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문학상, 문학과 논쟁의 동시 복귀

스캔들과 1년간의 멈칫거림 끝에 노벨 문학상이 돌아왔고, 두 작가에게 2018년과 2019년의 노벨문학상이 잇달아 수여되었다. 수상을 주관하는 스웨덴 한림원은 우수작가 두 사람을 선택하면서 120년 가까운 역사를 가진 노벨상을 위해 문학적 명성을 만회했지만 새로운 논쟁에 빠지게 되기도 하였다.
지한숙 기자 newschina21@naver.com | 2019-11-04 14: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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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신문주간 한국어판 지한숙 기자]

가수의 수상, 성 스캔들, 내부 부정회계 갈등과 1년간의 중단이라는 연이은 타격을 겪은 노벨문학상이 올해 두 명의 수상자를 함께 선정했다.


2018년 대상은 57세의 폴란드 소설가이자 공공지식인인 올가 토카르추크에게 수여되었다. 76세의 오스트리아 포스트모더니즘 소설가이며 극작가, 번역가, 시인과 영화감독으로도 활동하고 있는 페터 한트케는 2019년 대상 수상자가 되었다.


수상을 주관한 스웨덴 한림원은 이 두 명의 훌륭한 작가를 선택함으로써 120년 가까운 역사를 가진 노벨상의 문학적 명성을 회복시켰지만 또한 새로운 논란을 낳기도 했다.


상상, 역사자료 그리고 심리분석


토카르추크는 “경계를 가로지르는 삶 형태를 구현하는 상상력을 담은 작품을 백과사전 같은 열정으로 표현했다”는 평가를 받고 수상을 하게 되었다.

 

▲ 올가 토카르추크. 사진/IC

그녀의 가장 중요한 두 권의 소설은 2008년과 2015년에 니케 문학상을 수상한 ‘방랑자들’과 ‘야고보서’이며 이 작품들은 바로 이러한 ‘경계를 넘나드는 형식’을 나타낸다.

 


‘방랑자들’은 지난해 맨부커 국제상을 수상하기도 했으며 토카르추크가 국제적인 명성을 얻을 수 있도록 한 중요한 작품이기도 했다. 116개의 단편으로 구성된 이 책은 17세기부터 21세기까지 여행에 관한 철학적 사고를 주제로 한 작품집으로 어떤 것은 길고 어떤 것은 짧으며 어떤 것은 순전히 상상에 바탕을 두고 있다.

 

 ‘쇼팽의 마음’이란 루드비카 옌더제예비치가 동생 쇼팽의 심장을 슬립에 숨기고 국경을 넘어 파리로부터 바르샤바로 밀반입해 매장하는 것을 묘사한 작품이다. 또 ‘사황의 수장’과 같이, 페테르 1세가 인체 해부학적인 소장품이 있어서 네덜란드 해운에서 귀국하려고 할 때 각종 시체를 높은 도수의 브랜디에 담아 와서 부패를 방지하는데 선원들이 도중에 이 술을 마시는 모습을 그린 작품이다.


‘보리수’라는 작품은 시작 부분이 “중국인을 만났다. 그는 나에게 그가 처음으로 비행기를 타고 인도로 출장갈 때의 일을 들려 주었다. 그의 회사는 상당히 복잡한 전자 장비를 생산해서 오랜 시간 동안 혈액을 저장하고 안전하게 장기를 운반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였는데 그는 이때 협상을 하러 가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고 인도 지사를 개설하게 되었다”고 되어 있다.


2014년에 그녀는 천 쪽에 달하는 ‘야고보서’를 출판하였는데 이 책에 등장하는 주인공인 제이콥 프랭크는 역사적으로 논란의 소지가 많은 유대계 종교지도자이자 역대 가짜 메시아 중 가장 명성이 높은 인물이다. 그는 라비원과 공개변론을 벌리며 인류의 구세주인 사바타이 제위의 환생을 자처하고 교파 규범을 타파하는 데 힘썼다.

 

그는 유대교도는 월계 의무가 있으며 나아가 개종, 정신에서부터 의식에 이르기까지 이슬람교나 천주교와 결합하였다고 떠벌리고 다녔으며 한때 신도가 50만 명이나 되었고 그 자신도 대중을 거느리고 세례를 받기도 했다.


토카르추크는 다양한 문학적 형식을 구사하며 상상과 추측, 사료와 문헌상의 예증과 심리 분석을 모두 아우르며 프랭크의 복잡한 일생을 묘사하였다. 일곱 개의 국경을 넘고 다섯 개의 언어, 세 개의 종교, 그리고 무수한 심리와 정신적인 경계들을 넘나드는 이 책은 세계적인 책이 되었으며 작가의 드높은 예술적 기교와 필력을 남김없이 보여준 작품이다. 스웨덴 판은 2015년에 신속하고 시의적절하게 출간돼 결국 노벨문학상 심사위원들의 마음을 얻었으며 노벨상의 전당으로 가는 데 장애물을 모두 제거했다.


