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남, 멋대로 만화세계에 뛰어들다

혹자는 왕웨이(王微)가 만화에 진출한 것은 “인터넷이라는 Boss가 쳐들어와 CG업계에 건강한 바람을 불러일으켜 화려한 표면의 딱딱한 진흙을 털어 준 것”이라 말한다. 이공계 출신의 IT 기술자가 ‘천박하고 경솔한’ 엔터테인먼트계에 무엇을 가져올까? ‘아마추어’인 그의 자유분방함은 어떠한 득과 실을 가져올까?
온라인팀 news@inewschina.co.kr | 2016-04-05 13:4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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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저우펑팅(周凤婷)


베이징(北京) 북5환도로 밖의 1호지 예술단지는 시내에서 떨어져 있으며 798 예술단지만큼 유명하지도 않다. 외지고 조용한 이곳은 미세먼지가 코를 찌를 때에도 눈을 들면 파란 하늘을 볼 수 있다. ‘Light Chaser Animation’의 본부가 바로 단지 한 자락의 건물 두 동에 있다. 


‘Light Chaser’의 직원이 지은 건물 두 동의 이름에는 의미가 있다. 붉은 벽돌건물의 이름은 ‘과보’동(夸父楼), 100m 밖의 회색건물은 이름은 ‘후예’동(后羿楼)’이다. ‘과보(夸父)가 태양을 좇다(夸父追日)’, ‘후예가 해를 쏘다(后羿射日)’ 모두 목숨을 다해 ‘빛’을 좇는 것이다. 


과보동은 ‘Light Chaser Animation’이 제작되는 홈 그라운드로 네 층 모두 개방식 사무구역이다. 건물에는 식당, 카페, 휘트니스와 햇볕을 쏘이며 파티를 즐길 수 있는 야외 테라스가 있으며 창업회사의 모형이 흩어져 있다. 직원들이 모두 컴퓨터 앞에 앉아 일하는 모습이 온 방에 프로그래머들이 모여 있는 인터넷 테크놀로지 회사처럼 보인다. 가까이 다가가서야 그들이 하는 일이 전혀 다름을 알게 된다. 


직원들은 컴퓨터에는 문외한인 예술가들이다. 


2013년 3월 투더우넷(土豆网, 훗날 여우쿠(优酷)와의 합병으로 ‘여우쿠-투더우’그룹으로 출범한)전(前)CEO 왕웨이(王微)가 ‘Light Chaser Animation’의 창립을 발표했다. 그의 2차창업으로 다른 분야의 극장가와 감독으로 나선 것이다. 


기술이 있는 이·공과 출신 남자는 자신의 아름다운 생각을 가지고 젊은 애니메이션 제작자들과 함께 애니메이션 영화에 뛰어들어 원작의 ‘중국이야기’에 전념하고 있다, 3년 가량 동안 IT 유전자룰 가진 이 회사의 효율적인 집행력으로 Light Chaser Animation 그룹은 자본, 기술, 인재, 경영모델, 지속 가능한 창의력을 얻었다. 


그러나 그의 첫 번째 장편애니메이션 에 대한 시장의 반응은 예상보다 뜨겁지 않았다. 


키가 크고 마른 체구의 왕웨이는 186cm 키에 긴 다리가 《Little Door Gods》의 문지기신 위레이(郁垒)의 모습과 매우 닮았다. 진지할 때는 강력한 카리스마로 성공담을 이야기하면 웃음이 절로 나온다. 청바지와 후드티 차림의 그가 편안한 자세로 소파에 앉아 <중국신문주간(中国新闻周刊)>앞에서 3년 전 ‘Light Chaser’의 여정을 회상했다. 


중국의 피카소 되고 싶어


2012년 8월 24일 7석저녁 왕웨이는 Weibo(微博)에 ‘퇴직’이란 표현으로 자신이 세우고 7년 동안 운영한 ‘투더우넷’을 떠난다고 발표했다. 


‘퇴직’ 후 갑자기 많은 시간과 충분한 기운이 생긴 그는 여기저기 다니고 칼럼을 쓰며 양조장을 열어 와인을 만들거나 칠기작업실을 열어 전통공예를 할까도 생각해 보았으나 얼마 가지 않아 그만두었다. 


