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희, 김정은의 ‘대변인’

성과 없이 흩어진 조선-미국 하노이 회동에서, 최선희는 미국 측 팀과 협상 테이블에서 교류한 마지막 조선 고위 관리였다.
오재헌 기자 newschina21@naver.com | 2019-11-01 13:4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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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신문주간 한국어판 오재헌 기자]

2003년 6자회담 1차 회의 때부터 금색 목걸이를 착용해 온 최선희는 한반도 핵문제의 거의 모든 중요한 협상에 참여했다.

 

▲  3월 1일, 베트남 하노이에 있던 최선희의 모습. 사진/시각중국(视觉中国)

베이징, 모스크바 다자 회담, 오슬로, 스톡홀름의 ‘반관반민 (半官半民)’ 대화, 싱가포르, 하노이 조미 정상회담부터, 한조미 3국 정상 판문점 회동까지 최선희의 위상은 더욱 두드러졌다.

 


최선희는 2019년 이후 지금까지 4개의 새 타이틀을 추가했다. 3월에는 조선 최고인민회의 의원으로, 4월 10일에는 조선노동당 중앙후보위원을 넘어 노동당 중앙위원으로, 4월 11일에는 조선 정부의 최고 의사결정기관인 국무위원회의 유일한 여성 위원으로, 4월 24일에는 여성으로는 유일하게 외무성 제1부상의 신분으로 조선 최고지도자인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러시아 순방에 동행하였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러시아 방문에는 총 4명의 노동당 중앙정치국 위원이 동행했다. 러시아 매체가 촬영한 김정은의 전용차 화면에는 노동당 중앙위원인 최선희가 김정은 옆에 바짝 붙어 앉아 있었고 그의 상관인 이용호 외무상이 조수석에 앉아 있는 모습이 담겨 있다.


또한 최선희는 올해 김정은의 중요 외교 의제를 대변하는 목소리를 빈번히 내고 있다. 외신들은 최선희를 ‘김정은의 대변인’으로 보고 있다.


전 한국 정부 고위 정보 관리는 언론에 “최선희가 조선의 첫 여성 외무장관이 될 수도 있다”라고 예측을 했지만 “그녀의 운명은 다음 번 워싱턴 담판에 의해 그 성패가 결정된다”라고도 전했다.


강경하면서도 융통성을 잃지 않다
8월 31일, 최선희는 올해 다섯 번째 공개 담화를 내고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조선의 잦은 미사일 실험에 대해 발언한 것을 비난했다. 조선 외무성 제1부상은 이전과 마찬가지로 폼페이오 장관이 지적한 ‘불량행위’에 대한 해명 대신 트럼프 행정부의 언사가 “미국이 철저히 후회하지 않으려면 조선에 대한 반대 발언을 자제하는 게 좋겠다”고 경고했다.


“(왜) 무책임한 발언이 미국의 외교 수장 입에서 나오는지 궁금하다.” 최선희는 개인적인 특색이 강한 말로 폼페이오 개인을 겨냥했다. 4개월 전 볼턴 당시 국가안보보좌관의 발언에 대해서도 “볼턴 미 국가안보 보좌관이 이성적인 발언을 할 것으로 기대하지는 않지만, 요직에 있는 만큼 3차 정상회담 전에 양국 정상이 나눈 대화 내용을 파악한 뒤에 입장을 전하는 게 바람직하다”라고 강도 높은 비판을 했다.


최선희의 이 같은 외교적 발언에 미국 측은 낯설지 않다는 입장이다. 뉴욕 타임즈는 최 씨가 젊고 급진적인 세대의 조선 외교관이라고 논평했다. 그러나 전임 한미 외교관들의 눈에 비친 최선희는 온화하고 유연한 ‘지미파’로 비쳐졌으며 오늘날까지 이어져 온 것은 단지 그녀의 개성적인 언어 스타일일 뿐이라는 인상을 준다.


최선희는 대미 협상무대에서 활약하는 조선 이용호 외무상, 김혁철 전 대미 특별대표 등 외교관과 마찬가지로 노동당 고위층 집안 출신이다. 그녀를 두고 일부 언론은 김정일 시대의 최영림 조선 내각 총리의 딸이라고 주장했지만 조선 문제 전문가인 마이클 매든 존스 홉킨스대 교수와 한국 정부 관계자의 조사결과 최영림에게는 딸이 없어 최선희를 양녀로 받아들인 것으로 보인다.


