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최우선 과제는 갈라진 틈을 메우는 것

신임 대통령이 직면한 최우선 과제는 옛 것을 버리고 새로운 기풍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많은 시간을 할애해 극도로 흥분하고 낙담하고 공격적인 사람들을 원래의 일자리로 돌려보내 분열된 사람과 집단 더 나아가 가정의 평안을 되찾는 것.
그가 취임하는 날 싸움이 재개되었을 때 미국과 더 나아가 전세계는 더 불안하고 더 급진적인 미국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한다.
온라인팀 news@inewschina.co.kr | 2016-12-05 17: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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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지특약 기고/ 위하이양(于海洋)


많은 에피소드가 발생하고 또 적잖은 변고를 겪긴 했지만 2016년 미국 대선은 그래도 분명한 대통령선거였다. 사람들의 귀를 오염시킨 ‘이메일 게이트1.0’, ‘동영상 게이트’, ‘탈세 게이트’, ‘이메일 게이트2.0’등은 모두 선거 스캔들이자 정치인의 계략일 뿐 정치적 비상상황이라고 할 수는 없다. 모든 후보들은 ‘진흙탕에 들어온 이상 깔끔한 모습으로 나갈 순 없다’는 심리적 준비를 했을 것이며 유권자들도 ‘도덕적으로 완벽한 사람은 이런 게임을 즐길 수 없다’고 충분히 예측했을 것이다. 


역사적 시각에서 이를 분석한 논평에 따르면 미국의 역대 대선에는 언제나 설전이 넘쳤고 이번은 그저 유난히 격렬했을 뿐이다. 이런 평가가 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 것이 미국 공화당 대통령후보 트럼프와 민주당 대통령후보 힐러리의 선거전은 계속 암살 위협에 시달리던 케네디 시절만큼 격렬하지도 않았고 닉슨이‘워터게이트’때문에 탄핵되었던 그 지경에 이르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그저 설전의 격렬함으로 대선의 부정적인 영향을 평가하는 것은 분명 과학적인 방법이 아니다. 어디까지나 사람의 주의력 집중은 쉽게 시간의 영향을 받아 과거는 저평가하고 현재는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대선의 문제점은 결코 그저 상호비방의 수준이 아니다. 선거 후유증이 드러낸 문제는 결코 후보의 도덕적 하자 또는 품격 저하와 같이 단순하지 않다. 


사실 급진적이고 조급한 민중의 분노가 어디에서 나왔으며 몇 달에 걸친 그들의 상호비방이 그저 결론 없는 상처내기였는지 아니면 새로운 정책 탄생 전 반드시 거쳐야만 할 혼란이었는지는 진정으로 주목해야 할만한 문제다. 미국 정치인과 유권자가 이번 대선에서 드러낸 모습은 전세계를 경악시켰지만 그들이 진정으로 얻고자 했던 답은 여전히 오리무중 안에 갇혀 확실히 보이지 않는다. 

 

▲ © 10월 24일 미국 플로리다주 탄파에서 열린 선거유세집회에서 트럼프가 미국 국기를 껴안고 있다.사진/IC

경제 사회 발전의 부조화

 

현재 미국사회의 심각한 불안을 초래하고 또 누차 대통령후보로 하여금 의도적으로 회피하거나 어물쩍 화제를 돌리는 하는 미국식 문제는 무엇인가? 또 왜 이런 문제가 체계적이라는 말을 하는가? 이들 문제의 답을 찾기 위해서는 반드시 미국경제, 사회체계의 상호작용 관계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 한다. 


