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1호선의 베이징 스토리

매일 지하철 1 호선에서 펼쳐지는것은 이러한 도시에 적응하고 녹아들려고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의 인생이다 . 그들은 전국 각지에서 베이징까지 와서 새 출발하여 베이징과 하나가 되어 각자의 꿈을 추구하는 여행을 시작한다. 그들은 지하철1호선에서의 한출구를 기점으로 하여 여기 이 도시에서 새로운 인생을 하게 된다. (1, 2 월호에 2 회에 걸쳐 연재)
온라인팀 news@inewschina.co.kr | 2015-02-03 18: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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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8 세 이정은 베이징 생활에 곤혹을 느끼고 있다. 사진/동걸욱  © 중국신문주간

 

 

위에는 장안가, 아래는 지하철 1 호선. 가로등이 환하게 비추어 지는 8차대로는 베이징을 동서양쪽으로 횡관하며 세계에서 제일 긴 거리이다. 그러나 지하에서는3분에 한번씩 운행되고, 45 년간 변하지 않는 노선으로 매일 31.04 ㎞를 거쳐 150 만 명에 달하는 승객을 23 개의 정류소에 데려다 주는 지하철1호선이 있다. 이는 베이징 상주인구수의 1/13에 남짓하다


장안가와 1 호선 사이에 약 80cm~100cm 두께에 달하는 넓은 방폭층이 있다. 600 년 전, 주체는 베이징을 세울 때, 청톈문 앞에서 이 거리를 지었다. 청나라 시 시대에 청톈문이 천안문으로 개명하였다. 점차 동단 배루에서 서단 배루까지 옛날 베이징이 최초의 비즈니스거리를 지은 것은 최초 장안거리의 초기형태가 되었다. 베이징이 확장하는 것에따라 이 거리는 동쪽과 서쪽 양쪽으로 끊임없이 연장되였다.


동단에서 동쪽까지 쭉 건국문에서 나와 용안리를 지나 무역 CBD 비즈니스 구역까지 오피스텔이 점점 많아졌다. 은행가, 투자은행 사장, 석유회사 최고 경영자, 변호사무실 파트너...세상 사람들 눈에 뛰어난 인재들은 장안가를 따라서 쭉 동쪽까지 모였다. 빌딩도 점점 높아지고, 땅값과 집세도 급증한다는 것이 명망, 재부, 뛰어난 기술자, 젊은 사무직원과 사람을 풍요하게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동쪽이 풍요하고 서쪽은 부귀하다”는 오랫동안 유전된 베이징 민간이 사람들에게 계층 구분하는 것이다. 복흥문 지역에 새로 개축된 금융가는 서쪽 유일한 금융기구이다. 서쪽으로 가면 목서지이며 군사 박물관이다. 쭉 걸어가 부원 분위기가 다가왔다. 도중에 공주분, 만수로를 지나 이는 전국 중국의 군사센터이며 군대 사령부가 있는 곳이다. 서쪽으로 더 가면 팔보산 혁명 묘지이다. 묘지에서 서쪽으로 가면 석경산구이며 거기는 수도철강 가족들의 주거 지역이며 베이징은 군정요지에서 공업구역으로 바뀌었다.


1 호선에 따라 쭉 서쪽으로 가면 사람들의 구두 굽이 점점 낮아지는 것을 볼 수 있다. 같은 사무직원이지만 이 중에 미묘한 차이가 있다.


차이가 매우 크기때문에 정류소의 위치마다 그의 ‘대단한’배경이 있다. 이는 정류소 자체가 무언가의 은유를 갖추는 것처럼 어느 계층 혹은 어느 생활의 출구가 되었다. 그 합숙 집에서 나올 때, 사혜에서 30 분정도 줄을 서서 기다리며 또한 사람들에게 밀어 드디어 지하철에 들어갔을 때 당신은 베이징에서 방랑생활을 하는 것이다. 국제무역에서 하차할 때는 옷차림이 단정하다. 청춘과 총명 등으로 오피스텔 자리를 얻을 때 당신은 중국중심의 가장 비싼 오피스텔의 한 임원이다. 베이징에서 한 재미없는 체제 내 일을 하는 것을 고민할 때 아마 몇 년 후 아주 느린 승진에 따라 당신은 진짜로 이도시의 신분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똑같이 이 지하철에 있다. 각각 정거장에서 출입하는 사람들이 서로 다른 인간이다. 그들은 각자의 인생경험과 생활느낌을 가지고 이 큰 베이징에 들어온 것이다. 그들은 전국에서 서로 다른 도시에서 베이징까지 왔으며 서로 다른 목표를 가지고, 또한 서로 다른 경로를 통하여 다른 대가로 1호선에서 출구를 찾아내는 것을 시도하며 자신을 이 도시에 넣어 여기에서 그들의 인생을 안주시킬 수 있다.


바로 많은 베이징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스토리가 베이징의 다른 측면을 연결시켜 여러면의 베이징을 보였다. 그러나 이는 바로 모두 베이징이다.


1. 사혜동(四惠东)


이정(李征 가명)은 매일 웰세집에서 나와 사혜동까지 걸어가 1호선을 탄다. 출발점에서 서단까지 11 정거장이며 또한 4호선을 갈아타 12 정거장 더 가야 한다. 출근장소까지 한 시간 반정도 걸린다. 집에 돌아가는 시간도 한 시간반이며 23정거장이다.


이정이 서류 가방을 들고 미간을 찌푸리며 오피스텔에서 나올 때, 그의 상태는 동떨어져 보였다. 그 모습은 미지근하며 짜증나 보였으며 사람이 완전 복잡해 보였다.


이 지역에 산동 사나이는 올해 28 살인데 이미 세상의 온갖 풍파를 겪었다. 부모는 농사를 지으며 그는 혼자 시험을 보며 나왔다. 사람은 나왔지만, 큰 도시에 새로운 것을 직면하지만 가치관은 아직 옥수수 밭에 있다.


현재 그는 ‘뽀뽀하다’에 매달려있다. 그는 체제 내의 공무원에서 빠져나와 한 기업에서 출근하고 있다. Wechat 플랫폼을 맡았다. 그는 그 화면을 가리키며 기자에게 말했다. 그는 진짜 적응하지 못했다. “이건 억지를 부리는 것 아닌가? ” 그는 격앙하게 말했다. “말할 때 똑바로 말하지 않고 왜 ‘친’과 ‘뽀뽀해’ 이런 단어를 쓰는데? ‘아이스크림’을 아이스크림이라고 부르지 않고 ‘디저트’라고 부르는데? ” 이는 체면에 관련된 큰 일인 것처럼 그는 미간을 찌푸리며 나에게 의논한다. “나는 좀 엄격한 것을 좋아한다. ” 그가 말한 엄겸한 것은 인민일보 형태 혹은 여러 학자가 와서 강의하며 교류하는 것을 말한다. 또한 철학, 문학, 예술 종류의 문제이다. 그 다음에 한줄 서서 사진을 찍고 반듯하게 문장을 올리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뽀뽀해’를 쓰는 방법을 배워야 하며 아주 노력하여 ‘박아탑, 뽀뽀해, 나왔다’ 등 문장을 만들었다. 말할 때 구역질하며 마침 한 마디마다 돈 받는 것처럼 하였다.


일단 만약에 일 자체가 그에게 취미를 잃었으면, 출근하는 것은 바로 버텨야 하는 일처럼 변했다. 출근하자마자 한 어려운 여행이라는 것이다. 1 호선 출발점으로써 사혜동은 2000 년에 개통되었으며 1호선 동쪽 출발점이 처음으로 서단동에서 동사환까지 연장하였다. 이는 1호선 최근의 확장이다. 이 노선은 이제부터 차오양, 동성, 서정, 해정과 석경산 5지역을 횡관하였다. 또한 이 정거장은 입체교차로와 가까워 터미널, 전철과 버스정류장 면에서도 중요한 교통중추이므로 매일의 여객통과수량도 20만번 넘는다.