최선희는 출신성분이 좋은 집안 출신답게 교육을 잘 받았다. 그는 젊은 시절 조선 엘리트 자제 학교를 다니다가 다국적으로 유학을 떠나 1980년대 조선 외무성 북미국과 미국연구소에서 일을 했다. 한 한국 외교관은 최선희는 영어와 중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며 “다른 많은 조선 사람들보다 미국이라는 상대를 잘 읽는다”고 전했다.
최선희는 외무성에서 승승장구했다. 2003년 6자회담이 시작됐을 때는 외무성 부상이던 김계관 6자회담 조선 측 수석대표의 통역을 했다.


“그녀는 협상에 강한 인내력을 가지고 있고 과정에 있어서도 섬세하다.” 회담에 참석한 한 한국 외교관은 언론에 이렇게 회상했다. 6자회담의 역사 사진에서 최선희는 당시 젊은 조선 통역으로 단아한 검은 양복 차림의 모습으로 일관했다. 하지만 여러 차례 헤어스타일을 바꾸고 염색도 하고 파마도 한 적이 있고, 금색 목걸이를 착용해 개성 있고 센스 있게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 것이 인상적이다.


최선희의 실제 신분은 통역뿐 아니라 김계관의 중요한 조력자로 직접 협상에 나섰지만 장외 기자들의 눈에는 최선희가 매우 조용해 보였다. 2007년 도쿄 나리타 공항에서 최선희와 접촉했던 경험을 회상한 예영준 중앙일보 기자는 그때 최선희는 공식적인 신분은 ‘수행원 겸 통역’이었으며 조선대표단과 기자들의 대화에 참여하지 않았고 묵묵히 “김계관을 위한 탑승수속을 하는 모습이었다”고 말했다.


2007년 최선희는 초창기 외교 인생의 ‘하이라이트’를 맞았다. 김계관 부상은 그 해 6월 조선을 대표해 영변 핵시설 폐쇄와 일체의 핵무기 제조 및 핵실험 중단을 공식 선언했다. 그 해 11월 김계관의 초청으로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평양에서 연주회를 열자 뉴욕 필하모닉의 음악소리가 대동강변에 울려 퍼지면서 한반도 평화정착에 대한 긍정적 신호가 나왔다.


6자회담에 참여한 조선 대표들은 곧바로 중용됐다. 2009년 8월과 2010년 8월에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과 카터 전 대통령이 선후로 방북했을 때 김계관 부상이 접대를 맡았고 최선희가 통역을 맡았다. 2010년 김계관이 외무성 제1부상으로 승진해 그 해 10월 노동당 중앙위원회에 발탁됐다. 최선희는 그 해 10월 외무성 조선-미국 담당 부서 부국장에 발탁됐다.

 

그러나 이때 한반도 정세는 오히려 역전됐다.
조선은 2008년 6월 6자회담 합의에 따라 영변 핵시설 냉각탑을 폭파했다. 그러나 같은 해에 출범한 이명박 정부가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의 ‘햇볕정책’을 배제하면서 남북 교류는 전면 중단됐다. 영변 냉각탑을 폭파한 지 1년도 안 돼 조선이 핵실험을 재개하면서 6자회담은 침체에 빠졌다.


최선희 조선-미국담당 부서 부국장이 부임하기 반년 전 한국 해군의 천안함 호위함이 어뢰에 격침되자 조선 정부가 남측과의 왕래 중단을 선언하는 등 전국이 전쟁준비 태세에 들어갔다. 최선희가 새로 부임된지 한 달도 안 돼 남북 연평도 포격전이 벌어지면서 한반도 정세는 한때 전면전으로 치달았다.


최선희는 2011년 3월 미국 싱크탱크인 아스펜연구소가 독일에서 개최한 세미나에 조선-미국 담당 부서 부국장 자격으로 처음 참석해 조미 관계와 조선 비핵화 등에 대해 한미 학자들과 대화를 나눴다. 보더거 카네기국제평화재단 부회장에 따르면 미국 대표단은 최선희가 세미나에서 유연한 자세를 취했으며 당시 가장 민감한 사안이었던 ‘천안함’, ‘연평도’ 사건에 대한 책임을 묻는 질문에도 부인하지 않았다. 같은 달 조선 외무성 대변인은 조건 없는 6자회담 복귀 의사를 공식 표명했다.