우선 미국의 모든 문제는 경제 문제다. 산업구조의 조정과 거시적 경제의 발전 주기는 미국사회의 동향을 결정했다. 2016년 미국의 상반기 1,2분기의 경제성장률은 모두 2%미만이다. 3분기의 최종 통계 데이터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비록 9월, 10월의 숫자가 2분기보다는 나아 보이지만 전반적으로 볼 때 미국 경제가 올해 2%의 경제 성장 목표를 초과 달성하기란 그리 낙관적이지 않다. 1947년에서 2007년까지의 연평균 3.4%의 성장률과 비교했을 때 오늘날 미국의 경제성장 속도는 분명히 둔화되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미국 경제가 소머스가 말한 ‘장기침체’상태에 빠졌다고 말하기엔 좀 부족하다. 우선 글로벌 금융 위기 후 세계 경제의 성장 둔화는 큰 추세로 심지어 다수의 서방 국가와 신흥 산업화 국가는 심각한 위기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도 미국경제의 성장률은 서방국가 중 선두그룹에 속해 있다. 그 다음으로 가장 중요한 점 하나는 바로 미국경제 성장모델이 현재 경제학계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다는 것이다. 사회 분배의 시각에서 볼 때 이 모델은 빈부격차 등의 문제를 초래했다고 비난 받긴 하지만 그렇다고 이 경제모델 자체의 매력을 부정할 수는 없다. 


미국이 일찍이 1990년대에 포스트산업사회에 진입했다는 것은 논쟁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다. 1947년 이래로 3차산업의 명목 GDP의 성장 속도는 7.62%로 줄곧 2차산업의 6.13%를 상위했으며 서비스업이 국민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80%를 초과하는 등 경제학자들이 ‘산업구조의 소프트화’라고 부르는 시대에 진입했다. 즉, ‘산업시대의 전통적 물질 생산과 상호 연관된 하드웨어 산업구조가 기술, 지식생산과 상호 관련된 소프트화된 산업구조로 전환’된 것이다. 경제발전 과정에서 소프트산업(주로 3차산업을 가리킴)의 비중은 끊임없이 상승해 ‘경제 서비스화’가 이뤄졌다. 


세계 각국은 이런 경제구조를 성장, 진보의 상징으로 보고 앞다퉈 모방하고 있다. 현재의 산업구조 아래서 서비스업은 전통산업과 농업 성장을 이끌고 제어하는 역할을 한다. 즉, 발달한 3차산업에서 창출된 자금, 기술, 정보, 환경 및 채널 상의 강점을 1,2차산업에 주입해 산업과 농업 개조 및 업그레이드를 촉진했고 서비스업은 세계 산업 사슬의 심장이자 동맥, 그리고 영혼이 되었다. 서비스업을 끌어안은 미국은 전세계로부터 자금, 기술, 고급인재와 각양각색의 1차 제품을 흡수했고 이를 다시 가공, 통합, 재 제조해 각국으로 되돌려주었다. 그 결과 미국은 세계 경제에 대해 매우 중요한 지도력과 발언권을 가지게 되었다. 


경제구도 및 활력에 있어 미국경제는 구조적 문제가 나타나지 않았다. 비록 미국경제를 비판하는 사람이라도 미국이 현재 전세계에서 가장 개방적이고 자유로우며 활력이 있는 경제체라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세계 경제 위기의 후유증의 해소가 지지부진해 미국경제의 어려움을 초래했지만 만약 서비스 산업의 선도적 지위와 그로부터 지지를 받는 달러의 글로벌 화폐로서의 지위가 없었다면 미국 경제의 데이터는 더욱 엉망이 되었을 것이다. 미국과 함께 서방세계에 속한 EU 여러 국가와 비교해 본다면 사람들은 모두 유사한 결론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미국과 유사한 금융혁신, 자유시장과 서비스산업 업그레이드를 추종하는 영국의 상황도 유럽 대륙의 절대 다수의 이웃 국가에 비해 양호하다. 


그러나 모든 동전에 양면이 있듯 단순한 경제학 영역만 벗어나면 이 만인의 칭송을 받는 산업구조는 이제 만신창이가 될 정도로 비난 받을 것이다. 미국식 경제구조는 국가의 경제 활력을 강화하고 정부 통제가 초래한 저효율과 낭비를 줄였으나 사회 구조를 방추형에서 모래시계 형태로 변환시키는 역할도 했다. 