그 시절 왕웨이는 <에스콰이어(Esquire)>에 칼럼을 쓰고 있었다. 2013년 3월 <여행을 해야 하는 이유(为什么要旅行)>의 제목으로 발표한 글에서 그는 ‘매우 진귀하고 중요한 무언가를 찾고 싶은데 그게 무엇인지 모를 때가 있다. 그럴 때는 장소를 바꿔보면 무엇을 찾고 있었는지가 생각난다.’라고 썼다. 만족을 모르는 젊은 왕웨이는 19세에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23세에는 혼자 운전을 해 미국일주를 하고 일과 공부로 뉴욕, 워싱턴, 파리를 전전하며 포기하지 않고 ‘가장 진귀한 것’ 찾아 다녔다. 


칼럼의 끝에 그는 ‘그러나 나는 이 모든 여행을 통해 더 많은 땅을 밟았을 지는 모르나 내가 찾고자 했던 것은 결국 어디서도 찾지 못했다. 그것은 내 의식의 어딘가에 숨겨져 있다.’라고 적었다. 


그렇게 7개월의 방황 후 2013년 3월 13일 오전 7시 왕웨이는 Weibo에 또 하나의 글을 올렸다. ‘돌아왔다’ 단 네 자였다. 같은 날 오후3시 <월스트리트저널> 중문사이트에 왕웨이 관련보도가 발표되었다. ‘중국 최대 온라인 동영상사이트 투더우 창립자 왕웨이가 새로운 사업 ‘중국판 픽사(pixar)’ 만들기에 본격적으로 착수하고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사업이 아니라 회사였다. 왕웨이는 ‘Light Chaser Animation’이라는 애니메이션 영화제작사의 창립자이면서도 시나리오 창작에 감독까지 맡았다. 그는 ‘우리 모두가 생활의 감독이다.’라는 투더우의 유명한 구호를 자신의 일과 생활에서 착실히 실천하고 있었다. 


인터넷회사의 CEO에서 전혀 관계가 없는 영화 시나리오 작가와 감독이 된 것과 당시만해도 중국 국산애니메이션 전망이 밝지 않다는 점 때문에 왕웨이의 2차창업은 사람들의 의문을 샀다. “많은 사람이 제 이야기를 듣고 애니메이션을 한번도 만들어본 적 없는 사람이 3년만에 작품 한 편을 만든다니, 농담이라 생각했을 거에요”라고 회상했다. 


왕웨이는 ‘세계 최고의 작품을 만든다’는 것을 ‘Light Chaser’의 명확한 목표로 설정했다. 이 같은목표를 제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1년 11월 투더우가 베이징에 티셴(提线) 디지털테크놀로지를 창립해 원작 애니메이션 창작에 힘썼다. 당시 투더우의 CEO였던 왕웨이는 인터뷰에서 투더우넷이 과학기술과 사업 운영 경험을 애니메이션 제작에 도입해 3년 안에 국제 일류 수준의 대작 애니메이션 영화를 만들고자 힘쓰겠다고 밝힌 바 있다. 2년 후 왕웨이가 제시한 ‘Light Chaser’의 목표이기도 하다.


왕웨이의 이번 태도는 매우 결연하다. 극본을 쓰고, 융자를 받고, 팀을 꾸리는 모든 일을 직접 해나가고 있다. 


그때까지만 해도 왕웨이는 애니메이션 영화제작에 대해 문외한이었다. 픽처스의 작품을 좋아했지만 그 작품이 어떻게 만들어 지는지, 어떠한 과정으로 경영해야 하는지는 잘 몰랐다. ‘Light Chaser Animation’을 창립하겠다 결정한 후 그는 할리우드로 건너가 전문 노하우를 배우고 업계의 대표 유명인사 2~300명을 만났다. 투더우 창립자의 신분이었던 만큼 모두가 기꺼이 그와 이야기를 나누며 그에게 조언해 주었다. 


왕웨이는 그들 대부분의 조언을 받아들였으나 두 가지는 받아들이지 않거나 타협하고 싶지 않았다. “첫 번째는 당시 사람들은 대부분 미국에 스튜디오를 차리고 미국에서 우수한 인재를 기용하기 원하는 것이었고, 두 번째는 그렇게 많은 인원을 팀에 남겨둘 필요 없이 초반작업이 마무리되어 나가면 다른 사람들이 투입되어 중반작업을 진행하고, 후반작업은 또 다른 팀이 진행하는 거죠. 작품제작에 치중하면 위험부담이 작아지니까요.” 이 두 가지는 중국 애니메이션 업계에서 통용되던 가장 효율적인 방식이기도 하다.