이 전에, 사혜동은 베이징 교외와 가까워 대부분이 작은 상품시장이었다. 수준과 서비스 효율도 높지 않았으며 여기에서 살고 있는 사람도 소매 상인, 아르바이트 하는 사람과 저층근무자들이었다. 그러나 1호선이 동쪽으로 쭉 가며 더구나 CBD 이 동쪽으로 확장하여 사혜와 사혜동은 새 가치가 있게 되었다. 서쪽 대북요에서 동쪽 고비점 문화원 지역까지, 지하철을 타서 국제무역까지 20 분을 줄였다. CBD 비즈니스권을 방사하는 것과 국제무역과의 거리가 가까운 것, 또한 월세도 사무직원이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에 많은 오피스텔에 사무직원이 우선 선택하는 것으로 되었다. 이 지역의 방은 인기 많기 시작했다.


통주와 연교에서 사는 사무직원들은 매일 여기에서 갈아탄다. 육교에서 줄을 서며 30 분정도 지하철을 기다린다. 지하철이 5, 6 번 지나가 타지 못하는 것은 정상이다. 어느 출구에서 어떤 한 인군의 사람들과 같이 탈지도 법칙이 있다. 강대한 인파를 선택하는 것은 더 좋으며 인파에 따라 밀어서 전철을 타는 것이다. 이 전철 입구가 한 마디를 유행한다. “팀을 선택하는 것은 개인 노력보다 더 중요하다”.


이정(가명)도 예외는 아니다. 그는 매일 3 시간을 내서 차를 타고 또 갈아탄다. 베이징의 넓은 지역을 지나가 늘 그렇게 지낸다. 그 느낌은 바로 매일 남보다 3 시간 더 짧게 사는 것과 같다. 매일 동그란 조롱에 갇힌 햄스터처럼 반복적으로 뛴다. 출근은 퇴근을 위하여 퇴근은 잠을 자기 위하여 잠을 자는 것은 다음 날의 출근을 위하는 것이다.


현재까지 그는 여전히 자기가 무엇을 요구하는지 잘 모른다. 체제 내에서도 안 되고, 체제 내에 떠나서도 안 된다. 고향에 가도 적응하지 못하며 큰 도시의 이러한 것도 적응하지 못한다. 그는 두개 중에서 왔다갔다 하며 자기의 생활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그 때 체제 내에 들어갔을 때 얼마나는 자기가 원한 것이고, 또 얼마나는 고향 사람들이 그에게 ‘출세하는 것’을 기대하는 것을 위하는 것인지 헷갈린다. 2009 년 연대대학을 졸업할 때부터 인대전문 석사에 붙었다는 것은 한 시골아이에게는 좋은 성직인 편이다. 베이징에 처음 왔을 때, 그는매우 득의양양해하였다. 동네 어르신과 동네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것에 집중하였다. 그 경로는 뚜렷하다. 호구부를 얻어 체제 내로 들어가며 3년 더 버티고, 부주임, 주임까지 승진해서 돈을 모아 집도 사고 결혼해서 아이도 낳는 것이다. 또한 매년에 고향에 가서 설날을 보내는 것이다.


체제에 처음 들어갔을 때 그는 모든 젊은 사람들과 같이 자기가 변할 수 있고 또한 무엇을 영향에 끼칠 수 있는 줄 알았다. “나는 여러분의 마음을 편하게 만들고 싶다.” 이를 위해서 그는 특별히 한 회사의 내부 Wechat 를 만들었으며 매일 임원의 사적과 회사 스토리를 올렸다. 이는 근무의 포함되지 않는 일이다. 좋은 일을 했다고 생각했는데 사장에게 불려갔다. “이정 씨, 당신은Wechat 에서 규정을 하나 만들어야 겠다. 어떠한 것은 말할 수 있고, 또 어떠한 것은 말할 수 없다. 홍보경로는 잘 파악해야 한다”라고 하였다. 이정이 멍하고 있었다. 그러나 설명을 해도 사장님은 듣지 않았다.


또한 계속 회의를 하였다. 지위록을 배우며 저녁 10 시도 2 시간 토론을 하였다. 윗사람이 지위록은 나의 신이라고 표현했다.


그가 발언할 차례이다. 그는 용기내서 참말을 하였다. “ 지위록은 돌아간지 20, 30 년 정도 되었다. 란카오 아직은 빈곤형이다. 간부는 공복까지 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며 일을 하면 되고 나는 당신에게 복무한다. 당신은 세금을 납부하여 나를 먹여살려 이러한 상호 복무의 관계를 유지시키는 것이다. 아니면 힘들어 죽어도 소용없다.
한 마디 윗사람을 약올렸다. 그 때 그는 이미 체제에 떠날 생각이 있었다. 이는 마지막 한 포기의 볏짚일 뿐이며 근본적인 원인은 그는 승진의 희망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그 전에 열정적으로 일했고, 승진할 수 있는 줄 알았는데 희망이 없어졌다. 그 전의 하급이 그의 윗사람이 되었다. 전에 그 하급이 베이징에 와서 회의를 하였고, 그에게 이 사장님이라고 불렀으며 술도 따라드렸는데 지금은 반대로 그에게 “이정 씨”라고 불리며 술도 이제 그가 따르게 되었다.


체제에 떠난 그 날, 그는 윗사람 사무실에 앉아 있었다. “전 가기 싫어요.” 윗사람이 놀랐다. “이정 씨, 우리는 이렇게 널 키웠는데, 한 당원으로써 어떻게 이러는데...”, 이정은 그의 말을 끊었다. “저는 오직 당원일 뿐이고, 간부는 아닙니다.”이는 그가 처음으로 반항한 것이었다. 마음 속에 깊은 혐오가 출세하는 생각을 이겼다. 뼈속에서 그는 늘 동갑인 사람보다 초조하였다. 이는 거의 한 잠재의식이다. 학생 시기에 그는 이미 일을 시작하였고, 동갑인 사람들은 모두 캠퍼스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으며 책을 읽고 연애를 하는 것이 그에게는 아무 의미도 없다. 그들은 한 일을 가리키지 못하면. 좋은 직장. “좋다”는 당연히 물질적인 면이다. 안정은 보장이 있으며 한 부유한 생활을 지지할 수 있다.


석사 1 년째, 그는 두개의 기회에서 망설였다. 하나는 중국 이동 쉬저우 지사의 오퍼이고, 하나는 아일랜드에 가서 1 년동안 교류하는 것이다. 그는 망설였다. 이미 획득한 일은 그를 발목에 잡히게 했다. 집에서 그에게 “출국은 오직 1 년뿐이고, 직장은 평생의 일이다”라고 설득하였다.


부모 시대의 사람에게는 직업은 쇠 밥그릇이다. 하나 찾으면 꽉 잡아야 하며 ‘출국’은 정당한 직업에 종사하지 않다라는 것이다. 이정은 복잡해졌다. 지금까지 그는 자신의 가치관과 부모 전통의 평가 체계에서 흔들렸다. 호구를 무시하고 있지만 또한 호구를 반드시 얻어야 한다. 뼈속에 관료주의를 싫어하지만 체제에 진심으로 들어가고 싶다. 모든 기회 앞에서 그는 전통의 가치관으로 기운다. 그러나 그 중에 달갑지 않는 것을 드러냈다.


그는 오랫동안 망설였다. 결국 그는 이미 얻은 직장을 포기하여 아일랜드에 갔다. 아일랜드는 아름답고 사람도 유연해 보였다. 호수 옆에서 산책할 때 항상 비둘기가 날기 시작한다. 그는 불안하기 시작했다. 너무 한가해서 앞으로 어떡하지? 귀국하면 어떡하지? 직업은 어떡하지?


학업, 직장, 결혼과 아이 낳는 것 4 가지 중에 한가지만 이어질 수 없으면 그는 초조함에 빠진다. 마침 한 걸음이 어이질 수 없으면 영원히 연결될 수 없는 것처럼.


그가 발견했다. 고유적인 것이 자기의 머리속에 깊이 남아있어 도망쳐도 안 되고, 순종해도 안 된다. 1 년 간, 그의 말하기는 늘지 않았고, 견문도 증가하지 않았다. 먹을 때도 자제하며 놀 때도 조심스럽다. 그대로 아일랜드에서 1년 동안 중국생활을 했다.


그는 자기가 난처함에 빠진다고 느껴졌다: 고향에 가자마자 이웃이 물었다. “이정아, 너도 이제 30이 되었는데 장가도 가지 않고...”, “ 전 28 살 밖에 안 돼요”라고 반박했다. 또한 호구와 집에 대해 물었다. 한달에 얼마 벌어? 그 전에, 옛날에 자기를 지도하는 모든 분주 경로가 갑자기 지금 듣기엔 아주 싫증난다.


