샌프란시스코는 언제나 서늘한 안개에 갇혀있는 도시이다. 


내가 사는 곳은 도시의 북서쪽 한 켠 바다에 인접한 절벽 가이다. 차를 몰고 집을 보러 갔던 날이 생각난다. 자욱한 바다안개 속으로 어렴풋이 보이는 길고 가는 도로와 끝없이 펼쳐진 모레사장이 오래된 사진 속 풍경처럼 색이 바랬다. 길가에 이어지는 팥처럼 붉은색, 게딱지처럼 파란색, 담뱃재 색, 초록색의 조그마한 집들은 멀리서 보면 어슴푸레한 무지게 같고, 가까이서 보면 다닥다닥 붙어있는 성냥갑 같다. 운해 위에 떠있자면 ‘인간세상’은 더욱 보잘것없고 정신 없어 보인다. 


이곳은 아웃리치먼드 구로 근처에는 골든게이트 공원 (Golden gate park)이 있다. 공원에 여러 번 가봤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그곳의 국화이다. 


몇 년 전 한여름에는 친구 결혼식에 초대받아 사우스캘리포니아에서 차를 몰고 샌프란시스코를 찾았다. 아주 아찔한 여행이었다. 길이 거의 산길이라 운전을 해서 지날 때 오래된 차의 브레이크페달이 심하게 마모되어 불이 붙은 것이다. 덕분에 이른 아침에 지도 한 장을 들고 도시의 반 정도를 가로질러 차를 렌터카를 알아보러 가야 했다. 7월이되면 바다에 인접한 아웃리치먼드 구는 음산하고 습하다. 사람들은 스웨터를 입고 벨벳 외투를 입은 사람도 있는데 나는 실크스커트차림에 길까지 잃었다. 바다안개 사이로 바람이 불어오면 땅 속으로 파고들어가고 싶은 생각이 간절할 정도로 추웠다. 나중에 듣자 하니 마크 트웨인(Mark Twain)은 “내가 겪은 가장 추운 겨울은 샌프란시스코의 여름이다”라고 했다. 어디에서 한 이야기인지 의심의 여지가 있고 억지로 끌어다 붙인 느낌도 없진 않지만 이보다 더 적절할 수 없는 표현이다. 그렇게 걷다 보니 도시와 이어져있는 골든브리지 공원으로 들어섰다. 춥고 급하다는 생각 밖에는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갑자기 울긋불긋 맑고 아름다운 풍경이 눈앞에 다가왔다. 국화 수백 송이가 흐드러지게 핀 거대한 국화 밭이었다. 코스모스, 달리아, 소국, 자국, 흑국, 자국, 페레존…… 꽃잎이 실처럼 길고 가는 국화도 있고, 떨기를 이룬 모습이 수정유리구슬 같은 국화도 있고, 모란작약처럼 기품 있고 화사한 국화도 있다. 이름을 모르고 들어본 적도 없는 국화는 더 많다. 이 국화 밭은 국화를 정성스레 심고 길러 꽃줄기마다 작은 대나무 막대기로 받치고 옆에는 나무팻말을 두어 품종과 심은 날짜를 적었다. 한참을 머물다 보니 돈 없고 추운 현실이 한 순간에 잊혀졌다—이렇게 아름다운 꽃밭을 길가에서 우연히 만나다니 그야말로 꿈을 꾸는 것 같았다. 


2년후 우리는 샌프란시스코로 이사를 갔다. 가을이 되어 특별히 시간을 내 골든브리지 공원으로 국화를 보러 갔다. 그러나 꽃은 없고 온통 쓸쓸한 가지와 잎뿐이었다. 샌프란시스코의 국화는 여름—가을 한창때 보다 추운 여름에만 핀다는 사실을 그제야 알았다.


샌프란시스코로 이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우리는 신나게 시 중심으로 놀러 나갔다. 도착할 때쯤 출출해진 우리는 갑자기 베트남음식이 먹고 싶어 GPS로 두 블록 떨어진 곳의 베트남음식점 한 곳을 찾아갔다. 