그러나 왕웨이의 생각은 달랐다. “애니메이션회사에 가장 중요한 것은 팀을 꾸리는 거에요. 팀이 있어야 작품을 하나하나 만들 수 있으니까요. 매년 작품이 나와야 회사가 오래 갈 수 있거든요,” 2014년 6월 2000만 달러의 2차 창업융자를 끝낸 후 왕웨이는 제작예산의 절반 이상인 7000만 위안을 ‘Light Chaser’의 처녀작 《Little Door Gods》에 사용했다.


왕웨이가 바란 것은 작품의 ‘대박’이 아니다. 그는 가장 적절한 예로 <손오공의 귀환(大圣归来)>을 들며 Light Chaser Animation 이 하고자 하는 것은 생산량과 품질을 안정시키는 것이라 밝혔다. 그는 지속적인 생산력을 확보해 많은 작품을 제작하다 보면 입소문과 관객동원의 윈윈이 이뤄지는 작품이 나올 기능성이 높아지리라 믿는다.


결국 베이징에 회사를 차리고 중국 국내의 애니메이션 인재를 영입한 것은 ‘중국 이야기’의 원작을 만들 것을 고려한 것이다. “미국 애니메이션 작가들이 만든 작품을 보기만 해도 미국인들의 대화방식을 알 수 있는 것은 생활의 경험에서 나온 작품이기 때문이에요.” 


왕웨이 역시 미국 할리우드의 자문위원을 초빙한 적이 있는데, 상대방이 중국 이야기와 문화를 이해할 때 미심쩍어한다고 느꼈다. “애니메이션은 세밀한 작품인데, (중국과 미국의) 표정, 감정, 소통방식이 다 다르다 보니 할 수 있는 일이 기술적인 부분으로 제한되고 스토리, 캐릭터의 감정, 정서의 부분에서 왜 이렇게 행동하고 웃고 이야기하는지는 막연해 하더라고요.” 


기술, 예술과 경영의 융합 


픽처스의 최근 장편 애니메이션 <브레인특공대>는 45명의 애니메이션작가가 5년간 1억7천만달러를 들여 제작한 대작이다. 이에 비해 《Little Door Gods》의 제작기간은 3년, 제작비는 7천만위안으로 초창기 팀에게 시간과 품질, 지역에 맞는 수준 높은 작품을 제작하기란 쉽지 않았다.


애니메이션의 신예 왕웨이는 자신이 미니온즈(Miniomns) 제작 팀 Illumination Entertainment 의 경험을 본받아 경영에서 ‘법도’를 매우 중시하고 있음을 인정하며 이를 ‘경영철학’이라 불렀다.


미니온즈 시리즈 중 제작비 7000만 달러가 투입된 <슈퍼배드2(Despicable2)>는 세계적으로 10억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이들 작품의 제작자는 왕웨이에게 픽처스의 3분의1~2분의1인 7000만 달러로 제작이 가능했던 주된 이유가 바로 법도라 일러주었다. 시간과 비용이 모자라면 콘텐츠를 반복해서 수정하고 완성할 기회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문제를 즉시 해결하면서 계속 앞으로 밀고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Light Chaser’의 스토리담당 쑤하오단(苏昊丹)은 처음에는 ‘제한된 시간 안에 가장 잘 한다.’는 개념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는 <중국신문주간>과의 인터뷰에서 “우리 예술을 하는 사람들은 집착이 심해서 만든 작품에 문제가 있으면 못 견디거든요. 그런데 회사가 제작일정을 너무 엄격하게 통제해 기한이 지나면 반드시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했어요” 라며 이것 때문에 감독과 싸운 게 한 두 번이 아니라고 회고하면서 요즘은 양보하는 법을 배워서 완벽을 추구하기 위해 야근을 한다고 전했다. 


투더우 재직시절 왕웨이의 오랜 동료 간저우(于洲)는 이번에도 처음으로 애니메이션 제작을 맡았다. 그는 모든 경영개념은 서로 통한다며 “애니메이션 제작은 예술과 기술, 경영을 결합해야 한다” 고 주장한다. 그는 자신의 직책을 명확히 알고 있다. “제작자는 사업이 일정대로 완성되고 예상목표가 달성되도록 해야 해요. 2015년 7월 10일까지 《Little Door Gods》의 1940개 신을 완성하고 각 팀이 매주 어떤 장면이나 신을 완성한다는 목표가 매우 투명하고 모든 팀원이 볼 수 있고 반드시 숙지해야 합니다.” 


