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가장 북쪽의 북쪽

어둠 속에 찬바람이 요란하게 불고, 보이는 곳은 온통 흑백 세상으로 검은 것은 바위요 흰색은 눈이니 <왕좌의 게임(Game of Thrones)>의 ‘북쪽 경계’가 생각나는 것이 선사시대처럼 황량하고 고요하다.
온라인팀 news@inewschina.co.kr | 2016-06-07 18: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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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정민얼(曾敏儿)


한 가지 생각이 마음에 맴도는 생각이 있었다 - 북극의 겨울을 체험해 보고 싶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여행을 가는 여름이 아닌 겨울에 홍콩에서 오슬로를 경유해 북극령 노르웨이 트롬소에 도착한 후 다음날 정오 함박눈을 뚫고 북쪽으로 계속해서 올라갔다. 그렇게 2시간 반의 비행 끝에 마침내 스발바르제도의 행정중심지 롱위에아르뷔엔 - 북위 78°15′에 위치한 세계 최북단도시에 도착했다. 


오후 3~4시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날은 저녁처럼 어두웠다. 롱위에아르뷔엔은 도시라기보다 작은 마을에 가깝지만, 북극에서는 인구 1,800명 규모의 대도시에 속한다(영문 이름 Longyearbyen의 ‘byen’은 노르웨이어로 ‘도시’라는 뜻이다). 이곳보다 더 북쪽으로 사람이 사는 곳은 30명 주민의 뉘올레순을 들 수 있지만, 도시다운 도시는 공항을 비롯해 상업지대, 병원, 교회, 여행사, 슈퍼마켓, 술집, 호텔, 박물관, 갤러리, 재학생 300명 규모의 스발바르드대학과 광산지대까지 있는 롱위에아르뷔엔이다. 스발바르드제도에 처음 사람이 정착한 것도 풍부한 광산자원 때문이다.


시내에 도착하자 날은 이미 어두워져 있었다. 오후 4시 반 밖에 되지 않은 시간이었다. 사실 2월 중순이면 북극에서 밤이 가장 춥고 긴 시기도 아닌데 이렇게 일찍 날이 어두워진 것이 신기했다. 


비자수속을 밟을 때에야 이번 여행이 더 번거로웠던 이유를 알았다. 스발바르드제도가 ‘솅겐’ 령이 아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깊은 역사적 배경이 있다.


북극해에 있는 스발바르드제도는 ‘추운 해안’이란 의미로 6만2,000km2의 면적에 3천 명의 주민이 생활하고 있다. 1194년 북유럽 해적이 발견했을 가능성도 있지만, 공식적으로는 1596년 네덜란드 탐험가 빌렘 바렌츠(Willem Barents)가 발견한 것으로 인정되고 있다. 바렌츠가 네덜란드 상인의 자금을 지원받아 선박 세 척의 함대를 이끌고 암스테르담에서 출발해 북쪽으로 항해하며 중국으로 통하는 무역로를 찾던 중 이 제도를 발견하고는 ‘스피츠버겐’(네덜란드어로 ‘높고 가파른 산지’의 뜻)이라 이름 붙였다. 아쉽게도 그는 제도를 발견한 다음 해에 죽었다. 그 후 네덜란드, 영국, 독일, 프랑스의 고래잡이어부들이 스발바르드제도에 정착하기 시작해 가장 많을 때는 고래잡이어선 300척이 섬 사이를 드나들었다고 한다. 1900년. 제도의 운명을 결정한 일이 일어났다. 그 해 질 좋은 석탄광산 자원이 발견된 것이다. 각국 사람들이 광산을 열기 위해 몰려들었지만, 이곳의 추운 겨울을 견디지 못하고 정착하지 못했다. 1906년 미국 보스턴광산회사의 대주주 존 롱위에아르뷔엔이 이곳에 도시를 세우면서 그의 이름을 따 도시의 이름이 롱위에아르뷔엔이 되었다. 롱위에아르뷔엔은 1943년 독일 나치에 의해 파괴되었다가 2차 세계대전 후에야 복구되었다. 오늘 우리가 있는 롱위에아르뷔엔의 모습도 세워질 당시의 모습은 아니다. 


여러 나라가 땅을 차지하고 광산을 짓다 보니 자연히 국제분쟁이 쉽게 일어났다. 이에 1920년 노르웨이, 미국, 덴마크, 프랑스, 이탈리아, 일본, 네덜란드, 영국, 아일랜드, 스웨덴 등이 공동으로 <스피츠버그조약>을 채결, 제도에 대한 주권이 노르웨이에 있으며 채결국가는 자유롭게 경제활동을 할 수 있고 권리를 공유한다고 규정했다. 이 조약으로 스발바르제도는 북극 최초의 유일한 비(非)군사 지역이 되어 ‘전쟁을 목적으로 이용될 수 없다’. 노르웨이는 이 조약에 대한 불만이 있었지만, 열강의 강요로 결국 1925년 이 조약에 비준하면서 조약의 이름을 <스발바르드조약>으로 바꾸고 제도의 공식 명칭을 ‘스발바르드제도’라 하였다.