현재 미국 서비스업은 약 전미 65%의 취업인구를 흡수하고 있으며 이들은 주로 4개 영역에 분포되어있다. 그들은 각각 하이테크산업의 대규모 과학기술 및 관리인력, 회사와 기업내의 고학력 화이트 컬러, 직업전망이 안정적인 블루 컬러와 공무원, 교사 및 기타 공직자 등 방대한 정부직원이다. 이 4대 집단 내에 과학기술 관리 인력의 임금이 가장 높아 중, 상위계층에 웅거하고 있으며 많은 사람들이 나중에는 새로운 회사의 파트너가 되거나 아예 기회를 봐 독자적으로 창업을 한다. 


그러나 전세계를 대상으로 서비스하고 통제하는 고도의 국제화를 배경으로 이들 인력 중 5분의 1은 뛰어난 자질을 가진 해외 이민자가 직접 대체하고 있다. 화이트컬러 직원은 한때 자칭‘90% 중산층’이라고 하던 미국 중산층 계급의 주류였으나 사무자동화와 정보화에 따라 소수의 관리자층에 들어간 화이트컬러 이외의 대다수 화이트컬러 직원의 업무는 점차 기계화되고 평범해져 사무실 안의 블루컬러로 전락했으며 그들이 받는 대우 또한 낮아졌다. 


미국의 역사학자인 존 스매일(John Smail)은 20세기 후반기에 새로운 미국은 ‘중간계층과 노동자의 경계가 이미 거의 사라졌다’고 자랑스럽게 선언한 적이 있다. 미국 노동자 계층은 한때 윤택한 생활을 즐기던 호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은 이미 산업 규모의 축소에 따라 질적 변화가 생겼다. 미국이 3차산업에서 얻은 국제적 지도력의 기본 전제는 미국이 주도적으로 글로벌 자유 시장을 지지하고 추진한다는 것이다. 전세계에서 자금, 기술, 뛰어난 인재를 흡수하고 나서 고기는 물론 국물까지 다른 사람에게 나눠주지 않을 이유는 없지 않는가? 


그리고 사실상 세계화의 국물을 모두 통째로 삼켜 마실 수 있는 사람도 없다. 제조업, 자원채굴산업의 해외 이전은 개인의 의지로 바꿀 수 없는 과정이다. 오늘날 국제화 수준이 높은 산업은 기본적으로 모두 미국에서 이전되어 나갔다. 한 미국 아저씨가 받는 임금과 대우를 다 합치면 제3세계에서 숙련된 노동자 한 팀을 운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전히 미국에 남아있을 수 있는 산업에는 군수기업과 같이 국가가 해외 이전을 불허하는 산업이나 첨단 과학 기술을 보유하고 있어 해외에서 양도받을 수 없는 스마트화, 정보화 및 환경보호 등과 관련된 신흥 산업 등이 있다. 


종합적으로 볼 때 미국 중산층은 결국 빈곤에 빠진 것인가? 이 문제에 있어 통계 데이터와 일반 민중의 체감 사이에는 거리가 있다. 현재 미국의 GDP중 50% 이상의 소득은 노동자에게 분배되고, 30% 이상은 자본가에게 분배되어 데이터상으로 노동의 가치가 자본의 가치보다 낮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들 데이터를 다시 구체적인 집단으로 세분화해 보면 오랫동안 전국 총 취업인구의 8,90%를 차지했던 중산층 내부에 이미 심각한 분화가 이뤄졌음을 발견할 수 있다. 3차산업 중 그 비중이 가장 큰 금융, 보험, 부동산, 임대, 과학기술 연구개발은 인력집약형 산업이 아니다. 하지만 이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임금이 크게 상승하고 또한 원래 제각각이었던 상류계층과 깊이 융합되면서 고도로 국제화된 뉴 아메리칸이 되었다. 반면 노동집약형 산업인 소매업, 운수창고업, 제조업, 광업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계속 줄어들고 있으며 이들 산업에 흡수된 많은 노동력은 이미 잠재적인 고실업 위험군으로 전락했고 억지로 일자리를 유지하다 보니 소득 또한 빠르게 줄어들고 있다. 


이로 인해 전통적으로 10만 달러가 경계였던 중산층의 소득 구조는 그 의미를 상실하게 되었다. 중산층 중 소수의 중상위층이 다수인 중하위층보다 더 큰 파이를 가져감에 따라 절대 다수인 중하위층이 평균화된 것이다. 


