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이와이(大澳): 역사와 현대의 만남

나무 사이로 난 작은 길을 걷노라면 육지의 현대적인 정원과 바다의 예스러우면서도(옛스러우면서도) 소박한 오두막이 어우러져 시공이 교차하는 듯하다. 홍수림이 부드러운 보호막처럼 오래 된 어촌을 지켜주고 있다.
온라인팀 news@inewschina.co.kr | 2016-03-24 18: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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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한융(韩永)


1월의 홍콩(香港)은 북방의 봄처럼 산들바람에 가랑비가 나려(내려) 공기가 축축하다. 


홍콩에서의 마지막 날. 신계(新界)의 따이와이(大澳)를 찾았다. 


배를 타고 얼마 나가지 않아 물 속에 지은 오두막이 보였다. 나무기둥을 하나하나 물 속에 깊숙이 박아 나무 판(나무판)을 깔고 그 위에 등마루와 나무 벽(나무벽)을 박아 세우면 오두막이 완성된다. 낡은 오두막의 행렬이 홍콩의 흑백영화처럼 역사적인 느낌이 있다. 배를 타고 가는 동안 물 위에 떠 있는 오두막들이 천천히 뒤로 물러나고 입구에 한가로이 앉아있는 어르신들의 나지막한 한담소리가 1950~1960년대의 홍콩으로 돌아간 듯하다. 


따이와이 오두막의 역사는 200년이 넘는다. 고기잡이를 생계수단으로 하던 현지 수렵민들이 수상생활에 익숙해지면서 짓기 시작했다고 한다. 오두막은 주로 해바라기 잎, 나무 판, 돌기둥으로 만들었는데, 훗날에는 돌기둥 대신 물에 잠겨도 좀 더 안전한 폰티아낙을 사용하는 집이 늘어났다. 폰티아낙 목재는 물에 잠겨있어도 100년 정도는 부식되지 않는다고 한다. 오두막은 앞채, 중간채, 뒤채의 세 부분으로 나뉘며 앞채는 대청이나 침실로 사용하고 중간채에는 위패를 모시며 뒤채는 또 다른 침실로 사용하되 보통은 어른에게 내어드린다.


2000년 7월 2일 큰 화재로 따이와이의 오두막 90여채가 훼손되었다. 정부에서 복구에 최선을 다했지만 예전의 모습을 완전히 복원하지 못해 지금의 오두막은 상당수가 훗날 지어진 임시건물이다. 일부 오두막은 바깥을 얇은 철판으로 싸 태풍과 화재에 더욱 잘 견딜 수 있도록 개조했다.


배가 오두막 구역을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넓고 아득한 바다에 도착했다. 배를 타고 좀 더 멀리 나갈 수 있으면 운이 좋으면 물 위로 올라온 돌고래도 볼 수 있다. 근처에는 아직 완공되지 않은 주강아오(珠港澳)대교가 있다. 


배를 부두에 대고 계단을 올라가면 길가로 녹음이 이어지고 분홍색 박태기 꽃이 화려하게 피어 있다. 맑게 게인 하늘에 햇빛이 나뭇잎을 투과해 얼굴과 잔물결 반짝이는 수면 위로 쏟아진다. 좀 더 올라가면 부드러워지는 바람이 가슴 가득 스며든다. 


바다를 보기 가장 좋은 곳은 따이와이 헤리티지(Heritage)호텔 근해 한 쪽에 있는 천대(天台) 위이다. 바다를 향해 서면 바람이 두 볼에 가볍게 스치고 시야와 마음이 탁 트이고 편안해 지는 게 잠시나마 ‘천인합일(天人合一)’의 삼매경을 느낄 수 있다. 


오후가 되자 비취색 바닷물에 갑자기 회색 빛이 흘러 들었다. 주변의 푸른 빛에 녹아 들지도, 멋대로 퍼지지도 않고 곧바로 ‘Z’ 자를 그린다. 알고 보니 따이와이 수역은 강과 바다가 만나는 곳으로 강물이 흘러 들어갈 때 이렇게 두 가지 색깔이 나타나는 것이다. 