코너 몇 개를 도니 뭔가 잘못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먼저 하늘이 갑자기 좁아지더니 집들도 허름해졌다. 거리에는 서서히 쓰레기더미가 나타나고 가게 문과 창문 위로 뜬금없이 철책이 솟아있었다. 가장 과장된 것은 길가에 있던 대리석교회였다. 교회의 대문은 열려 있었지만 앞뜰의 돌계단까지 모두 철망으로 봉해져 있어 감옥인지 신의 전당인지 몰라볼 정도였다. 거리의 사람들은 남루한 행색으로 떠도는 혼처럼 느릿느릿 인도를 걸어갔다. 거리에는 온통 잠자는 떠돌이와 덩그러니 거리를 지치고 있는 술집아가씨, 태연하거나 의분에 찬 정신병자 몇 명이었다. 


조금 더 가서 베트남음식점에 도착했지만 역시 문 앞에 철조망이 세워져 있었다. 차에서 내리자흑인 한 명이 욕을 하며 앞을 지나며 되는대로 말했다. “5콰이(块) 있어?” 나는 거지도 쿼터(Quarters, 0.25달러)를 구걸하고 입을 열자마자 5콰이를 요구할 만큼 높은 샌프란시스코의 생활수준에 놀라 ‘없어요.”라고 대답했다. 그녀는 더 이상 얘기 없이 발끝이 뒤꿈치에 닿을 정도로 우리 뒤를 바짝 따라오더니 사거리 두 개를 지나서야 홀연히 떠났다.


이 일이 있은 후 지도를 찾아보고야 그곳이 허름하고 범죄율이 높기로 유명한 전설의 ‘텐더로인(Tenderloin)’ 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현지 주민들은 요령을 잘 아는 듯 거리에서는 옷을 제대로 차려 입은 사람을 거의 볼 수 없었다. 나중에 친구에게 들은 이야기에 따르면 피자가게에서 배달을 하는 남자아이도 그곳으로는 배달 가기를 꺼린다고 한다. 돈 몇 푼 받자고 위험을 무릅쓰고 그곳까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 그날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허름하고 위험한 환경이 아니라 거리에서 마주친 사람들의 눈빛—한번 보면 내가 자신들의 세계에 끼어든 불청객이줄 안다는 듯한 예리하면서도 말없이 훑어보는 눈빛 이었다. 그 눈빛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우리는 결국 베트남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하지 못하고 주린 배로 주차장으로 돌아와 맥없이 차를 몰고 갔다. 


신호등 두 개를 더 돌아가니 시중심의 쇼핑지구가 나왔다. 수십 층 높이의 5성급 호텔과 고대 로마를 떠오르게 하는 건물의 예술학원, 별처럼 반짝이는 다양한 명품전문매장이 처음 시야에 들어왔다. 타파니, 루이비통, 샤넬, 아르마니… 눈을 땔 수가 없었다. 현대적인 미니멀리즘으로 설계된 매장에는 검은 정장과 짙은 회색 셔츠를 입은 경호원들이 모델처럼 위엄 있고 기세 등등하게 서있었다. 각 브랜드 백 들이 유리 장위에 얌전히 놓여있는데, 하나같이 가격표 없이 정교한 전자자물쇠로 잠겨있었다. 세계 각 브랜드가 모여있는 ‘명품거리’에서 제일 이상했던 것은 3층짜리 견직물 상점이다. 샤넬 치마와 버버리 트랜치코트를 입고 루이비통 백을 든 젊은 여성들이 3층 구석에 모여 자신의 헝겁인형에게 원피스 지어 입히는 법을 배우고 있었다. 


미국의 다른 여러 도시들과 달리 샌프란시스코는 먹거리의 도시이다. 각국 식당의 치열한 경쟁이 국내와 맞먹는다. 필자는 북동부의 제노바 구에서 손으로 뽑은 파스타를 먹은 적이 있는데, 반죽을 할 때 여러 가지 채소육수를 넣어 알록달록 색을 내 색깔마다 소스와 잘 어울렸다. 금융가에 들어선 고층건물들 아래서는 우연히 만난 푸드 트럭에서 먹어본 프랜치 에그푸딩 내 생에 가장 맛있었다. 이중 일본타운과 차이나타운은 가장 특색 있는 상업지구 두 곳이다. 