2014년 여름 《Little Door Gods》 제작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시작 초기에는 단계마다 문제가 생겨 진도대로 추진할 수가 없어 제작진이 ‘추격계획’을 세웠다. 7주, 여섯 번의 주말 동안 전 직원이 토요일까지 출근하며 진도를 따라잡았고 2015년 7월 10일 원래의 계획대로 《Little Door Gods》 촬영이 완료되었다. 


Light Chaser 법도와 함께 프로세스를 중시한다. 컴퓨터를 전공한 왕웨이는 이공계학도이자 기술자로서 ‘기술이 애니메이션 영화의 정신’이라 굳게 믿는다. 티셴을 창립하기 전 투더우 상장을 앞두고 가장 바쁜 중에도 베이징 사무실 회의탁자에는 벽돌 두께의 애니메이션 제작기획안과 Pixar의 책이 쌓여 있었다. “어떤 일을 하기 전에 교과서를 먼저 사요. 애니메이션이란 게 도대체 어떻게 되는 건지, 발전과정과 기본적인 원리 같은 것들을 먼저 알아보는 거죠.” 


그러나 이론에서 실습까지는 산 넘어 산이다. 실제 제작에 들어가서야 왕웨이는 제작의 복잡함을 실감했다. “모든 개발은 프로그램 하나를 세우는 것과 같아요. 간단해 보이는 프로그램도 실제로는 공장을 짓는 것만큼 아주 복잡하죠.” 


간저우에게 공장은 한 단계로 이뤄진 컨베이어벨트이다. 그는 “공장을 짓는 첫 번째 단계는 생산설비라인을 구축하는 것이다. 각각의 프로그램은 같은 생산라인에 있는 각기 다른 생산설비와 같다”라며 프로세스가 있어야 어떠한 프로그램과 도구를 쓰는 것이 높은 수준의 대규모 애니메이션영화를 제작하는 데 적합할 지 의논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생산라인의 구축과 가동, 유비·보수를 위해서는 기술인력이 필요하다. Light Chaser가 처음 시작할 때 모집한 직원이다. 기술인력은 예술가가 더 좋은 작품을 창작할 수 있도록 후방에서 지원한다. “그런데 기술인력(TD)을 찾기가 매우 어려워요. 중국 애니메이션영화사에서 TD의 비율은 1:50 정도, 그러니까 예술가나 예술인력 50명 당 한 명이에요. 저희 회사의 경우 1:7—제작진 160명 중에 20명은 TD, 130명은 예술인력, 나머지 10명정도는 경영인력입니다.” 


작업위치는 제작과정에 따라 순서대로 배치된다. 모형제작사의 역할은 종이에 설계된 평면이미지를 3차원 입체이미지로 전환하는 것으로 석고조각 앞에서 넋을 잃고 집중한다. 옆에 있는 바인딩 팀의 컴퓨터 모니터에는 완성된 캐릭터 모형에 선이 많이 추가된다—3차원 모형으로 제작된 후에도 애니메이션 제작자가 바로 조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바인더가 골격과 관절, 정확히 조종할 수 있는 제어기를 추가해 주어야 한다. 애니메이션 영화 제작자 중에 사람, 동물, 기계, 고구 등 움직임이 필요한 모형은 모두 바인딩이 필요하며, 바인딩 작업이 정확할수록 후반에 캐릭터의 움직임을 더욱 생동감 있고 실감나게 연출할 수 있다.


다음 단계의 제작자는 거울 앞에 서서 주변에 사람이 없는 것처럼 다양한 표정을 짓는다. 캐릭터의 얼굴특징을 더욱 잘 살리기 위해 책상마다 거울이 있고 매일 업무 중에 거울을 800번 들여다보는 것도 다반사다. 


입체 스토리보드와 캐릭터의 특수효과, 자재팀과 조명팀, 열 개 이상의 팀이 차례대로 작업을 진행하며, 회의실 몇 개 빼고는 ‘과보동’에서 따로 떨어져 있는 사무실은 없다. CEO 왕웨이의 책상 역시 이렇게 열린 공간 안에 있다. 그의 자리는 남서쪽 한구석으로 간저우의 책상과 마주보고 있으며 어떤 차이도 없다.
《Little Door Gods》의 사업관리 표에는 달력처럼 매일 각 팀의 임무를 적는 간트차트(Gantt chart)가 있다. 간저우가 기자에게 ‘하루에 시스템에서 운영되는 임무가 몇 개나 되는지 아느냐?’고 반문한 후 잠시 뒤 3000개라고 알려주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매일 평균 3천개의 임무가 시스템에서 진행되고 있다. 《Little Door Gods》의캐릭터 140개 하나 하나 100개 이상의 작업을 거친다. 캐릭터마다 설계, 모형, 헤어, 의상, 아이템이 있어야 하고, 옷 한 벌도 세분하면 디자인, 모형 등등의 매우 복잡한 과정으로 이뤄진다.” 