자기는 고향과 멀어졌는데 베이징 이 도시는 그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관념과 생활에서 그는 여전히 이어지지 못했다. 만약에 그가 결혼도 하지 않고, 집도 안 사면 고향도 차마 갈 수 없을 것이며 이웃의 눈 밑에서도 살 수 없을 것이다. 사람이 많은 지하철 타는 것도 짜증난다. 그는 가끔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나는 도대체 왜 여기서 사는가? 부모님을 위해서 그런가? 부모님은 또한 옆에 계시지 않다. 편해지려고 그런가? 아니면 더 큰 의미를 위해서 그런가, 그런데 어디에 큰 의미가 있는데? ” 그는 잠을 설치기 시작했다. 여자친구 집에서는 결혼하는 것을 재촉하며 집 한 채가 계약금이 60만 위안이다. 여자 쪽은 이미 절반을 준비하였지만, 그는 돈을 내기가 힘들었고 부모님은 도움이 하나도 안 됐다.


자기 전에 그는 가끔 여자친구에게 묻는다. 우리는 여기서 뭐 하는 걸까? 양쪽 부모님은 돈을 모두 꺼냈고, 집을 사고, 주택 대부금을 갚으며 20, 30년 동안 갚았으며 60 세에 드디어 모두 갚게 되었다. 또한 아들에게 집 한채를 사야 한다.

 

▲ © 중국신문주간

 


2. 국제무역(国贸)


직장의 보통 수준에 따르면, Jolie 의 조건은 좋지 않은 편이다. 부모님이 일찍 퇴직하였고 집에는 돈과 관계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 그는 건강이 좋지 않으며 눈은 수정체, 유리체가 선청성 질병이 있어서 한 눈은 거이 보이지 못하며 또 한눈은 1000 도의 근시이다. 외국어에 소질이 있어서 그는 쉽다고 느낄 수 있는 것 외에는 삶의 모든 면에서 그는 아주 힘든 것이다. 그는 심지어 매우 무거운 상자도 감히 들 수 없다. 이는 그가 원래 나약한 시망막을 파손시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대학 졸업한지 11 년 후, Jolie 는 베이징 국제무역 3 기 오피스텔에서 드나든다. 렌즈를 착용했지만 눈이 여전히 어색해 보였다. 눈이 크고, 밖으로 튀어나온 것은 장기간에 안경을 착용해서 남은 흔적이다. 그렇지만 얼굴은 예쁘다. 그럴 뿐만 아니라 활기찬 모습이 사람들에게 그는 자신의 생활에 대하여 통제력을 갖추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심지어 그는 선천적으로 여기에 남아야 할 사람과 같았다. 지금, 그는 미국 기업의 고급 변호사무실에서 시장 홍보 역할을 맡았으며 전에는 2 가지 일을 하였다. 하나는 고급번역이고, 또 하나는 PICC (중국 인민 보험 재산보험) 등급평정.


그는 심지어 하루의 시간을 내서 많은 전문 용어를 사용해야 그의 직업내용을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복잡한 정도가 보통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영역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말투가 빠르지만, 사람들에게 스트레스를 주지 않는다. 목소리가 부드럽고 예의 바르는 것은 그가 사람을 대하는 것에 좋은 훈련을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린 시절에 작은 도시의 난처함이 그에게서 그런 흔적을 볼 수 없었다. 그는 이미 연합국 통역 자격증을 취득하였으며 또한 그는 뉴욕에 가고 싶어하며 유엔 기구를 보러 가고 싶다고 하였다.그는 플랫폼의 중요성을 잘 알기 때문에, 뉴욕에 있는 것은일거일동이 모두 국제 등급이다. 베이징에 있는 것처럼, 마음대로 무엇을 하나 해도 중국, 중앙 이러한 명색이다. 만약에 당신은 이 도시에서 좀 더 올라가면, 출국은 쉬운 일이 될 수 있으며 경로와 거리도 다르게 될 것이다. 가망이 없어보이는 일도 여기서 가능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무한에 남아있다면, Jolie 는 자신이 어떠한 생활에 들어갔을지 모른다. 그는 이공대학을 다녔고, 전공은 영어이었다. 160cm 안 되는 키에 몸무게는 40 킬로 쯤이다. ‘유엔’ 이러한 것이 그와의 거리가 하늘의 거리였다.
그러나 지금은 국제무역 3기의 정상에 오르면, 그는 거의 전체 베이징을 볼 수 있다. 그는 국제무역 인타이의 한 등급평정 회사에서 나온 다음 국제무역 3 기에 간 것이다. 인터뷰 당일에 그는 금방 베이징의 가장 비싼 월세의 오피스텔에서 일주일정도 근무하였으며 그도 어리둥절하다고 느꼈다. 이건 국제무역 3 기야! 전체 베이징에서 가장 높은 빌딩이다. 만약에 찾지 못하면 보안이 아마 고개를 쳐들어라고 할 것이다. 이 빌딩은 이 지역에서 가장 높다. 높이는 마침 한 권력처럼, 여기에 머물 수 있는 사람은 결국 소수 사람들이다.


베이징의 최고 빌딩으로써, 또한 전국 가장 큰 국제무역센터로써 국제무역 3 기는 베이징 동 3 환 CBD 핵심 지역이다. 이 330m 의 거대한 건축은 따라가기 어려운 높이로 전체 베이징 도시를 아래에 깔았다.


맞다, 이 빌딩은 이미 하늘로 가며 전에는 이 지역에 큰 영향을 미친다.


국제무역 구역은 건국문 밖 거리에 지었으며 이는 베이징 가장 중심거리인 비즈니스 구역이다. 동장안가에 인접해 힜으며, 오피스텔, 호텔과 단체 회의사무실 등이 모여있다. 12Ha의 바닥 면적, 43만 ㎡의 건축면적, 입주한 기업은 모두 전국 500 강이다. 즉, 국제무역은 수도 황금 비즈니스 구역에 가장 황금적인 것이다. 이 빌딩의 나타탐이 왕부정, 서단과 전문 비즈니스 무역을 빛을 잃게 하였다.


여기에 필요한 것은 번영, 떠들썩함과 조화는 아니라 더 높은 층면에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사치, 외로움과 억제이다. 국제무역 3 기에서 기물마다 내력이 보통이 아니다. 4.5m 높이의 네덜랜드 Boon Edam 회전문, 9m 높이의 로비, 이스라엘에서 특별히 운송된 황금색 대리석 지면, 지붕이 4세트 500 ㎏의 무게, 600 명의 노동자가 인공적으로 만든 색깔있는 유리 샹들리에가 있다. 6 층에서 56 층까지, 최소 37 개의 세계 500 강 기업이 있다.
그러나 빌딩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자명한 공동질서가 있다. 그들은 예의가 바르면서 과도하게 친밀하지는 않다. 예의가 바르면서도 억제하며 그들은 이 도시에 가장 좋은 교육을 가지고 있으며 일하는 장소가 가장 좋은 지역에 있다. 이 모든 것들은 권력, 위치와 신분을 암시하고 있다.


Jolie 는 11 년 의 시간을 이용하여 이 빌딩의 한 자리를 얻었다. 대가는 청춘, 건강, 외로움과 저금이 없는 생활이다.

 

▲ 나는 믿는다.산 밖에 산이 있고,사람 밖에 사람이 있는 것을. 나의 호기심은 나의 생활을 풍족시켜 주었다. 베이징에 와서 10 년간 동안 노력하여 나는 최초의 목표를 달성하였다. 사진/동걸욱 © 중국신문주간

 

 

이 빌딩에 들어오는 경로는 쉽지 않다. 무한 이공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무조건 외교학원의 고급 번역전공에 들어가겠다고 하였다. 이는 거의 전국영어 분류 시험 중에 가장 어려운 것이다. 졸업하고 나서 외교관 혹은 동시통역을 할 수 있다. 난이도는 매우 크며 머리 쓰는 량이 놀랍지만, 그는 쭉 잘해 왔고, 이는 그가 베이징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출발점이다.