역사를 읽어보면 언제나 놀랍지만, 특히 중국이 이 조약의 46번째 채결국가라는 사실에 놀랐다. 1925년 중국 북양(北洋) 정부 임시집권자 돤치루이(段祺瑞) 파견관리가 프랑스 파리를 방문해 7월 1일 조약을 채결했다. 이 조약으로 중국인들이 91년 전부터 그 지역을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우리가 세관을 지날 때 또 어떤 불심검문을 당했을지 모를 일이다.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 북극 바다의 빙하를 구경하고 싶었는데 겨울에는 그런 프로그램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롱위에아르뷔엔에서 겨울에 놀 거리가 무엇이 있을까? 가장 먼저는 역시 짜릿한 설원 오토바이와 개 썰매 타기이다. 설원 오토바이는 운전면허증이 있어야 해서 일행 중 면허가 없거나 면허증을 두고 온 몇몇은 다음날 오후 3시에 개 썰매를 탈수 밖에 없었다. 


할 일이 없던 우리는 되는 대로 롱위에아르뷔엔 시내를 배회했다. 말이 시내지 실제로는 양 옆으로 가게, 우체국, 슈퍼마켓, 호텔과 게스트하우스가 늘어서 있는 거리이다. 중심가를 따라 걷다 보니 그곳의 유일한 슈퍼마켓 밖에 검은 광부조각상이 보였다. 백 년 전 금을 캐는 꿈을 앉고 이 혹한의 땅을 찾은 사람들이 생각났다. 

 

▲ © 롱위에아르뷔엔 시티 사진/IC


롱위에아르뷔엔은 사방이 새하얀 눈에 건물마다 색색의 첨탑이 있다. 스발바르드제도에는 주민보다 많은 5,000마리의 북극곰이 살고 있어 지도에도 혼자 가면 안 되는 곳이 표시되어 있다. 북극곰을 만나면 속수무책으로 도망갈 수 있는 길도 없기 때문이다. 

 

중심가를 따라 걷다 보니 곧장 스발바르드대학에 도착했다. 세계에서 제일 북쪽에 있는 이 대학은 1993년에 설립되었으며 지구물리학, 북극 생물학, 지질학 및 북극과학기술 등의 전공이 개설되어 300명 정도의 학사, 석사, 박사를 배출하고 있다. 롱위에아르뷔엔의 아이들이 전부 이 대학에 진학해야겠다는 농담도 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렇게 추운 곳에 살고 싶을까 싶다. 2,046km 밖의 수도 오슬로야말로 그들이 북극을 벗어나는 ‘꿈의 땅’은 아닐까? 


오래된 광산지역을 지나 이어지는 통나무집들은 기념품 가게나 술집 같은데 문은 닫혀있다. 공터에는 케이블카트랙도 깔렸고 어두컴컴한 밤에 한쪽 구석에 있는 광부조각상이 기괴한 느낌을 준다. 우리는 멀리 도시의 등불을 향해 갔다. 깊이 쌓인 눈길을 걷고 얼어있는 강도 건너고 언덕을 올라 마침내 불빛이 있는 도로에 도착했다. 


밤공기 사이로 언덕 위 교회의 종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들어보니 세계에서 제일 북쪽에 있는 교회에서 따스한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방향을 짐작해가며 교회 쪽으로 언덕 두 개를 올라 교회에 도착할 때쯤 가로등 아래 멈춰 숨을 돌렸다. 불빛 아래 눈발 속 교회첨탑이 꿈결 같다.


입구를 찾아 신발을 갈아 신고 위층으로 올라갔다. 교회는 1958년에 지어진 목재건물로 간결하면서도 아름다운 벽감이 있다. 마침 목사님 한 분이 노르웨이어로 성경 봉독을 인도하고 사람들이 조용히 앉아 경청하고 있었다. 옆에 배낭이 놓인 사람들은 의도치 않게 들어온 관광객인가보다. 우리는 성경 구절과 찬양소리를 들으며 사람들을 따라 일어났다 앉기를 반복했다.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교회의 분위기에 완전히 빠져 모두가 엄숙하고 경건해졌다.


의식이 끝나자 사람들은 앞쪽 방으로 들어가 자유롭게 커피나 차와 함께 와플을 먹었다. 원래 주민들이 화요일 저녁마다 기도회를 하는데 관광객에게도 개방한다. 우리는 주민들을 따라 나이프로 커다란 치즈 덩어리에서 한 조각을 잘라 와플 사이에 끼워 먹었다. 이곳에만 있는 산양 젖으로 만든 브루노스트(Brunost)치즈라 했다. 모두가 편안하고 즐거운 표정으로 웃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이튿날 오전 우리는 슈퍼마켓에서 장을 봐 숙소로 돌아와 점심을 준비했다. 식자재가 많은 편이 아니라 꼼꼼히 비교해본 결과, 채소와 과일 가격이 물가가 높기로 유명한 오슬로보다 두 배 정도 비싸다는 결론을 얻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북극이다 보니 육지의 60%가 빙하이고 나머지 40%도 얼음과 언 땅이라 채소와 과일을 전부 외지에서 들여와야 하니 말이다. 