통계데이터에 따르면 1983년부터 2010년까지 중간소득 가정의 순자산은 겨우 2% 증가했으나 고소득 가정의 순자산은 87%나 증가했다. 인플레이션의 요소를 제할 경우 1990년부터 2008년까지 중산층 가정 소득의 실제 성장률은 놀랍게도 34%에 이른다. 하지만 미국 중산층 가정의 축척 자산은 2010년에 오히려 1983년 수준으로 돌아간다. 한때 ‘90% 중산층’을 자칭했던 수많은 사람들은 지금도 여전히 자존심을 위해 자신의 자리를 고수하고 있지만 사실상 그들의 소득은 일찌감치 체면을 지키기에 부족한 상황이다. 필자의 한 동료가 미국에서 만났던 집주인이 바로 전형적인 예이다. 한때 화이트컬러였던 집주인은 2011년 실업했지만 줄곧 이를 악물고 오바마 정부의 구제금을 받지 않고 있다. 그는 자신이 절대 ‘구제가 필요한’미국인에 속하지 않는다고 분명히 말했지만 결국은 집을 팔아 빈곤을 해소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 원리는 단순하면서도 잔인하다. 중산층은 고통을 호소하고 있지만 미국 산업구조의 업그레이드와 성장의 시각에서 볼 때 ‘이들은 이미 가치가 없다’는 것이 기본 사실인 것이다. 글로벌 경제 불경기의 장기화에 따라 각국간의 경쟁이 갈수록 잔혹해지는 상황에서 미국은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인건비를 줄여야 할 필요가 있다. 과거 일반적이었던 중산층의 소득구조는 개선이 부족해 계속 조정이 필요해 보인다. 2016년 미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미국의 잠재적 성장률을 1.8%-2%의 수준으로 아주 낮게 예측했다. 이런 비관적 예측의 주요 원인은 단위 노동력 원가의 상승 속도가 전 분기 대비 너무 빠르고 명목 임금의 증가속도도 노동생산성의 증가속도를 훨씬 상위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데이터에 따르면 2016년 2분기까지 미국 비 농업부문의 노동생산성은 3분기 연속 하락하고 있다. 노동생산성은 떨어지는데 임금이 오르는 기이한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사회 무질서의 가능성 극대화


경제체제가 양호하게 운영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 중산층이 분열되고 빈곤해지자 정부와 민중은 ‘데이터와 체감 중 무엇을 믿을 것인가’, ‘경제와 사회 중 무엇을 건드릴 것인가’, ‘성장할 것인가 현상을 유지할 것인가’의 문제에 직면하게 되었다. 대체적으로 이 세계의 모든 원리와 방법은 상호 충돌하기 때문에 우리에게 정치가 필요한 것이다. 미국의 신임 대통령이 직면한 근본적인 도전은 바로 경선과정에서 내뱉은 감정적이고 근본적인 문제 해결 없이 심지어 오해마저 불러 일으키는 헛소리들을 떨쳐버리고 미국의 심각한 구조적 모순을 다소나마 해소할 수 있는 처방을 찾는 것이다. 


이번 대선에서 가장 걱정을 불러일으킨 중산층 빈곤 문제와 관련하여 모든 사람의 이목은 세금과 취업문제에 집중되어있다. 이는 잘못된 해결 방향이다. 왜냐하면 양자는 분배 문제를 해결할 뿐 생산 문제는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전통산업이 경쟁력과 이윤 창출 능력을 회복해야만 해당 분야 종사자들이 비로소 자신의 임금을 지킬 수 있다. 