원래는 외교부에 갈 수 있었는데, 한 에피소드가 그를 역겹게 하였다. 석사 1 년 째, 외교학원은 한 땅의 사용권 문제로 교육부에 허락 받는 것을 요청하여 상급지도자의 허락을 얻었지만, 한 가지 요구가 있다. 한 외국어를 잘하는 여학생이 윗사람의 집에 가서 과외를 하는 것이며 영어를 가르치는 것이다. 학교에서 그는 뽑았으며 외교학원에서는 관례가 있다. 윗사람에게 과외를 해본 적이 있으면 전망이 아주 좋으며 앞으로 외교부에 들어가거나 윗사람에게 통역하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Jolie 는 경험을 얻을 수 있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에게 알려준지 일주일, 윗사람이 잘 못을 하여 퇴직당했다. 전에 부패와 생활태도 문제가 단번에 드러냈다. 그는 이제야 이는 어떠한 성질의 경로인지 알게 되었다.


학우들 중에 90%이상이 공무원에 붙었는데 그는 포기했다. 혼자 체제 외 분투 노력한 생활을 했다. 그렇지만 이는 평탄한 길은 아니었다. 공평은 있었지만, 고생은 몇 배가 된다. 이 도시에서, Jolie 는 아직까지 집과 차가 없으며 남자친구가 없다. 그가 일할 수만 있다면, 생활은 바로 좋은 수준에 유지될 수 있다. 그렇지만 직장이 일단 없어지면 모든 것이 없어진다. 이 도시에서는 그는 자신을 안돈시킬 수 없을 것이다.


다른 회사로 가기 전에, 월세는 Jolie 수입의 40%이상을 차지한다. 그는 투룸 전체를 빌려야 하며 이 도시의 어느 지역이든 이러한 집 한 채가 싸지 않아서 매 달에 4500 위안은 최소이다. 집에서 외동딸로써 그는 부모를 무한에서 베이징까지 모셨다. 부모는 모두 일찍 퇴직해서 딸에게 돈을 줄 수 없어서 가끔은 딸이 매 달에 남은 돈은 오직 3000~4000 위안뿐이라서 마음이 아프다. 그래서 일상생활 비용도 딸에게 보탠다. 최초에 Jolie 는 거절했지만 점점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3000, 4000 위안의 수입, 그는 아껴쓴다. 그는 “평소에 저는 지출이 별로 없다”라고 말했다. 그렇지만, 번번한 옷은 한 벌정도는 필요한다. 가끔 출국하여 회의을 해야 하고, 그는 자기를 보며 “옷이 별로 없다”, 그러면 인터넷에서 좀 산다. 색깔도 좋고 디자인이 좋으며 가격도 비싸지 않는 옷들이다. “몇 십위안 짜리도 입을 수 있다”, 제일 비싼 치마는 만위안의 브랜드 치마인데 90%를 할인하여 1000 위안으로 산 것이었다.


베이징에서 작은 도시와 같은 생활을 하려면 엄청 놀랄 고생을 해야 한다. 남이 보기에 Jolie 는 이 자리에서 고생이 한 층 더 올라가야 한다. 예를 들어 한 시간 반을 내서 화장을 하는 것은 남들이 자기가 밤을 새운 것을 몰라게 하려고 하는 것이다. 5 성급 호텔에서 3 시간만 자고, 다음 날에 회사 고위층 경영자와 함께 이스라엘에 가서 회의를 한다; 6 시간의 대회, 중국어는 귀에 들어가며 영어로 말해야 하며 6 시간 동안 피곤함을 드러내면 안 된다.


안 힘든 것은 아니다. 이 업종에서, 힘들어도 명예스러워야 한다. 힘들기 때문에 예의 요구를 포기하면 당신은 바로 불쌍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모든 높은 급여, 많은 스트레스의 업종과 같다. 모든 구질구질함, 피곤함은 사람을 감당할 수 없게 한다. 왜냐면, 이는 당신을 원형 형태로 되돌리게 한다. 명예스러움에서 차와 집도 없고, 저축도 없으며, 배경도 없는 진실 속으로 돌려보내는 것이다.


툭 터놓고 얘기하면, 자율은 바로 그 조금만한 체면을 위해서이다. 그는 이미 능숙하게 다른 스타일의 짧은 치마와 검정색 가디건을 정리할 수 있다. 옷차림이 알맞으며 색깔도 잘 어울린다. 한 미인의 생활은 늘 사람들 추측하게 만든다. 힘들면 외모에 신경 안 쓰는 사람들과 비교하면, 직장은 이러한 사무직원에 대해 더욱 더 가혹해야 한다.


패러독스와 같다. 베이징에서 그의 위치와 계층에 처하면, 반드시 자신을 소모하여 자원을 얻어야 한다. 그러나 고향에 가면 그는 자원도 있지만, 기능은 또한 완전히 사용할 수 없으며 고급번역과 등급평정 이러한 기능은 도시 요구를 초과하였다.


현재, 생활방식을 바꾸어 시야와 환경을 한 층 낮추어 한 차와 집 모두 있는 2 선 도시생활을 적응해 본다. 그에게 있어서 이미 완전 불가능한 것이다. 현재 생활에서 그는 직진과 후퇴가 없으며, 베이징이 그에게 좋은 면을 주었다. 이 면은 그가 발돋움을 하고서야 닿을 수 있지만, 이는 이미 그를 충분히 여기에 남게 한다.


단지, 비록 그가 옷을 단정하게 입어도 매일 국제무역3 기에서 나와 그는 반드시 1 호선으로 들어가며 수많은 사람 속에 들어가야 한다. 가장 질실한 베이징 생활 속에 들어간다. 거기는 큰 샹들리에, 유리 커피숍이 없다. 심지어 야채 잎을 차면서 집에 들어가야 하지만, 바로 그의 생활이다. 퇴근, 지하철을 타는 것과 집에 가는 것, 쭉 가면 삼중의 하늘을 통과하는 것 같았다.


그 빌딩에서 그는 커피를 사도 네비게이션을 써야 한다. 다른 브랜드 가게는 더 모른다. 유일한 한 가지 일은 그가 잘 안다. 복잡한 지하통로를 어떻게 돌려가서 지하철 출입구를 찾는 것이다.


그가 국제무역 지하상가를 돌아서 갈 때, 한 엄청 긴 통로를 통과한다. 끝까지 가지 않았는데 한 줄기의 열기가 다가왔다. 에어컨이 약해졌고, 냄새는 더 심해졌다. 여기에서는 우아하지 않아도 괜찮다. 중요한 것은 드세다와 빠르다이다. 그는 인파에 들어가며 사람들이 그를 밀고, 이렇게 지하철 1 호선에 들어갔다. 성추행은 흔한 일이다. “내 몸에 기대하는 건 무슨 뜻이에요? ”, “아까 손을 어디다 댔어여? ” 가끔은 상대방이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남에게 죄를 씌운다: “누가 만졌다고 그래? 자기가 예쁘다고 생각해? ”


그냥 다투는 것도 방법이 아니며 중요한 것은 주의를 끄는 것이다. 이에 대해 그는 이미 많은 경험이 있다. 큰 소리로 상대방의 행위를 말한다. 구체적, 상세한 내용까지 모두 말하는 것이다. 사람을 얼굴 빨갛게 하는 것이 제일 좋다. 많은 눈이 단번에 여기로 보는 것이 무엇보다도 효과적이다. 베이징에 온지 10 년이 되었다. 그는 이미 많은 경험을 겪어 경험이 풍부하다.


어렸을 때, Jolie는 옆에 야심이 없는 친구들을 무시했다. 한 친구가 그에게 말했다. 우리 집에 가는 거리를 봐라, 나의 초등학교, 중학교는 모두 이 거리에 있으며 대학도 이 거리에 있다. ‘넌 평생 이 거리에 빠지게 된다’라고 그는 생각하였다.


그는 다르다. 대학 1학년 때, 집에 등록금을 내는 것도 힘들었다. 가난한 집안, 사람은 예쁘고 포부는 매우 크다. 무한에는 그를 용납할 수 없으며 그는 더 큰 세상이 필요하다. 그를 아는 사람들이 모두 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우수하고, 분투하며, 이기려는 마음이 절실했다. 늘 “남의 집안 아이”, A+를 얻어 선두에 놓여있어야 한다.
그러나 Jolie 는 말했다. 승부욕이 많은 것은 사실은 거대한 불안전감이다. “나는 눈이 나쁘다. 절반의 장애인이다.” 그런데 비록 그렇더라도 그는 여전히 눈에 신경 쓰며 장식한다. 렌즈를 착용한다. 각막을 파손시키는 위험성도 있지만, 국제무역 3 기에서 예의 바르고 단정한 외모는 아주 중요하다.