토카르추크는 지금까지 8편의 장편 소설과 3편의 단편집을 출판했으며 세계 30여개의 언어로 번역출판되었다. 이중에는 올해 맨부커 국제상 후보작으로 선정된 ‘죽은 이들의 뼈’, 그리고 중국에서 출판된 ‘태고의 시간들’, ‘낮의 집, 밤의 집’도 포함되어 있다.


‘관객모독’


한트케에 대해 스웨덴한림원은 “인간 체험의 주변부와 개별성을 독창적 언어로 탐구해 영향력 있는 작품을 썼다”며 선정이유를 밝혔다.

 

▲ 페터 한트케. 사진/시각중국(视觉中国)

한트케의 오스트리아 동포이자 2004년 노벨상 수상자인 옐리네크는 “그는 진작에 나에 앞서 상을 받아야 했다”고 말했다. 옐리네크의 겸손은 귀한 미덕이지만 한트케가 더 중요시하고 있는 관점도 다수 학자들이 공감하는 바이다. 많은 평론가들은 한트케가 베케트 이후 가장 중요한 당대 극작가이며 ‘카스파’는 ‘고도를 기다리며’와 어깨를 견줄 만하다고 평가하고 있다. 노르웨이의 대작가 칼 오베 크나우스고르는 더 명확하게 말했다. “그는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당대 작가 세 명 중 한 명이다. 그 중 최고는 아닐지라도.”

 


1942년 12월 6일, 한트케는 오스트리아의 그리핀에서 태어났다. 1966년 소설 데뷔작 ‘말벌들’을 발표하였으며 시각장애인들의 실명 전 기억을 빌려 오늘의 현실을 재구성했다. 같은 해 뉴저지 프린스턴에서 ‘47년그룹’이 주최한 독일 작가와 평론가대회에서 최연소 참석자로 참가한 24세의 한트케는 비수와 총으로 겨냥하는 듯한 발언으로 기성 작가들이 사람들을 바보로 만들며 장식용으로 나열한 문자 이외에 아무것도 없이 독자들이 독일의 현실에 대해 잘못된 견해를 갖도록 한다고 맹비난했다.


두 달 뒤 프랑크푸르트에서 한트케의 전복적인 ‘말하기 연극’인 ‘관중모독’이 처음으로 무대에 올랐다. 그는 브레히트가 극과 현실 사이의 거리를 유지했던 ‘낯설게 하기 효과’나 ‘소격 효과(연극이나 영화 따위에서, 의도적으로 관객과 작품 사이에 거리를 두는 기법)’를 완전히 없애고 거의 세트가 없고 극과 대사도 없으며 배우는 배우일 뿐 극중에 어떤 역할도 없는 연극형식을 도입했다.

 

배우들은 무대 위에서 관객들에게 직접 말을 하거나 질문을 하거나 욕설을 퍼붓고 바보라고 비웃으며 극장에 앉아서 기꺼이 관객들에게 속아 넘어가기도 했다. “여기서 당신은 당신이 듣지 못한 것들을 들을 수 없을 것이다. 여기선 당신이 보지 못한 것들을 볼 수 없을 것이다 .당신의 감상적 즐거움은 만족을 얻지 못할 것이다. 당신은 쇼를 볼 수 없을 것이다. 여기서는 뭔가 연기를 안 하며 당신이 볼 수 있는 것은 장면이 없는 연극이다.”


1968년 그의 첫 장편 연극인 ‘카스파’가 프랑크푸르트와 오버하우젠에서 공연되면서 세계를 크게 뒤흔들었다. 주인공은 오직 한 마디 말만 할 수 있는 자폐소년인데 끊임없이 막후에 있는 조언자(멘토)의 용어에 따라 거듭 고문과 압제, 설교, 호들갑, 위협을 당하고 권위적 이데올로기의 언어를 통해 사회적으로 통제 당하고 학대 당하며 사회적 요구에 부합되는 이른바 ‘정상’인이 되어가는 듯싶지만 나중에는 조그맣게 남아있던 자신마저 착취 당하게 된다. “내 첫마디와 함께 나는 함정에 빠졌다.” 카스파는 “내가 말을 걸자, 나는 현실에 끌려들어갔다”고 말했다. 원래 있던 그 말이 무너지면서 그의 인격은 완전히 혼란과 절망과 수치심에 빠졌고 마침내 오르셀로의 ‘신경착란’ 때의 ‘염소와 원숭이!’라는 구절을 9번 연속으로 말했다.