다시 다자외교 무대로 돌아온 후 최선희의 독주가 시작됐다. 김계관 부상의 워싱턴과 베이징 6자회담 재개를 위한 대화에 이어 최선희는 2011년 9월 20일 6자회담 북측 부단장, 외무성 조선-미국 담당 부서 부국장 자격으로 6자회담 한국 측 부단장을 지낸 조현동 외교통상부 북핵외교기획단장과 베이징에서 접촉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최선희는 이때부터 북핵 문제 실무회담 차원의 접촉을 담당했다.


이후 한반도 정세는 몇 차례 반전됐지만 최선희는 강경하면서도 유연한 자세를 견지했다. 2016년 6월 베이징에서 열린 제26차 동북아협력대화에 최선희가 조선대표단을 이끌고 참석했다. 그는 “조선이 중국의 달라진 대북정책에 실망하지 않았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전혀 실망하지 않으며 중국은 자기 일을 하고 있고 우리는 우리 일을 하고 있다”며 웃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막 채택한 대조선 제재 결의 2270호에 대해 “우리는 익숙해졌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최선희는 이듬해 10월 다시 조선 대표로 동북아협력회에 참석했다. 당시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한 지 반년도 안 돼 대조선정책이 눈에 띄게 조정됐고, 최선희는 공개 발언에서 한국을 비난하지 않았고 심지어 해상훈련을 언급할 때도 ‘한미 합동훈련’ 대신 ‘미국 대규모 해상훈련’이란 표현을 썼다. 그는 한국 기자들이 그녀가 서울 정부를 언급하는 것을 피하고 문재인 정부에 대한 그녀의 견해를 묻는 것에 주목하자 일부러 이 질문을 피했다.


최선희가 보여준 유연한 자세는 그에게 부여된 새로운 사명과도 관련이 있다. 2016년 11월 외무성 조미국장으로 승진한 최선희는 스위스 제네바로 건너가 로버트 아인혼 전 국무부 핵 비확산 군축 특별고문을 만나 반관반민적인 대화를 나눴다.


이후 오슬로 외곽의 식당과 스톡홀름 근교의 농가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와 대화한 미국의 싱크탱크 학자들은 이 신임 국장의 외교적 지혜가 조선 지도부의 인정을 받은 것으로 보고 있다고 전했다. “그녀는 매우 똑똑하고 분명히 인맥이 넓으며 승진은 시간문제인 것 같다.” 2018년 2월 말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랄프 코사 동북아문제 선임연구원은 한 보고서에서 이같이 밝혔다.


2018년 3월 최선희는 외교 생애 세 번째 조미 밀착 대화를 맞이했으며 외무성 부상으로 승진한 뒤 조미 실무회담의 책임자가 됐다. 3개월 후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의 첫 만남을 앞두고 김영철 조선 노동당 중앙부위원장이 김정은 특사로 워싱턴으로 날아가 트럼프, 폼페이오와 직접 소통했다. 김창선 조선 국무위원회 부장은 하노이로 이동해 조 하킨 백악관 부 보좌관과 안보를 논의했고, 최선희는 제3의 채널로 김성 필리핀 주재 미국대사와 판문점에서 직접 회동하고 1차 조-미 정상회담과 관련된 의제를 두고 세부 사항을 논의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2018년 5월 27일 최선희와 김성이 대표단을 이끌고 첫 실무협의에 참석했으며 ‘조선의 비핵화와 미국의 체제 안전보장’을 어떻게 바꿀지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양측은 28~29일 각각 내부 관련 부처와 연락, 협상전략을 조율하고 5월 30일 2차 실무협의에서 조선의 비핵화 방안과 이에 상응하는 체제안전보장 방안을 집중 조율했다. 이는 이후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이 싱가포르에서 처음 만나 공동성명을 채택하는 주요 내용이 됐다.


이어 “최선희는 조미관계를 다루는 기술 지식도 있고 미국 관리들과 실무적인 경험도 있으며, 괄목할 만한 외교술은 물론 조미 관계의 예상에 대해 구체적인 견해를 밝힌 바 있다.” 레이철 에먼드 미 군축과 확산방지센터 연구원은 최선희의 능력을 이렇게 요약했다. 하지만 2019년 이래 최선희의 정체가 ‘협상 대표’에 그치지 않고 있다는 게 외부의 관측이다.


‘급진적 대변인의 이미지’
2019년 7월 27일 최선희는 이례적으로 검은색 의상을 회색 드레스로 바꿔 입었다. 이날 저녁 조선 국립교향악단 7.27기념음악회가 새로 조성된 삼지연관현악단 극장에서 열렸고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공연을 관람했다.
조선중앙방송과 노동신문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친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과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이 김정은 위원장을 사이에 두고 나란히 앉아 있는 사진을 실었다.