전통산업의 부활을 이루려면 나라 문을 꼭 닫고 보호무역을 하자는 트럼프나 신흥산업 육성을 통해 노동력의 이동을 추진하려는 힐러리의 방안 모두 옳은 방법이 아니다. 전자는 국제사회가 불허하는 방법으로 모든 국가가 나라 문을 닫을 경우 미국이 손해를 볼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후자는 국내 재계의 거물들에게 매력적이지 않다. 왜냐하면 산업 자동화와 정보화의 수준이 높은 그들은 많은 인력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전통산업의 낮은 이윤이 이미 현실화된 상황 아래서 미국 정부가 이들 기업의 사망을 늦추기 위해서는 정부의 지원 역량을 크게 늘리는 수밖에 없다. 정부는 지분 소유, 보조금 지급, 재정 지원, 정책적 혜택 등의 방법으로 자금과 선진 기술을 이들 흡입력을 상실한 기업에 유입시키고 기업의 경쟁력은 완만하게 회복시켜 기업이 낮은 이윤 심지어 적자상태에서도 계속 운영될 수 있도록 보장할 수 있다. 


미국 전통산업은 연명이 아닌 부활이 필요하다. 이런 측면에 서 볼 때 유럽 및 여러 신흥 산업화 국가의 국유화 간섭조치는 참조할만한 성공적 사례이기는 하나 이는 미국에 있어서는 위대한 ‘레이거니즘’을 부정하는 역사적 반역이자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는 행동에 속한다. 


게다가 이미 쇠락한 제조업, 소매업, 광업 등에 대규모 보조금을 지급하고 장기적인 지원을 한다면 미국정부는 분명 심각한 재정적 부담을 지게 될 것이다. 이번 대선에서 힐러리와 트럼프는 세원 확보 문제에 있어 팽팽히 대립했다. 그러나 선거 과정에서 인기몰이를 위해 양 후보 모두 문제를 단순화하는 오류를 범했다. 이 때문에 신임 대통령은 소위 단순히 증세 또는 감세하는 방식의 처방은 모두 쓸데없는 소리였음을 인정하고 새로운 방안을 찾아야 할 것이다. 


힐러리는 부자에게 ‘버핏세’를 징수할 경우 향후 10년간 미국 정부가 1.5조 달러를 추가 징수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는 2011년 오바마가 연임에 성공한 후 제기한 4.4조 달러 적자감소계획 중의 증세 관련 주장을 그대로 옮긴 것과 같다. 그러나 오바마가 4년을 추진하고도 아무런 효과를 보지 못한 이 방안을 힐러리가 해낼 수 있다고 믿는 미국인은 아마 없을 것이다. 전통산업과 관련 종사자에게 맞춤식 감세 계획을 시행하겠다는 트럼프의 방안은 힐러리가 지적한 것처럼 오바마가 8년 동안 기울인 적자감소의 노력을 철저히 무너뜨려 국가의 재정이 버티지 못할 것이다. 게다가 그는 이들 사양산업이 감세를 할 경우 살아남을 수 있을지를 증명할 수 없다. 


미국이 효과적으로 세수정책을 조정하려면 부유층에 대한 증세와 중산층에 대한 감세가 반드시 동시에 시행되어야 하며 양자 중 뭐 하나도 부족해서는 안 된다. 현재 미국의 세수 수입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낮아 겨우 7-8% 수준으로 정부의 재력은 한정적이나 맡은 임무가 다양해 만약 크게 증세를 하지 않는 경우 오로지 세수부담구조 조정이라는 방법만을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증세와 감세를 동시에 시행하고 합리적으로 부담시킨다는 것이 말하기엔 쉬어도 진짜로 하기엔 쉽지 않은 일이다. 


왜 이런 말을 하는가 하면 미국의 정치선거 중 미국인구의 0.25%만을 차지하는 최상위층의 정치헌금이 전체 개인 헌금의 80%를 차지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공화당이든 민주당이든 사실 모두 감히 재벌의 미움을 받을 만한 행동을 할 수 없다. 연소득 100만 달러 이상의 부유층에 대해 부유세를 징수하겠다는 오바마의 ‘버핏세’계획이 4년 동안 효과를 보지 못한 이유도 바로 민주당이 감히 이 증세제도를 빈틈없이 규정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버핏 같은 깨달음이 있는 인사의 경우 조금 더 세금을 내고, 없는 인사의 경우 빠져나갈 수 있었던 것이다. 