일본타운은 넓지 않아 치밀하게 계획되어 있다. 이곳의 주민은 대부분 일본계 젊은이들이며 거리와 아파트마다 심플하고 깔끔한 맛이 있다. 건물 한 동에 재미있는 가게와 식당이 모여있는데, 1층에는 작은 가게들이 빽빽이 늘어서있고 미국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귀여운 머리장식과 손수건, 정교한 칠기와 목각인형, 다양한 맛의 다이후쿠(大福饼)와 아이스크림이 있다. 2층에는 내가 좋아하는 라면가게와 카페가 있다. 


조그마한 라면가게에는 깊은 붉은색 종이 등이 걸려있다. 입구의 쇼윈도 안에는 가끔 아저씨 한 분이 앉아 급하지도 느리지도 않게 손으로 밀가루 반죽을 밀어 라면기계에 넣는다. 라면기계는 커다란 목제기계로 고대의 방직용 베틀처럼 길고, 안의 면은 종류마다 맛있으면서 담백한 것이 밤에 생각하면 잠도 안 올 정도로 맛있다.


카페는 라면가게 맞은편에 있었는데 라면가게보다 작다. 가게로 들어가면 미야자키 하야오(宫崎骏) 세계로 발을 내디딘 것 같다. 사실 이곳은 미야자키 하야오의 카페가 아니지만 분위기는 그가 쓴 이야기와 매우 비슷하다. 안팎에서 밀어 움직이는 허리높이의 유리문, 원목의 벽, 벽 쪽으로 붙어 줄지어 놓여있는 유럽풍의 작은 의자와 원탁, 안에 흰색 레이스 테이블보가 깔려있는 진열장, 그 위에 뿌려져 있는 마른 장미꽃잎. 낮인데도 카페 안은 황혼처럼 어둑어둑하다. 끝 쪽에 있는 큰 창문으로 비치는 부드러운 햇빛 한 조각이 다음에는 고양이남작이 접시를 받쳐들고 탁자와 의자 깊은 곳에서 나를 향해 걸어 오거나 검은 머리카락의 하울이 긴 다리를 뻗은 채 창문 앞에 비스듬히 기대어 책을 보고 있을 것 같다. 카페는 작은 체구의 노여사가 혼자 경영하고 있다. 여사는 보통 카운터 뒤에서 허리를 굽힌 채 바쁜데, 소리하나 없이 필요할 때만 웃음 가득 머금은 얼굴로 고개를 내민다.


같은 길 맞은편에는 ‘스테이트버드 프로비전(State Bird Provision)’이란 이름의 식당이 있다. 두 달 반 전에는 미리 예약을 해야 저녁식사 자리를 예약할 수 있다. 우리가 간 그날은 30분 전에 도착했는데 입구에 벌써 20~30명이 길게 줄을 서 있었다. 물어보니 몇 달 전부터 예약한 사람들이라 한다!


그날 밤은 매우 추웠고 식당의 불빛은 매우 따뜻했다. 식당은 주방과 이어져 있고 창문이 통 유리로 되어있어 밖에서 요리사들의 움직임 하나하나를 볼 수 있었다. 조리기구는 모두 구색이 맞지 않는 주철이나 조도(粗陶)이며 각양각색의 어두운 색 접시가 교토(京都)에서 전해져 온 청수소(清水烧)처럼 수수하면서도 고풍스럽다.


식당은 양식, 증식, 일식이 골고루 차려진 뷔페로 종업원이 작은 접시에 담겨 있는 모양과 색이 다양한 요리들을 들고 돌아다니며 대접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껍질 벗긴 감 샐러드와 삼겹살 큐브 튀김이다. 삼겹살튀김은 동파육과 맛이 비슷하지만 마지막에 기름에 다시 한 번 굴려 바삭 하면서도 달고 부드러웠다. 단지 접시에 조그만 조각 하나씩 밖에 없다는 게 아쉬웠다. 두 접시를 시켜먹자 종업원이 나를 알아보는 바람에 나도 결국 달라고 하기가 부끄러워졌다. 