오후 3시 차를 타고 썰매 기지에 도착했다. 기지는 황량하고 멀리 있는 산속에 있었다. 어둠 속에 찬바람이 요란하게 불고, 보이는 곳은 온통 흑백 세상으로 검은 것은 바위요 흰색은 눈이니 <왕좌의 게임(Game of Thrones)>의 ‘북쪽 경계’가 생각나는 것이 선사시대처럼 황량하고 고요하다.


인솔자가 엽총을 매고 앞서 길을 인도했다. 산에는 북극곰이 있을 리 없었지만 어쨌든 미리 조심해야 한다. 우리는 특수 제작한 면 점프슈트를 입고 개 썰매를 타고 달렸다. 인솔자의 소개에 따르면 썰매견들이 살기 좋은 온도는 영하 23도로 이보다 기온이 높으면 개들이 너무 지친다고 한다. 높이 솟은 설산 사이를 달리자니 얼음층이 두껍게 얼어있고 찬 바람이 요란하게 몰아치는 것이 끝없이 외롭고 쓸쓸했다. 


자료를 찾아보고 안 사실이지만 많은 나라가 이곳에 과학연구기관을 세워 EISCAT 레이더, 북극광기지, NASA ‘IMAGE’ 시리즈의 자력계 등 전리층과 자성층 시설 위주의 과학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스발바르제도에는 ‘최후의 날 저장고(Doomsday Vault)’도 있다고 한다. 중국은 2002년 여름 롱위에아르뷔엔에 첫 번째 북극과학탐사답사기지 - 이리트 무린(伊立特·沐林) 북극과학탐사답사기지를 세우고 2년 후 여름에는 더 북쪽인 뉴 올슨에 중국 황허(黄河) 과학기지도 세웠다. 


셋째 날 아침 우리는 스발바르드교회에 갔다. 교회 앞에 서서 눈길이 닿는 곳까지 멀리 바라보니 가까이는 여러 빛깔의 롱위에아르뷔엔 시티가 있고 멀리는 롱위에아르뷔엔 빙하, 그 옆으로는 는 라스빙하가 있었다. 눈과 빙하가 한 폭의 수묵화 같았다. 


교회 근처 언덕에는 조그만 무덤이 있어 츠즈졘(迟子建)의 소설 <눈의 공원묘지(白雪的墓园)>가 생각났다. 이곳에 잠든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요즘 롱위에아르뷔엔 시티에서는 마음대로 죽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스발바르드 총독부는 1995년 <스발바르드 전입자 추방 또는 거절규정>을 채택해 정부가 경제소득이 부족한 사람이 스발바르드에 전입하는 것을 거부할 권리가 있음을 규정했다. 규정에 따르면, 전입자가 집이나 직장을 구하지 못하거나 퇴직 후 스스로 생계를 유지할 수 없는 경우 떠나야 하며, 임산부도 출산 예정일 한 달 전에는 떠나야 한다. 롱위에아르뷔엔 병원에는 침상이 8개밖에 없어 응급치료에만 쓴다. “환자도 고비만 넘기면 스발바르드를 떠나 노르웨이 본토로 돌아가야 한다”고 한다. 이러한 규정들은 인간적이지 못하고 이상해 보이지만 물론 현지의 냉혹한 생존환경과 관련이 있다. 얼음지표면 아래는 기본적으로 땅이 얼어있어 시체가 자연적으로 썩지 않기 때문에 지질보호를 위해 이렇게 할 수 밖에 없기에 롱위에아르뷔엔 시티에서 이런 규정이 21년동안 추진되어 온 것도 당연하다. 


지구의 끝과 같은 이 먼 곳에서 다른 중국인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예상했는데 뜻밖에 숙소 아래서 4명이나 만났다. 알고 보니 이곳에는 이미 중국인의 발자취가 있었다. 


1908년 5월 강유위(康有为)가 세계여행을 하다 스발바르제도의 섬에 도착해<벽유를 대리고 노르웨이 북극해 섬 정상에 올라, 한밤중에 해를 보니 지려다 갑자기 뜬다(携同璧游挪威北冰洋那岌岛颠,夜半观日将下没而忽升)>는 시를 짓고 시 뒤에 북극의 백야를 묘사한 설명을 적은 것이다:


5월 24일. 한밤중 11시. 배를 대고 산을 오르기 시작해 12시에 정상에 도착했는데 날이 정오처럼 밝다. 정상에 있는 정자에서 술 석 잔을 기울이며 해를 보니 나직하게 지는 것인지 곧 뜨려는 것인지 정말 밤 같지 않고 매우 기이한 풍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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