최상위층의 세금은 거두지 못했으니 중산층에 대한 감세 또한 자연히 속 시원히 진행할 수 없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야심 차게 중산층 전문 T/F를 구성했지만 결과적으로 2000여억의 감세는 마치 스펀지에 떨어진 물 한 방울처럼 중산층의 빈곤을 해결하는데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정부가 돈이 부족하다는 것 외에도 감세의 여력을 부족하게 하는 원인은 2가지가 더 있다. 하나는 소위 중산층이 미국 인구 비중의 65%를 차지하고 그들의 직업, 신분이 각기 달라 다양한 집단을 포괄할 수 있는 감세계획을 만든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심지어 A에게 감세하는 것과 B에게 감세하는 것이 상호 모순될 수도 있다. 이것이 바로 힐러리와 트럼프가 모두 당당하게 중산층 감세를 지지한다고 말하지만 그들이 말하는 대상이 다를 수 있는 이유다. 다른 하나는 통계상 세수 부담은 급증하는 중산층 생활비의 일부분으로 교육, 의료, 주택 비용의 상승 또한 마찬가지로 그들의 삶을 위협하고 있다. 그러나 만약 정부가 보조금을 늘려줄 돈이 없다면 교육, 의료와 같은 공공재 가격이 내려가지 않을 것이고 정부가 일단 이런 분야의 보조금 지급을 늘릴 경우 중산층 감세는 불가능해지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현재 세금 문제의 현주소이다. 


필자는 결코 미시정책의 역할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공장을 세우고, 공장 운영을 지속시키고 계약을 체결해 수백 수천 수만의 일자리를 만드는 노력은 물론 일부 미국인의 상황을 개선할 수 있다. 그러나 이들 미시적 정책 차원에서의 노력은 영원히 전 차원에 걸쳐 영향을 끼칠 수 없으며 또한 미국 대통령이 나서서 할 일도 아니다. 미국경제 사회구조의 부조화와 심각한 중산층의 빈곤에 대해 신임 대통령은 전임 대통령들처럼 보완하는데 만족할 수 없고 사회 또한 이런 빈틈을 보고도 못 본 척 지나칠 수 없다. 


그러므로 미국 정부의 모든 문제점은 다시 선거의 원점에 돌아와 있다. 양당의 단결이 없이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나 골수에 깊이 박힌 투쟁 철학과 정치적 원한이 또 다시 협력 심화를 방해하고 있다. 또한 양당이 깊이 협력한다 하더라도 꼭 시스템 개혁에 필요한 화해 무드를 조성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또한 안타까운 것은 양당 협력의 차원과 품격이 너무 낮아 정치인들 사이에 장물을 나누는 수준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뿐 위대하고 이상적 지침 부족으로 진정으로 가치 있는 정치 협력을 이뤄 함께 문제를 해결하기에 역부족이라는 것이다. 반체제적 단체의 강력한 굴기는 이미 양당의 전통적 정치강령의 편협함과 경박함, 그리고 완고함을 남김없이 드러냈다. 신임 대통령은 그의 상상력과 지식을 발휘해 이와 같은 정치적 헛소리들을 초월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양당은 계속 이들 아무런 의미가 없는 오래된 문제에 시간을 낭비할 것이며 자신의 지지자들이 점점 줄어드는 것을 바라볼 수밖에 없다. 


트럼프가 대통령 보좌에 점차 다가감에 따라 반체제 단체들도 통합을 마치고 일차적으로 그 형태를 구성했다. 이번 대선에서 유일하게 만족스러운 점은 바로 유권자들이 극도로 열정적이고 깨어 있어서 패배자들은 스캔들이 아닌 자신을 싫어하는 유권자들 때문에 패전했다는 것이다. 대선이 중도성향의 유권자를 거의 찾을 수 없고, 또한 절대 다수의 유권자가 모두 전통적인 양당 진영에 속하지 않았을 때 양당 진영이 새로운 세력의 침투로 인해 파괴될 가능성이 최대화된다.