헤리티지호텔은 따이와이 수상경찰의 근무지로 천대 한쪽에 물의 상황을 관측하는 전망대가 있다. 전망대 주변으로는 나무가 무성해 더울 때는 모기가 극성을 부려 이 곳에서 밤새 일하기란 만만치 않은 일이다. 수상경찰 사무실은 두 층으로 나뉘어 현지경찰은 1층, 영국경찰은 2층에 상주하며 1층 경찰들은 허가 없이 2층으로 올라가지 못한다.


따이와이는 주장(珠江)이 바다로 들어가는 입구에 위치하며 란터우섬(大屿山)의 물길이 남북으로 갈라진다. 따이와이와 란터우섬을 나누면 따이와이는 정확히 갈림목에 위치해 지리적으로 매우 중요하다. 이 때문에 따이와이는 이제까지 군사요충지의 역할을 해 왔으며 수상경찰은 물의 상황을 정찰하기 위한 순찰대까지 두었다. ‘천산갑(穿山甲)’이라는 부대이름에 당시 안보상황과 관련 업무가 쉽지 않았음이 잘 드러난다.


다시 아래로 내려가 따이와이 어촌의 육지로 들어갔다. 마을은 매우 조용하고 가끔 어르신들이 집 입구에 한가로이 앉아 계신 모습이 오후의 햇빛처럼 차분하다.


역사적인 느낌이 물씬 풍기는 오두막과 달리 바위 위의 해안의 집들은 현대적인 분위기를 가득 품고 있다. 해변의 작은 길을 작은 길을 걷노라면 육지의 현대적인 정원과 바다의 옛스러우면서도 소박한 오두막이 어우러져 시공이 교차하는 느낌이 저절로 든다. 


마을 모퉁이에는 해변에 무성한 홍수림이 자라고 있다. 무리만 이룬 곳도 있고 줄지어 늘어선 곳도 있는데, 이들 울창한 홍수림을 호수 수위가 오를 때 마을과 바다 사이의 천연보호막이 된다. 따이와이는 역사적으로 관아에 바치는 소금의 중요한 생산지였으나 훗날 제염산업이 쇠퇴하면서 대규모 염전에 홍수림이 자라기 시작해 현재 홍콩 홍수림 품종의 90%을 보유하고 있다. 


여름을 제외한 따이와이의 기온은 대부분 15~25℃ 이다. 겨울에 속하는 1월에도 공기는 신선하고 온난·습윤하다. 연인 한 쌍이 해변에서 놀다 집으로 돌아간다. 남자는 맨발로 바지를 다리 위까지 말아 올리고 한 손에는 신발을 들고 한 손으로는 여자친구를 끌어안고 있다. 웃으며 걷는 두 사람의 발걸음소리와 웃음소리가 모두 음표 같다. 


따이와이에는 몇 개의 사원이 있는데, 그 중 분향이 가장 많이 이뤄지고 있는 곳이 후왕묘(杨侯古庙)이다. 1699년에 지어진 이 사원은 주민들에게 풍수가 매우 좋다 여겨지고 있다. 사원 안에는 사원이 처음 지어졌을 때 만들어 진 큰 종이 하나 있다. 사원의 주지사 양량절(杨亮节)은 남송(南宋)의 마지막 황제 조병(赵昺, 육수부(陆秀夫)가 애산(崖山)에서 업고 바다에 뛰어들어 죽은 어린 황제)의 외삼촌이다. 양량절은 조병을 보호하며 홍콩으로 피난을 와 힘껏 왕을 보필했는데, 그의 뛰어난 충성심과 절개에 감동한 마을 주민들이 지어 바친 사원이라 한다.


좀 더 앞으로 가니 따이와이의 상업지구가 나왔다. 즐비한 상점에 높고 낮은 물건 파는 소리가 정겹다. 가이시탕(鸡屎藤), 다과(茶果), 봉황산(凤凰山) 개구리발톱차(天葵茶), 향비권(香妃卷), 산수순두부(山水豆花), 어물튀김, 젓갈, 계란노른자 절임(咸蛋黄) 등 따이와이의 간식거리는 밖에서도 유명하다.
해가 지고 항구에 바닷바람이 불어온다. 여객선 한 척이 출항준비를 하고 관광객들은 돌고래 만나기를 동경한다. 멀리 홍수림이 하늘거린다. 바람이 불고 파도가 일어도 이 부드러운 보호벽은 영원히 넘어오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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