샌프란시스코의 차이나타운은 ‘올드타운(Old Town)’과 ‘뉴타운(New Town)’ 두 곳으로 나뉜다. 샌프란시스코로 이사한지 얼마 되지 않아 현지주민이 “먹거리는 꼭 싸고 질 좋은 ‘뉴타운’에서 사요. ‘올드타운’은 외국인들을 하도 속이니 말이야.”라고 충고해 주었다. 


이것은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올드타운’은 시내 중심에 위치해 관광객들의 필수코스였다. 입구에는 ‘天下为公(천하위공, 세상은 공평하다)’라는 글과 함께 쑨원(孙文)의 낙관이 찍힌 액자가 서있다. 안으로 들어가면 화려하고 요란한, 옛 것도 새것도 아닌 나무문이 내가 잘 아는 중국이 아닌 황비홍(黄飞鸿)영화에 있는 듯 한 느낌이 든다. 가게마다 도자기 꽃병, 산호, 비취를 팔아 눈길 닿는 곳마다 금빛이 찬란해 어지러울 정도로 눈부시다. 피처럼 붉은 산호, 형광초록의 비취와 함께 영어를 구사하는 관광객들이 광동어를 말하는 주인과 열심히 가격을 흥정하는 모습을 항상 볼 수 있다. 대충 훑어보면 ‘룩푹(福珠, Luk Fook)’ 지점을 제외하면 예전 차이나타운의 Grand 거리를 통틀어 진품은 거의 볼 수 없다. 유일하게 손꼽을 수 있는 곳이 이곳의 중국식당으로 미국의 다른 곳의 중국식 패스트푸드보다 중국 본고장의 맛과 비슷하다. 


‘뉴타운’은 도시의 북서쪽자락에 위치하며 골든게이트 공원에서 멀지 않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풍경도 영화 같다. 다른 점이 있다면 지아장커(贾樟柯) 감독 카메라에 담긴 중국의 모습일 뿐. 거리에는 각종 먹거리시장, 수산물가게, 생활용품점, 포장마차가 있고 잠옷차림으로 바구니를 건 등 굽은 노인들이 박작박작 산책을 한다. 이곳의 풍경은 항상 음침하고 허름하다. 갖가지 뜻 모르는 사투리가 소금에 절인 해산물의 비린내, 산뜻하고 아름다운 채소과일과 함께 잿빛 거리에 활기를 더한다—이것이 어쩌면 생명의 본질이리라. 이렇다 할 아름다움 없이 그저 간절히 살아있는 것. 필자는 이상하게 이곳이 좋다. 여러 채소를 넣은 크고 작은 가방을 들고 집으로 돌아오면 마음까지 든든하다. 


대학 때 처음 읽은 로맹 롤랑(Romain Rolland)의 <장 크리스토프(Jean Christophe)>에서 ‘올리브(Olive)’가 가족을 따라 수도로 이사와 묘사한 파리의 모습은 ‘매우 실망스럽다’. 화려한 베르사유 궁전, 웅장한 개선문, 낭만적인 센강이 아닌 좁고 지저분한 골목과 빈민촌으로 이뤄진 파리의 모습을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위대한 도시라도 앞문이 아닌 뒷문으로 들어가보면 모두 그렇다고 했다. 당시 실제로 파리에서 생활해 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이 구절을 읽고 실망스럽기만 했는데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깊이 공감이 가는 이야기다. 


도시에 앞면과 뒷면, 그러니까 사람들 앞에서의 모습과 뒤에서의 모습이 있는 것이 삶 자체와 같다. 넓고 산뜻하고 정교하고 호화스러운 모습과 좁고 지저분하고 메마르고 절망적인 모습 모두가 샌프란시스코의 진정한 모습이다. 어디에서 자랐느냐에 따라 달라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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