미국의 어려움은 바로 한참을 불안하게 지낸 사회계층이 입으로 불만을 토로하다가 이를 행동으로 옮기기 시작했고 사람들을 불안하게 하는 직접행동을 통해 미국 정치 판도의 구조와 운영에 간섭하고 있다는 데 있다. 이런 무질서한 행위는 이미 권위를 상실하기 시작했으나 여전히 권력을 독점하고 있는 엘리트 집단에게 있어 그들이 일찍이 익숙하고 능숙한 정치적 투쟁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정치 원칙, 제도와 정책을 새롭게 쓰는 것을 의미한다. 


그 누구도 이런 신구교체가 과연 성공할 수 있을지, 또한 성공하는데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할지 예측할 수 있다고 자신할 수 없다. 미국 정치가 결코 반드시 혼란스러울 것이라는 건 아니지만 사회 무질서의 가능성이 극대화된 것은 사실이다. 신임 대통령은 이런 혼란 정국의 공범자이지만 취임일 후에는 이전의 혼란은 용인할 수 없다고 선포해야 한다. 문제는 이미 선동되어 미국의 변화를 기다리는 유권자들이 거리에 서서 이전처럼 불만만 토로한 후 돌아가 자신이 할 일을 할 수 있겠냐는 것이다. 


누가 대선 후 미국인의 분풀이 대상을 맡을 것인가? 


이번 대선의 비극성은 모호한 스토리가 아니라 지나치게 분명한 논리에 있다. 정치인간의 원한이 정치를 주업으로 하는 집단 밖까지 확산되어 서로 다른 계층간의 원래는 대체적으로 상호 용인하고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었던 마지막 베일을 벗겨냈고 사실은 결코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던 미국의 일반 민중을 상호 원망하고 피차간에 뺏고 빼앗기는 전장으로 내몰았다. 가장 슬픈 것은 독설이 난무하고 핏자국이 보이는 상황에서 대치하는 사람들이 지식적으로나 감정적으로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생각해내지 못하고 심지어 그들이 미워하는 대상 또한 실존하는지 확신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어떤 사회에서 일단 이와 같은 국면이 발생하면 정부는 지혜가 많은 스타일의 전통을 유합하고 이를 격화시키지 않을 정치가가 장악하거나, 아니면 아예 의지가 강하고 적극적이고 진취적인 개혁자를 천거해 더욱 빨리 더욱 일찍 더욱 강하게 사회 전환을 추진해 마침내 혼란 속 통치를 이뤄내는 결과를 얻을 것이다. 역사적으로 전 독일 대통령인 힌덴부르크가 전자라고 할 수 있다. 그는 1920년대 2차세계대전 전까지 추풍낙엽 의 상황이었던 바이마르 공화국을 그의 생명이 다할 때까지 20년동안 안정적으로 이끌었다. 미국 전 대통령인 테어도어 루즈벨트와 프랭클린 루즈벨트는 후자라고 할 수 있다. 테어도어 루즈벨트는 대통령에 되기 전에는 마치 트럼프처럼 성격이 괴팍했다. 하지만 당선 후에는 재벌을 엄벌하고 노사분규를 해결해 미국이 제2차 산업 혁명의 혼란스런 시기를 성공적으로 넘길 수 있도록 이끌었다. 프랭클린 루즈벨트는 1930년대 대공황의 힘든 위기에서 장애의 몸으로 이끌고 미국인에게 복지사회 건설을 호소했고 그 결과 미국은 파시즘화와 프랑스화되는 것을 피할 수 있었다. 