한트케가 출간한 소설과 희곡은 50종이 넘는다. 중국에서 그의 작품 20여 개가 ‘관객모독’, ‘페널티킥 앞에 선 골키퍼의 불안’, ‘무욕의 비가’, ‘왼손잡이 여자’, ‘느린 귀향’, ‘제9왕국행’, ‘낯선 길을 동행하는 순간’, ‘피로에 대한 단상’, ‘고통 받는 중국인’ 등 아홉 종의 책에 수록되었는데 모두 상하이 인민출판사 산하의 베이징 세기원징(文景)회사에서 출판한 서적이다.


‘폴란드의 배반자’와 ‘살인범’


조국 폴란드를 제외하고 토카르추크의 수상은 어떤 질의나 반대의 물결을 일으키지 않았다.
많은 폴란드 사람들의 눈에 비친 노벨상은 그녀를 매국노와 ‘폴란드의 배반자’로 규정짓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폴란드의 다민족 혼합거주 역사에 대한 그녀의 묘사와 이민과 동성애에 대한 공개적인 동정, 문화적 관용과 사상 개방에 대한 고취, 폴란드의 이미지 변신 역사에 대한 비판, 위 아래로 폴란드가 억압자, 노예자, 유대인 살인자로 전락했다는 폭로는 현 정부의 외부인 배척 정책과 국민들의 보편적인 민주주의 자부심을 건드린 것으로 일부 극우세력들의 눈에 비춰지고 있다. ‘야고보서’가 출판된 해는 또한 가장 위험한 시기였고 한때 출판업자들은 그녀를 위해 보디가드를 고용하기도 했었다.


토카르추크와 비교해 볼 때, 한트케의 수상 소식은 세계의 많은 곳에서 매우 다른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누군가는 환호하고 누군가는 분노하였다.


노르웨이의 젊은 거장 크나우스고르는 밀로셰비치 장례식장에서 행한 한트케의 연설이 그를 “모든 소위 문화적 다수와 단절하기를 자초한 계기가 되었다”고 했다.


1991년 이후, 한트케는 프랑스에 오래 살았고 곧 와해 중인 유고슬라비아의 동정자들과 더불어 나토 공습의 비판자가 되었다. 그는 1996년 여행 에세이집인 ‘다뉴브, 사바, 모라바강과 델리나강의 겨울여행: 또는 세르비아의 공의’를 출간해 세르비아를 발칸 전쟁의 피해처인 “한 명의 고아로, 버려진 아이”로 분류했다.

 

작가는 책에서 서방 언론이 전쟁의 원인과 결과를 오인하고 ‘언어 독약’으로 대중을 속인다고 비판해 논란을 일으켰다. 밀로셰비치 전 유고슬라비아 대통령은 그를 위해 변호하기 위해 한트케를 남부 유럽 전범재판소로 데려갈 것을 요구했다. 한트케는 이를 거절했지만 2006년 밀로셰비치의 장례식에 참석해 연설을 했다.

 

그 결과, 유럽 정계의 강력한 비판을 받았으며 극 작품 상연이 프랑스에서 금지되기도 했다. 같은 해 그에게 하이네 문학상을 수여하려고 했던 뒤셀도르프시도 정계의 압력을 이기지 못하였으며 한트케는 결국 수상을 포기했다.


그로부터 8년 뒤 노르웨이 정부가 한트케에게 국제입센상을 수여했을 때 그는 오슬로의 국립극장 밖에서 뭇매를 맞았고 장외에 모인 항의자들은 그를 파시스트 살인자와 인종학살의 부인자라고 비난했다. 하지만 장내에 모인 노르웨이의 문학인사들은 그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2008년, 그는 유럽 견문에 기초한 ‘모라바의 밤’을 출판했다. 언론은 이 작품을 그가 10여 년 전의 급진적 정치선언을 누그러뜨리고 “이 책에 시적 자기반성을 담았다. 한트케는 지난 몇 년 동안 악령을 물리치는 것 같았다”고 평가했다.


이런 논란 때문에 파리 자택에서 수상 소식을 전해들은 한트케는 놀라움을 표시한 뒤 스웨덴한림원의 용감한 결정에 감사함을 표했다.


‘용감하다’는 것은 칼 오베 크나우스고르(Karl Ove Knausgård)가 한 올해 노벨상에 대한 평가이기도 하다. 그는 “나는 원래 그가 상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는 정치적으로 너무 논란이 있었기 때문이다. 용감한 시상 결정이었고 그에겐 부끄럽지 않았다”고 말했다.

 

크나우스고르는 노르웨이 언론사인 베르덴스 강(Verdens Gang)에 “1960년대부터 매 시기마다 한트케는 다른 방식으로 한 편의 걸작을 써왔다. 그는 경외심을 갖게 하는, 절대 타협하지 않는 작가이며 완전히 그 자신으로 살고 있다”고 말했다.


2019년 노벨문학상 시상식은 12월 10일 스웨덴 수도 스톡홀름에서 열리며 두 수상자는 상금 900만 스웨덴 크로나(약 11억원)를 받는다.

글/캉카이(康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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