“나는 힘들 때 기껏해야 소리를 조금 작게 한다. 하지만 사람이 알수 있게 하지는 않는다”라고 그는 말했다. 이 다름다운 빌딩인 오피스텔에서, 모든 사람들이 패션적이고, 예의 바르며, 정력이 왕성하지만, 비공식 장소에서 Jolie는 그들은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해서 자신을 “편해 보인다”로 만드는 것이다.


점심 시간에 그는 밖에 나가 좀 돌아다녔다. 브랜드 가게에서 한 사람이 가장을 사고 있다. 10 만위안 넘는데 즉시 현금으로 하여 변호사무실 동료는 1년에 70, 80 만위안 버는데 그렇게 돈 쓰지는 않는다. “좋아 보이는 사람들은 모두 고생한 적이 있어서 자신을 아끼며 절대 무례하게 이 고생을 자랑하지 않는다. ”


새로 바꾼 이 직장은 그에게 많은 월급을 주며 월세는 그의 월급에서 40%를 차지했는데 지금은 20%까지 줄였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열심히 스타벅스 데스크에 직원과 그의 포인트 카드 안에 어떻게 하면 한 세트를 만들 수 있는지를 토론하여 불필요한 커피를 다시 사는 것을 피한다.


무한에서 그는 늘 베이징에 오는 것이 하늘에 오는 것으로 생각한다. 높은 빌딩에서 일하는 “모두 소수이며”, 지금 돌아보면, “그 물건이 지금 내 뒤에 있다. 자기도 모르게 걸으며 나도 소수의 사람이 되었다. ” 단계가 높을 수록 나이도 높아진다. 남자 앞에서 그는 어색하다. 동갑인 남자 중에 우수한 사람은 모두 가정이 있으며, 나이가 적은 사람은 더 어린 여자를 찾는다. 그는 자기가 이 문제에서는 개방적이라고 하지만, 분명히 그는 아직 꺼리다. 외국에서는 30 세 여자는 사랑을 받으며, 너그럽게 대한다고 그는 강조하여 말했다.


여러 면에서 보면, 그는 가끔 연약함을 드러낸다. 출장 다닐 때, 상자를 끌고 공항에 서있다. 항공편 정보가 스크린에서 계속 업데이트하여 글씨는 작고, 거리도 멀어서 그는 잘 보이지 않았다. 이 때 그는 안색이 어두워졌다. “만약에 옆에 남자가 한 명 있었으면 좋겠다. ” 그 다음에 그는 한마디 더 보충했다: “사실은 아르바이트를 찾는 것이며 다른 면에서는 자기가 다 할 수 있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몸은 늘 그에게 불안전감을 느끼게 했다. “나는 깜깜한 것 두려워한다. 컴컴해 지면 나 아무것도 볼 수 없어서 불안하다. 나는 통역을 하는 것도 이를 위해서이다”라고 하였다. 그는 눈을 가리켜 “앞으로 나빠져도 귀로 할 수 있다”라고 하였다.


3. 용안리(永安里)


이해붕(李海鹏)은 이미 중년 층에 섰다. 이 나이에서 그는 성공한 편이지만, 여전히 자기와 대결하고 있다. 20 년 이래, 그는 늘 취미, 재능과 세속의 성공에서 군형점을 찾으려고 도시했다. 매번에 자신의 선택에 대하여 긍정적이었고, 웅대한 포부와 열정을 가지고 있었지만, 매번의 선택에서 성장할 수 없었다. 이는 그를 지나치게 단순하며 또한 경솔해 보이게 만들었다.


<패션 선생 时尚先生>전선 상품 프로듀서와 잡지 편집인으로써 지금의 이해붕은 한 정책자이다. 이 전에, 그는 문인, 소설가, <남부 주말 南方周末>의 유명한 기자, <인물 人物>잡지의 편집인이며 보도에 대해 가혹한 요구가 있다. 웃음과 욕설, 좋은 문장을 쓰며 영원히 “한 아름다운 세계에대해 향수를 품고 있다”. 그를 잘 아는 사람들이 말했다. 이해붕 마음 속에 실은 한 소년이며 나이와 맞지 않는 단순함이 있으며 이는 그의 성격에 말설임, 민감과 피함이 있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그러나 이는 그가 이 방대하고 복잡한 패션집단에서 고층까지 간 것을 방해하지 않았다. 세계 무역 기구 더플레이스 패션 빌딩에서 걸어나올 때, 그의 옷차림 스타일은 주변의 환경과 어울린다. 회색의 헐렁한 좁은 바지, 하얀 T셔츠, 키는 날씬하며 크다. 1 년 전, 그의 옷차림 스타일은 여전히 패션 쪽에서 슬라이드하며 모색성이 가득 찼으며 지금은 안정되었다. 매주에 그는 3 일정도 출근한다. 오래 전 자유의 기자 생활에 비해 이 빈도는 적지 않는 편이다. 매일, 그는 오과송 근처에서 운전하며 나온다. 장안가를 돌아 쭉 서쪽에서 동쪽까지, “서쪽은 안정되며, 작은 시민의 생활, 그 다음에 동단에 지나면 곧 변했다. 국제무역 2 기를 볼 수 있었다. 또한 동쪽에 가면 좀 떠들썩하며 사혜는 이미 전란으로 세상이 어수선한 새 베이징이다.
지금의 이해붕은 1 호선을 타지 않아도 되며 그는 운전하여 장안가 윗 세계에 걸었다. 그 노선과 1 호선은 겹친 것이지만, 지하에서 지상까지 그는 몇 년 동안에 드디어 용안리 정거장을 찾았고, 또한 출구를 찾았다. 이는 신분상의 문화를 실현했다. 기자와 문인에서 한 관리자로 변했다.


‘용안리’ 자체가 자상한 이름이며, 차오양구 서부에 위치되어 있다. 50 년대에 명명되었고, 안거의 의미를 취한다. 이 전에, 여기는 일반인의 지역이며 류 씨의 빌딩과 마을, 치 씨의 채소밭과 작은 란남 공장이 분포되어 있다. 50년대 주택빌딩을 지었으며 90 년대에 여기는 오직 한 좁은 비즈니스 거리이며 양쪽에는 철판으로 지은 간단한 단층집이다. 여기는 가장 유명한 것은 한 슈수이제, 작은 노천시장이다. 노천시장은 여러 비단과 도기를 팔며 가격은 싸며 또한 세계에서 유명하다.


슈수이제가 노천시장에서 빌딩이 될 때, 용안리는 이미 예전 용안리는 아니다. 이 변화는 2004 년부터 시잔된 것이다. 현재, 이 지역이 도로가 넓으며 빌딩도 많으며 현대적이고 깔끔하다. 서쪽까지는 왕부정이고 동쪽까지는 국제무역이다. 용안리는 그 간에 있으며 미묘한 과도처럼, 대중매체와 문화기업도 대부분 이 오피스텔에 있다.
현대 생활은 사람에게 준 위압감은 국제무역보다 뚜렷하지 않지만, 분명히 속도와 효율을 중요시 하는 것이다. 그는 사람들이 걷는 속도까지도 서쪽보다 빠르다고 생각하며 사람마다 촉박함이 있다.


용안리에서 나오고 나서, 그는 서쪽으로 쭉 가며 2 년 뒤 그의 직장장소도 베이징이 가장 화려한 지표—세계 무역 기구 더플레이스, 거기는 그의 새 물주 패션그룹의 직장 장소이다.


나이의 증가에 따라 이해붕은 자기가 점점 연약해졌다고 하였다. 비록 통행을 제한해도 운전을 못 할 때 그는 차라리 택시를 탄다. 그러면, 차가 막히더라도 자신의 공간에 막히는 것이며 박작거리지 않아도 된다고 하였다.
공간은 생겼지만, 시간은 점점 없어졌다. 이 빌딩에서, 비해붕은 늘 분주하며 서두른다. 사무적인 업무는 완전히 그를 차지했다. <남주 南周>와 <인물>에 비하면, 패션 남성 간행의 업무 내용은 전혀 다르다. 신문과 문학의 관계는 크지 않지만, 그는 여전히 가혹한 진지 태도로 진박이 자기 전에 섹스를 하는 원고에서 반복적으로 수정한다.