 

연합뉴스는 이 의전 좌석이 “노동당 당원인 이수용, 김영철 부위원장보다 더 급이 높다는 위상을 드러낸 것으로 두 여성 정관계 인사의 위상을 다시 한번 과시했다”고 전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조선 지도자가 된 이후 최선희는 조선 지도부에 합류한 새로운 여성정치인 중 하나였다. 2016년 5월 노동당 중앙위원회에 진입한 김여정은 이듬해 10월 조선의 스타 성악가였던 현송월 노동당 중앙선전선동부 부부장을 당 중앙후보위원으로 선출했다. 2019년 4월 현송월과 최선희가 동시에 노동당 중앙위원에 올랐고 김여정은 이미 1년 전 노동당 중앙정치국에 들어갔다.


영국 BBC방송은 갈수록 많은 조선 여성들이 정치무대에 나서는 것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집권 스타일이 보다 수월하고 개방적이라는 것을 의미한다고 분석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여성 고위 관리들을 중용한 것도 조선이 ‘정상국가’라는 이미지를 부각하기 위한 것으로 분석된다.


하지만 마이클 매든은 2011년 김정일이 사망한 후, 한때는 최선희가 외사활동 중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통역을 맡아 활동했으며 이 과정에 김정은으로부터 능력을 인정받았다고 분석했다. ‘외교학인’ 저널도 논평에서 최선희가 제1부상 승진에 앞서 이용호를 거치지 않고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직접 보고할 수 있다는 소식이 있다고 전했다.


올해 2월 하노이에서 열린 제2차 ‘김트럼프회의’의 한 세부 사항은 최선희에 대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각별한 신뢰를 보여준다. 이 자리에 있던 미국 관리들은 불미스러운 만남에서 최선희가 미국 측 팀과 협상 테이블에서 대화를 나눈 마지막 조선 고위 관리였다고 뉴욕 타임즈에 뒤늦게 전했다. 그는 최후의 순간에 평양은 영변의 모든 핵시설을 해체하겠다는 김정은의 속내를 대신 전했다. 그러나 트럼프 측은 조선이 또 다른 미공개 핵시설을 동시에 폐기해야 한다는 증거를 제시했다. 조미 양자 및 외부의 기대를 모았던 그 협상은 결렬됐다.


“국무위원장 동지가 미국 측과 담판을 지속해 펼쳐나가고 합의할 의욕을 잃은 것 같다는 것이다.” 그날 밤 최선희는 엄숙한 표정으로 각국 기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최선희는 3월 1일 새벽 2차 ‘김트럼프회의’에 참석한 조선 대표단이 베트남 하노이 메리어트호텔에서 임시 브리핑을 하고 이용호 외무상이 참석해 서면성명을 발표하였으며 최선희가 기자들의 질문에 답했다. 최선희는 “우리 지도자들은 미국 측의 ‘수’에 당혹스러워하고 있다”는 김정은의 생각을 전 세계에 전하면서 추가 협상 의지를 잃었다”고 밝혔다.


이때 외부에선 이를 최선희의 개인화 표현으로 분류하기도 했다. 몇 시간 뒤 조선중앙통신은 조미 간의 하노이 충돌은 언급하지 않고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의 만남이 계속될 것임을 강조하는 기사를 내보냈다. 이에 따라 최선희의 견해는 김정은을 대표하는 것이 아닌 것으로 비춰졌다. 뉴욕 타임즈는 “이는 다음 협상을 위한 이니셔티브일 뿐”이라고 논평했다. 하지만 한 달여 뒤 시정연설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직접 최선희의 발언을 되풀이했다.


“(하노이 정상회담) 조선이 전략적 결단과 중대 결단을 내리고 내딛는 발걸음이 과연 옳은지 의문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4월 12일 제14기 최고인민회의 1차 회의에서 시정연설을 발표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최선희의 발언 중에 나온 내용의 의미를 해석하며 “미국은 전혀 실현될 가망이 없는 마음으로 회담에 임했다. 다시 말해 조선과 앉아서 문제를 해결할 준비도, 뚜렷한 방향과 방법도 없다”고 말했다.


영국의 ‘더 타임스’는 “최고 지도자가 부하의 관점을 ‘인용’한 것은 조선에서 처음”이라고 평가했다. 연합뉴스는 최선희가 ‘김정은의 대변인’이 됐다고 분석했다.