미국 정치학자인 이스턴은 정치를 일종의 권위성 분배라고 본다. 비록 이런 분배가 모든 이론과 입장을 다 배려할 수 없더라도 이는 언제나 각기 다른 이론을 가진 집단간에 타협을 이루지 못해 결국 아무도 먹지 못하도록 냄비를 내던져 버리는 것보다 낫다. 이런 차원에서 이야기하자면 사회 모순이 격화되어 과거의 것을 버리고 새 것을 세우는 것이 절박한 상황일수록 정부와 정치가는 비록 그 권위가 사람들의 원망을 불러 일으키더라도 더욱 권위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현재 미국은 완전히 상반된 상황이다. 대선 후 원망이 분출되어 나오는 사회에 이미 명성이 너덜너덜해진 두 명의 정치인만 남았다. 그들은 모두 사람들의 원망을 불러일으키고 또한 권위가 부족하다. 트럼프의 위대함 혹은 비난 받을 점은 그가 무엇을 발견했는지 혹은 무엇을 특히 지혜롭게 표현했는지에 있지 않고 그가 엘리트그룹 중 처음으로 몸을 낮춰 실의한 미국인에게 입을 맞추고 그들의 환심을 사려고 했다는데 있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트럼프는 그가 속한 계급을 배신했고 승리를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분노한 사람들이 더욱 급진적이 되도록 선동했으며 이로써 대선을 반체제파의 연병장으로 만들어 이들로 하여금 자신의 강대함과 식육자의 허약함을 발견하게 했다. 


“원래 우리는 떨쳐 일어나면 강하다”모든 혁명은 이런 의식이 전파되면서 시작된다. 트럼프는 미국인의 분노를 등에 업었지만 여전히 권위가 부족해 그의 모습은 혼란스러운 틈을 타 거사하려는 선동가와 같을 뿐 심사 숙고하는 행동가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의 주장은 요약할 수 없고 그의 말은 분풀이하기에 좋고 힘도 넘치지만 그게 다다. 


미국 사회를 전례 없이 분열시켰지만 또한 완전히 이슈가 모호해진 선거를 거친 후, 사람들은 회상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아메리카의 제45대 대통령이 대선 기간 중 드러낸 형편없는 정견 발표 능력과 이행 능력일 것이다. 감정적인 소음을 걸러내면 사람들은 새로운 정견이나 새로운 계획을 거의 찾을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미국의 수많은 병소들은 또 다시 청산되어야 때가 되었다. 그러므로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는 날 신임 대통령이 직면한 첫 번째 임무는 새로운 기풍을 새우는 것이 아니라 많은 시간을 할애해 극도로 흥분하고 낙담하고 공격적인 사람들을 원래의 일자리로 돌려보내 분열된 사람들과 집단 더 나아가 가정의 평안을 되찾는 것이다. 이것은 아주 방대한 사업이라 그 누구도 성공을 장담할 수 없다. 게다가 그 배후에는 끊임없이 한계선을 뛰어넘는 정치적 악투로 눈이 발개진 반대당이 다음 전투를 준비하고 있다. 그가 취임하는 날 바로 전투가 재개될 것이며 미국, 더 나아가 전세계는 더 불안하고 더 급진적인 미국을 맞이하기 위해 준비해야 할 것이다. 


비록 신임 대통령은 취임 후 이러한 상황에 맞부딪치고 이를 바꾸기 위해 노력하겠지만 미국 사회에 널리 퍼진 난폭한 기운은 단시간 내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이며 달랠 길 없는 분노는 대내적이든 대외적이든 미국 사회의 모순이 외부에 미치는 영향까지 포함해 일련의 부정적인 영향을 가져올 것이다. 이런 상황은 역사적으로 무수히 나타났으며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민중의 원망이 분출될 때 가장 가능성이 큰 것은 바로 아무런 관계가 없는 사람을 도마 위에 올려놓음으로써 일반 민중의 단순한 분풀이 욕망을 만족시키는 것이다. 


누가 대선 후 미국인의 분풀이 대상을 맡을 것인가? 멕시코 이민이나 잠재적으로 미국의 국가안전을 위협하는 중동의 어떤 국가? 아니면 미국이 TPP를 체결하길 눈 빠지게 기다리는 동맹국? 그게 아니면 가장 쉽게 미국의 고민거리로 분류되는 중국 또는 러시아? 만약 정치가들이 이전 모습 그대로 선거 때처럼 화인을 다른 곳으로 옮기고자 하는 수작을 부린다면 미국의 문제는 미국의 가상 적들의 책임이 될 것이다. 그래서 국제 및 지역정세 또한 이로 인해 새로운 혼란이 나타날 수도 있다. 


[글쓴이는 지린(吉林)대학교 행정대학원 부원장이자 교수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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