그의 과도한 꼼꼼함은 사람들에게 그는 초조함이 좀 있다는 것과 혹은 그는 무엇을 그렇게 급하게 완성하려는 것인지를 느끼게 한다.


20 년 전, 이해붕은 캠퍼스 시인이라는 것이 틀림없다. 몇 년 전에 그를 아는 윤현붕이 기억하기에, 이해붕은 ‘날씬하며 피부가 하얀다’, ‘한 줄기의 긴경질의 기운이 있다’, 학우들은 모두 그를 좋아하지 않으며 그를 ‘시를 쓰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 때 이는 존중하지 않는 호칭이다.


되돌아 보면, 그는 자기가 그 시대를 놓쳤다고 하였다. 신문 혹은 패션 쪽에 들어가는 것이 어느 정도 무의식중 의미로 볼 수 있다. 지금까지 그는 변화를 아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1993 년, 그는 랴오닝대학에서 공부하 였고, 갑자기 하룻밤에 전교 사람들이 줄을 서서 청약통장을 산다는 것이다. 이는 주식을 사는 권한이다. 이것 받고 팔면, 1000~2000 위안까지 팔 수 있다. “일주일 전, 만약에 당신이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라면, 당신은 캠퍼스 통스타이다. 일주일 후, 당신은 바로 바보이다. ” 그는 두 시대의 중간에 껴서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


지금 20 년 지나, 이해봉은 이미 비즈니스적인 것과 화해하는 것을 원하며 적어도 소원해지지 않는다. 그는 솔직히 말하며 자기가 지금 제일 하고 싶은 것은 바로 ‘좋은 것’이다. 이 ‘좋다’는 상품 면에서 말하면, 이는 좋은 신문잡지이든, 패션그룹이든 그는 오직 “좋다”를 추구하며 속성과 내용은 상관없다는 것이다.
최근 신문의<인물>에 비해,<패션 선생>이 이 점에 대하여 그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 분명하다. <패션 선생>이 성숙한 비즈니스 양식이 있기 때문이다. 풍부한 광고와 좋은 규모, 이 모든 것이 좋은 상품을 만드는 일에 가능성 있게 한다.


그러나 패션도 큰 문학이다. 몇 년동안 기자와 문인을 했으며 이는 이해붕이 잘 아는 업종이 아니다. 패션 빌딩에서, 많은 남자와 여자는 밝고 아름답다. 말하면 반드시 브랜드 얘기이자, 언어 속에도 영어를 섞으며 전문적인 눈빛이 다른 업종에서 반사한다. 마침 그냥 당신의 옷에 통과하는 것처럼 뒤에 가격표를 보았다.
윗사람들은 옷차림과 브랜드에 대해 급하게 보총해야 될까? “좀 배워라”, 이해붕은 말하였다. 말할 때 좀 외로워했다. “나는 완전히 모두를 배울 수 없으며 그것을 알아보지도 못한다. 어느 옷이 예쁜지 난 확실히 못 알아본다.”고 하였다.

 

▲ 이해붕은 스타기자로 부터 패션잡지 편집장이 되었다. 출근할 때 그는 1호선 지하철을 타지 않는다. 자가용을 사용하지만 항상 동서간선을 지나간다. 사진/동걸욱 © 중국신문주간

 


그는 자기가 이미 20세 쯤 환경을 적응하는 나이가 지났다고 하였다. 남들은 모두 패션적이고, 그는 좀 촌스러워 보이지 않는가? 이 문제 그는 이미 관심 갖지 않는다. 그러나 오래 전에 이해붕을 잘 아는 친구에게 들었다. 최근에 그와 약속하여 만났는데 이해붕이 물어본 첫마디가 “내 신발이 어때”이었다는 것이다.


같은 그룹에 있지만, 그와 같은 등급인 사람들의 상태는 그와 전혀 다르다. 그들은 798 에서 한 가게를 빌리며 자기가 썼던 중고품을 한다. 오직 신발만 200 켤레이다. 10 분의 1 만 팔았는데 10 만위안 쯤을 돌려받았다. “생각을 해봐, 그들의 돈은 모두 어디로 갔는지? 그들의 생활은 이런 것이다! ”놀랍게도 그는 여러분의 차이를 느꼈다. “그래서 당신은 꼭 남의 전문을 아주 아주 중요시 해야 하며, 가서 남의 옷이 예쁘지 않다라고 함부로 말하면 진짜 안 된다! ”


이해붕의 수입은 착실한 생활층면에 쓰지만, 그는 이미 패션원고를 수정하기 시작했다. 38 페이지, 패션 주간의 밀라노, 파리와 런던, 그는 모든 것을 감히 수정한다. “원고라면 기본적인 규율이 들어있을 것이다”, 이 부분은 그가 잘 알고 자신있게 수정하는 것이다.


신문잡지에 비하면<패션 선생>의 환경이 더욱 복잡하다. 더 많은 이익이 연루되어 있지만, 이해붕이 보기에는, 좋은 점이 대가보다 많은 것이다. “<인물>은 <패션 선생>의 비즈니스 양식을 꺼낼 수 없다. ” 이 양식은 반드시 보도의 질에 도움이 줄 수 있는 것이 아니지만, 착실하게 광고에 끌 수는 있다. 영향력과 비즈니스 가치를 나타난다. “비록<패션 선생>(내용) 이 반응이 좋지 않아도 뭐가 문제야? 똑같이 130 페이지 넘는 광고이다. <인물>은 아무리 잘해도, 20 페이지의 광고밖에 안 되며 이는 당신이 잘해서 되는 것은 아니다”고 하였다.
그는 데이터, 계량 지표와 보통 의미의 성공 얘기를 꺼냈다.


오래 전 <남주>에서 기자를 할 때, 이해붕은 동료들이 얘기하는 것을 들었다. 동료가 “그럼, 누구 편집인 하고 싶지 않겠어?”라고 한 것이었다. 그 때 이해붕은 놀랐다, “사람은 어떻게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지? ” 그 때 그는 뉴스 취재하며 인터뷰를 한다. 늘 돌솥비빔밥 한 그릇, 된장찌개 하나, 한 속에 잡지를 들며, 한 작은 기자의 분주자학 속에서 만족을 느꼈다. 한 편의 원고를 위해 편집자와 값을 흥정하며 “저 안 가면 안 되나요? 너무 힘들어요. ”


편집자가 그를 한 시간동안 설득했다. 그 때 그는 한 엄청난 원고를 완성하였다. 피곤함에 있어 출장도 기간이 길었으며 사람이 완전 피곤한 상태였다. 죽어도 두 번 이런 일 하지 않겠다. “해붕아, 공공이익을 위하여 네가 가야지. ” 이는 바로 맺는 말이었다. 이해붕이 듣고나서, “그래요, 제가 갈게요”라고 하였다. 그 때의 이해붕은 ‘공공이익’ 4글자에 설득된 것이었다. <남주>에 입사한 첫 2년에, 그는 원고발송량이 제일 많은 기자이며 그 빈도가 매주 한 편에 가까웠다. 바로<남방주말 南方周末>의 아름다운 시대이다, 광고가 억까지 넘어 2000 년 한 평범한 기자의 월급이 2 만위안이고, 부부 두 삶이 남방계에서 2 년 일하면, 사환에서 집 한 채를 살 수 있을 것이다. 광동성 위원회의 보호를 받아 모든 사람들이 한 줄기의 힘을 참으며, 자기가 마음이 넓어서 온 세상을 품을 수 있을 것이라고 느꼈다. 힘이 없는 사람을 힘 있게 만들며, 비관적인 사람을 직진하게 만든다. 심사도 있지만,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다.


이해붕이 말했다. 그는 몇 년동안 발간사를 썼지만, 모두 전성기보다 감성적이지 않으며 감동적이지 않았다. 그는 감화력 있는 문장도 써본 적이 있지만, 자신이 없게 썼다. 그 때의 사람들보다 못한다. “햇빛이 당신 얼굴에 비추이며, 내 마음 속에 따뜻하게 남아있다. ”


원고료를 통해 번 저금, 또한 여러 친구에게 6만위안을 빌렸다. 그는 옥천로에서 한 140㎡의 집을 샀다. 104 만위안으로 샀고, 계약금은 30 만위안이 다. 원고료를 한 수효로 환전하며, 그 다음에 이를 이용해 생활을 할 때, 기자 업종의 고생과 스트레스가 뚜렷해진다.