두 달 뒤 최선희의 ‘대변인’ 신원이 다시 확인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6월 29일 트위터를 통해 다음 한국 방문길에 판문점 비무장지대(DMZ)로 이동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남북 국경에서 ‘안부인사를 물어오는’ 악수를 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몇 시간 뒤 최선희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대표해 “아주 의미 있는 제안”이라고 답했지만 공식 초청은 받지 못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최선희는 이날 저녁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와 밤늦게까지 긴급 협의를 하고 절차 등을 조율했고 다음날 3차 ‘김트럼프회의’ 현장에 나타나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북측 판문점에서 군사분계선으로 이동하는 데 동행했다.


조선 최고지도자의 ‘대변인’이자 김정은의 외교담당 비서 역할을 하는 이 특별한 인물에 대해 한국 언론은 최선희가 이번에 미국과의 협상에서 보여준 위상이 김계관 전 부상보다 더 두드러진 것 같다고 분석했다.


“김정은은 나이 든 고위 관리들을 보다 젊고 급진적인 관리들로 대체했다.” 뉴욕 타임즈는 최선희가 중용된 것은 그 동안의 온건파 협상 노선이 조선에 의해 폐기됐음을 의미한다고 분석했다. 이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4월 12일 “조선이 하노이 조미 정상회담과 같은 정상회담을 꺼리는 희한한 상황은 아니다”라고 공식 발언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싱가포르의 연합조보(联合早报)도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최선희 특별중용은 물론 최선희에 대한 상당한 신임을 엿볼 수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조선의 핵문제에 관한 태도가 진정으로 ‘유연해지기’ 어렵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특정 시점에 조선이 전략적으로 표현을 완화하더라도 다른 때에는 상당히 강경하다. 최선희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위한 ‘공격적’ 담화를 내놓을 용의가 있다.


최선희의 ‘급진적 대변인 이미지’가 조선 외교 전략의 일부라는 분석도 있다.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로버트 칼린 전 한반도 고등 사무관은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최선희의 발언을 살펴볼 때 김정은의 말투가 더 적극적인 반면 최선희는 급진적인 역할을 하는 분업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전략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외교적 발상과도 관련이 있다. 김정은은 4월 12일 시정연설에서 조선의 향후 핵 협상 참여를 위한 기조를 설정했다. “(하노이 정상회의) 이런 계산으로 미국이 조선과 백번 천번 더 회담을 한다고 해도 조선은 한 걸음도 움직일 수 없다.” 김정은은 “미국이 오늘 중요한 시기에 현명한 판단을 내릴 것으로 기대하며, 어렵게 멈춘 조미 대결의 시계바늘이 영원히 다시 달리지 않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뉴욕 타임즈는 “김정은은 오래가는 협상을 준비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미국의 생각을 전환시키는 것’은 조선 지도자의 노력의 방향이었다. 최선희는 2017년 10월 핵비확산회의에 참석했을 때 “미국이 적대시 정책을 포기하고 ‘핵보유국 조선과의 공존’이라는 올바른 선택을 하면 길을 찾을 수 있다”, “군사적 핵 위협과 경제 제재로 압박 정책을 지속한다면 조선은 조금도 양보하지 않을 것”이라는 태도를 밝혔다.


재일 조총련 기관지 조선신보는 9월 12일 ‘조미 실무협상 성공의 대전제’라는 제목의 사설을 게재했다. 사설은 “조선이 미국 대선이 치러지는 2020년에 새로운 길을 모색할 수밖에 없고, 트럼프 행정부는 판문점에서 창출되는 쉽지 않은 협상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고 명시했다.


CIA의 로버트 칼린 전 동북아 담당 고위관리는 트럼프 행정부가 연내 한반도 비핵화 협상에 진전을 이루려면 담판 결렬전인 지난 2월 28일 영변 핵시설 폐쇄를 위한 조건으로 미국 측의 일부 제재를 풀어주는 등 최선희의 제안에 동의하는 등 추가적인 양보를 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칼린은 영변 핵시설 전체를 폐쇄하고 사찰요원의 현장 진입을 허용하는 것이 장기적인 합의를 향한 중요한 발걸음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영변 핵시설은 때가 지났거나 대단하지 않은 것이 아니며, 여전히 조선 핵공업의 관건이다.”


최선희는 9월 9일 최근 한 공개담화에서 “미국 측이 조미 실무진의 협의에서 과거의 상투적 방식을 다시 꺼내 들면 조-미 간 왕래는 끝날 것”이라는 김정은 정부의 입장을 밝혔다.

글/차오란(曹然) 본지기자 쉬팡칭(徐方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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