그 때 그는 이미 평판과 명성이 있으며, 끊임없이 여러분의 점점 높은 기대치를 만족시켜야 한다. 이는 그를 견디지 못할 정도로 피곤하게 했다. 그는 재미없다고 생각했다. “신문 이 직업 원래 재미없으며, 오직 상품을 주문하여 만드는 것이다. 한번 두번 잘하면, 남들이 당신을 칭찬할 것이고, 당신은 이 일을 반복적으로 하며, 그러나 결국 이는 그다지 재미있는 것은 아니다. ”


본심을 되돌아 보면, 그는 오직 문학을 좋아한다. 자기가 좋은 작가를 할 수 있는지에 대해 자신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타고난 소실이 있는지도 확실하지 않다. 우둔하게 신문 업종에 들어갔고, 들어가고 나서 또한 잘한 편이다. 점점 편집함이 생겼다. 바로 이러한 점 때문에, 그는 주변 평가에 대해 예사롭게 더 중요시한다. 그는 바로 이러한 평가를 의지하여 이 업종에 남게 되었다. 이 업종자체의 모든 것들, 예를 들어 일부러 말을 꺼내는 것, 인맥을 유지하는 것은 그에게 끌리지 않는다.


그러나, 그가 직면한 질의도 많아지기 시작했다. 원촨이 지진 때, 많은 사람들이 보도한 것 중에서, 이해붕의<베이촨 재앙 후 잔혹한 면 北川灾后残酷一面>이 나왔으며 비방과 칭찬이 각각 반반이다. 어느 사람이 그를 재난 앞에서도 ‘작품’만 생각한다고 비난했다. 섬세 냉혹 중 마침 한 남다른 의도를 원하는 것처럼, 이러한 평가는 이해붕이 싫어하는 것이다.


나이와 심기가 커졌다. 더 나아가면 어려워지기 시작한다. 마침 보도가 글을 모아 책으로 만든<불조가 1호선에 있다 佛祖在一号线>가 출판되었으며 판매량이 속히 10 만을 넘었다. 6개월 때까지는 판매의 최고봉까지 올랐다. 그는 “입소문 식 전파”를 안다. 이해붕은 이때문에 기쁨을 느끼며, 이숙자가 그에게 자신을 주었다. 그는 자기가 신문에서 나와 순수 문학으로 돌아가도 된다고 생각한다.


“당신은 마음 속에서 늘 엄숙문학을 인정하면, 무엇이 당신을 이 업종에 남게 하는가? ” 그는 생각하여 말했다.
소설을 쓰는 것은 긴 과정이다. 예상 밖의 그는 이러한 자기가 중요시한 기능을 직면할 때, 그는 유례없는 육중과 긴장을 드러냈다. <저녁에 고요 夜来寂静>자서에서, 그는 필법이 장엄, 사상의 조밀, 모든 유머감이 살아졌다.
글을 쓸 때 그는 한 글자 한 글자 씩, 한 문장 한 문장 씩 수정하였다. 문장이 ‘명확히 나올 때까지’ 쓴다. 뒷 부분까지 썼을 때 그는 힘들다는 것을 느끼며, 기분이 왔다갔다 하며, 일찍 일어나는 것이 괜찮으며 저녁에는 또 쓰레기를 쓰는 것 같과 같았다. 14 만 글자가 남았을 때 그는 도저히 못 쓰겠다며 대충 마무리 하며, 출판 전에 또한 1만 글자를 삭제했다.


전에, 그는 늘 자기가 생계와 직업의 휩쓸어 자기의 소실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할 기회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진짜 꼼꼼해 지면, 그는 기쁜 경험이 아니라는 것을 발견했다. “한 35 세 총각처럼, 한번도 해보지 않았으며 처음이다. 긴장하고 흥분하며, 그는 과연 할 수 있을까? 물론 못한다.”


소설을 다 쓰지 못했는데 사람을 만나고 싶으며, 사람이 말하는 것을 듣고 싶으며, 사람과 얘기를 나누고 싶다. <블로그 천하 博客天下>가 그를 한 활동에 요청했다. 그 활동의 규격은 높지 않지만, 그는 기분 좋게 허락했다. “저는 동굴에서 너무 오랫동안 갇혀져 있었다. ”

 

▲ 장안가는 베이징에서 제일 번잡한 거리이다. 장안가와 1호선 지하철이 중합되어 있어 지하철은 수많은 탑승객들이 사용하고 있다. 사진/동방 IC  © 중국신문주간

 


소설이 100 만 권까지 팔렸으며 인세가 30 만이다. 이해붕은 또 산을 나왔으며 이번에는 기자와 소설가 아니며 편집인이다. <인물>잡지에서, 이해붕은 수시로 갈 수 있는 마음으로 월급요구를 말했고, 한달에 1만위안이다. 출판인이 그의 허락을 승낙했다. 빠르게 ‘이해붕’이 이름으로 많은 사람들을 모였고, 이상주의가 또 다시 제기되었다. 모든 사람들이 이를 위해 밤 새고, 진지하며 그는 10 년 전 그가 이 업종에 고생한만큼 바쳤다.


그가 떠날 때, 이상주의가 모인 사람들이 엉망이 되었다. 그러나 이해붕은 말했다. 그는 많은 심혈을 바치지 않았고, 이러한 곳에 진정한 깊은 감정도 주지 않았다. 그 사고방식은 그가<패션 선생>을 시작한 것과 같지만, 한 상품을 만들고 싶을 뿐이다. 여기는 조건이 부족하면, 저기로 가고, 그는 일반 의미의 성공을 원하는 것이다. 사람이 중년이 되며, 이해붕은 ‘이상주의’에 대한 생각은 예전과 다르다. ‘이상은 비즈니스가 지지해야 될 수 있는 것이며, 이가 없으면 당연히 끊는 것이다. ’ 그 해에, 그는 폐쇄된 환경에서 빠져나와 베이징까지 왔으며, 문학 상의 한 줄기 편집을 품고, 신문 업종에서 이곳 저곳 아르바이트하였다. 지금은 자원이 있고, 명성도 있다. “난 아직도 그 차에 있다”, 그가 말한 것은 자기 마음속에 진정한 문학의 꿈인데 <패션 선생>의 일상 잡무는 여전히 그의 대부분 시간을 차지했다. 지금, 그는 동쪽에 가서 집을 사는 것을 계획하고 있으며 위치는 대략 퉁저우 지역에 있다.


한편은 출근하기 편하고, 또 한편은 전에 그와 함께 베이징에 온 친구도 동쪽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그 전에 이해붕은 동쪽을 싫어했다. 그는 옥천로에서 집을 샀고, 서쪽의 단정함, 우아함과 문기를 좋아해서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는 1 호선에 따라 동쪽으로 쭉 가면, 그 느낌이 묘하다. 사람이 걷는 속도도 모두 다르며, 점점 빨라지고 초조해진다. 그러나 그의 생활과 직장도 1호선에 따라 동쪽으로 이전한다.

 

▲ 이런 고급호텔의 인테리어는 예술가들의 손에서 만들어졌다. 집에 있는 편안한 느낌을 갖도록 설계하였다. 조우는 손으로 벽을 만지며 말한다. 사진/동걸욱  © 중국신문주간

 


<저녁의 고요>머리말에서, 이해붕은 정중히 ‘만일 한 기자로써 죽지 않으면, 나의 인생도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이다’라고 썼다.


“지금도 이렇게 생각해? ”이해붕이 생각을 좀 했으며, “그렇지”라고 그가 말했다. 말투가 조금 망설였다.


4.천안문(天安门)


“염치없는 말이기는 하지만 나는 이 도시의 수익자다.” 조우(曹宇)가 말한다.


서른 살 넘은 그는 걸음걸이 모양을 아주 중요시한다. 한 걸음 한 걸음을 리듬에 맞춰 가는 것 같은데 여유로운 느낌이 나오는 듯하다. 그는 이정(李征)과 동갑이지만 고생한 적이 없다. 베이징에서 태어나고 베이징에서 컸다. 특히 부모가 공무원으로 일을 하고 있고 자신은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다. 그는 이 순조로운 인생을 사는 것은 자신이 베이징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특히 주인공적인 의식이 있어요, 이것은 다 제가 베이징에서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인터뷰하는 날에 그는 장소를 왕부정 월도프호텔로 정하였다. 그날 비가 와서 그는 한 시간 전 일찍 도착하였다. 만날 때 그는 수건을 들고 있었다. “난 티슈를 안 씁니다.” 그는 말한다. “환경보호에 도움이 안 되고...보푸라기도 있죠.”


그는 괜찮은 삶을 살고 있다. “나는 월급이 높지 않지만 더 좋은 삶을 유지하고 싶은데 남의 것을 훔치거나 빼앗을 수도 없어서 때로는 부모님의 도움이 필요해요.” 그가 말한다.


대학교 2 학년 겨울 방학 때, 동기들이 고향에 내려갈 때 그는 상품 진열을 배우러 갔다. 4 학년 2 학기에 동기들이 다 인턴으로 떠났을 때 그는 중국 미술관에 지원자로 갔다. 동창생들은 구직하느라 정신이 없는데 그는 미술관에서 전시만 즐기고 있었다. 며칠 동안 봤더니 이게 시간이 가장 빨리 간다고 여겼다. 졸업할 때 다른 사람들과 같이 논문을 고치고 또 고쳐서 제출하는데도 논문은 통과되지 못했다. 교수님께 중국미술관 입장권을 보내드렸더니 논문이 바로 통과되었던 것이다.


그의 인생에 남은 것은 미(美)를 추구하는 것이다. 일상생활의 미, 음식의 미, 예술의 미. 가족과 예술연구원 원장이 부모랑 서로 친구 사이라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여름방학 동안에 그를 원장 집에 맡겼다. 그는 날마다 공왕부장보각(恭王府藏宝阁)에서 놀았고 가장 즐거웠던 시간은 바로 점심 때 도시락 먹고 남긴 쌀을 버리지 않고 처마 위에 놓으면 다음 날이 되기 전에 새들이 깨끗이 먹어 버리는 것이다.


예술적인 면에서 그는 자신만의 많은 생각이 있다. 글씨체를 따라 쓸 줄알고 서예도 잘 한다. 그림도 배웠고 일련의 19 세기 화가 이름을 외울 수 있다. 중앙미술학원에서 전문대학원 석사과정을 진행해 본 적 있고 많은 미술계 사람들이 그의 친구이다.


하지만 이것들은 생존과 관련이 없다. 그는 이런 취미들을 직업삼아 금일미술관 보험기금에서 공공교육 부주임직을 1 년 반 동안 해봤다. 일이 많아지기 시작하자 그는 직장을 떠났다. 월급, 전기 수도세 등 모든 것들이 사립미술관에 큰 부담이 된다. 현실은 항상 우리가 마음속으로 준비했던 것보다 가혹했다.


여러 곳을 떠돌다가 공무원이 되었고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똑같이 체제 내에 살아있지만 그와 이증과는 상황은 매우 다르다. 그의 집이 서성구(西城区)에 있고 직장은 태묘(太庙)에 있다. 바로 천안문광장의 동북쪽이다. 지하철을 타는 경우가 거의 없어서 날마다 출퇴근은 ‘아주 행복하다’ 도로 양측에는 관광유적지이며 정문에서 걸어가도 아름답고, 경산 뒤 거리에도 아름답고, 운전, 택시, 자전거, 버스 어느 교통수단이든 다 아름답다.


가끔 지하철을 탄다면 그는 천안문 동역에서 내려와서 이중 검사를 통과해야 하고 역행도 금지되어 있다, 8차선 120미터인 넓은 도로, 중요한 날엔 전철이 천안문 동역과 서역에 정차하지 않는다.


여기는 베이징성의 중심 지역이다. 명청시대 때 이곳은 권력자들의 활동하던 민감 지역이다. 영락(永乐)제 때에는 ‘승천문’이라고 했고 순치(顺治) 8년에 ‘천안문’으로 개명하였다. ‘외안내화(外安内和), 장치구안(长治久安)’ 을 의미한다.


현재 이곳은 많은 정치인, 관광객, 외국인, 보따리 장사꾼, 근무병과 광장 곳곳을 누비는 경찰이 모여 있다. 외국인들에게 이곳은 아주 신비한 지역이다. 중국 지방에서 온 일반사람들에게 3시간 동안 줄을 서서 5초 동안 모택동을 구경할 수 있게 된다면 이미 영광스런 일이다.


조우는 예전 베이징 사람의 특성을 갖고 있다. 생활적인 많은 일들에 대해 열심히 하지 않고 대충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사람은 삶을 살아가면서 제일 중요한 것이 즐거움이다. 그에게 인생에서 딱 두 가지 선택이 있다. 죽거나 적극적으로 살거나 그 외 다른 선택은 있을 수 없다. 이 두 개 중 하나를 선택을 하지 않고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것은 결국 실패자가 될 수밖에 없다.


이정과 함께 지위루(焦裕禄)를 공부할 때 그도 영화를 보고 토론에 참석하였다. 지위루에 대해 토론을 한다고 해서 이정은 테이블을 엎을 뻔 했다. 하지만 조우는 토론을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팀 리더가 비행기 표와 호텔을 예약해서 디자이너가 쇼를 보러 갔는데 디자이너가 돌아와서는 그 쇼에 대해 혹평하는 것은 문제가 있는 사람이 아닌가요?”


그가 물을 마시고는, “당신은 체제 내 사람입니다. 조직이 당신을 키우고 당신에게 지위루를 구경시키고 체험하게 하고, 견학하러 가도록 만들어줬어요. 이런 것들을 통해 좀 더 진취적이 되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게 고통스럽다고 생각한다면... 내가 보기에 그 따위 시람들은 당에서 버려야 돼요.”


조우가 말했다. “게임규칙을 만드는 사람도 아니면서 그 규칙에 도전하려 한다면 이곳에서는 그냥 바보가 될 뿐이다.” 이것이 조우의 원칙이다. 그는 <중국신문주간>에게 말한다. 체제 내에서 일하는 게 위아래의 질서와 윗사람을 존중하는 것을 알고 있어야 되고, 그의 장점을 찾아서 자신을 설득해야 하는 것이다. “저항은 의미가 없고 자신을 다치게 할 뿐이다.”


그는 계속 이 규칙을 지키고 있다. 많은 베이징 아이들처럼 이 도시가 그의 것이다. 살아있는 목적은 이 도시가 그에게 주는 모든 것을 느끼는 것이다. 매일 그는 당의 건설 업무를 마친 후 퇴근하여 집에 들어가서 샤워하고 옷 갈아입고 싱글 소파에 누워 불을 켜고 음악을 틀고 책을 읽는다. 아무거나 다 본다.


‘체제 내’의 것도 보고 당의 최근 이념과 동태도 배운다. 그는 안정감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제일 좋은 병원들이 다 베이징에 있고 수능시험 점수 기준도 낮고 차 구매도 지방보다 쉽고 의료보험도 되고, 국민보험 부담이 적고, 주변에는 다 베이징 사람이고 모든 조건이 좋다. 자신의 성격도 타지사람 보다 좋다고 생각하고 잠도 타지 사람보다 잘 잔다고 생각한다. 조우는 말한다. “세상에 사랑이 넘쳐나야 살맛이 나는 것이다.”


이야기 중에 그는 그의 직장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하지 않았다. 그가 중국미술관, 금일미술관의 일(건축이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을 언급할 때 그 일들은 정식적인 직업이 아니다. 어떤 것은 파트타임이고 어떤 것은 그냥 한 동안만 유지한 것이다. 그는 이 모든 경험으로 자신의 이력을 만들어서 자신을 예술애호자로 불리는 것을 원한다.


금일미술관에서 조우를 알고 있는 사람은 그를 다시 만나고 나서 깜짝 놀랐다. 그의 상태가 예전과 완전히 다르다고 말했다. 이 말을 들은 그는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그 당시에 그는 좀 게을렀지만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매일 새벽 두세 시까지 일하고 마치고 나서는 미련이 남아 미술관에서 좀 돌다 집에 가곤 했다.


그런데 왜 지금의 일을 선택하였을까?


한참 멍때리던 그는 “나도 포부가 있는 사람이잖아요! 나는 <뉴스연합보도>를 볼 때 울음이 나오는 사람입니다. 나는 이 시대의 수익자이니까 사회에 보답해야 되잖아요.”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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