예를 들어 “설맞이 문신그림 아래서 할아버지부터 손자까지 삼대가 머리를 파묻고 말 없이 뜨거운 훈둔을 먹는 장면”은 4초 미만으로 극본에서 20자도 안 되지만 스토리보드, 모형, 입체스토리보드, 캐릭터 특수효과에서 마지막 디지털묘사까지 총 열 세 단계를 거쳤으며, 349일이 걸렸다. 


이것은 작품 전체 1940개 장면 중 간단한 축에 속한다. 간저우는 《Little Door Gods》 제작발표회에서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29개월 동안 160명이 8천만시간의 렌더링 작업과 10만2000번의 수정을 거쳤다. 그가 “애니메이션 제작자는 인간세상에서 2만8800초가 신의 세상에서의 1초에요”라고 웃으며 말했다.


IT남에서 문예청년으로 

 

▲ © 중국신문주간 한국어판
외부사람들은 과학기술에서 문화예술분야로 내 딛는 걸음걸이를 크게 생각하지만 왕웨이의 지인들에게는 뜻밖이라 느껴지지 않는다. 왕웨이가 2005년 블로그를 개설해 현재까지 올린 글들을 보면 논리정연하고 이성으로 자신의 삶에 대한 주석처럼 열심히 표현했다. 최근에는 문예적인 분위기의 일도 많이 했다. 

 

왕웨이는 <여름을 기다리며(等待夏天)>라는 12만자 분량의 소설을 썼다. 몇 명의 중국 청년이 미국에서의 모험과 고군분투를 그린 이 소설은 2006년 <수확(收获)> 잡지 5월호에 실렸고 1년 후 단행본으로 출판되었다. 그가 쓴 연극극본 <대원(大院)>은 CCTV의 MC 허징(和晶)을 감독, 유명한 연극감독 티엔친신(田沁鑫)을 예술고문으로 하여 2011년 7월 베이징공연 무대에 올랐다. 허(和)감독은 그의 극본을 “사회에 대한 천재 사업가의 관찰과 사고”라 평가했다. 투더우에서 ‘퇴직’한 후 왕웨이는 에스콰이어>에 사업 이야기가 아닌 삶에 대한 여러 생각들을 칼럼으로 기고했다. 


한 번은 가족들과 태국을 여행하다가 황국 입구에서 중국 석회암신상 두 개를 보았다. 그는 “뜻밖이었어요. 중국에서는 그런 석회암 보기 힘든데” 라고 회고했다.


그는 ‘재미있다’고 느끼면 호기심에 끌리는 대로 앞으로 나간다. “(만약에)신선, 민속 같은 것들이 없고 그것을 믿거나 필요로 하는 사람이 없다면 그 사람들 전부 실직자가 되는 건가요?” 왕웨이는 《Little Door Gods》 이야기의 원작을 썼다. “신구교체에는 맞고 틀린 게 없지만 두 문신(门神)이 같은 일을 하다가 전환점에서 막혀버리면 어떡해야 할까? 어떤 선택을 할까?” 


왕웨이는 푸졘(福建)사람이다. 어릴 때는 매년 4~5번 명절에 마을의 수호신과 조상님 또는 여러 시선들에게 인사를 갔다. 그는 “할머니 댁에서 매년 8월 추석이면 근처 몇 개 마을에서 자기 마을이 섬기는 신선을 꺼내 퍼레이드, 시합을 하고 연극을 하는 사람들도 있어 매우 떠들썩했다”고 회고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마을은 하나씩 무너져 차례로 사라지고 그 자리에 고층빌딩이 들어섰다. 이제 그의 고향집은 “시(市)가 되었고 내부순환도로 안쪽은 베이징 3번순환도로 안쪽의 느낌이 있다.” 


이것은 그가 중국원작의 이야기를 만들고자 한 초심이기도 하다. 사회의 큰 변화 속에서 중국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경제구조 전환기에 중국의 뿌리와 전통은 어디에 있을까? 왕웨이는 이러한 질문에 관심이 있었다. 그 후 스토리는 계속 수정되었지만 왕웨이는 전체적인 틀과 전하고자 하는 핵심을 유지해 왔다. 


왕웨이는 사색과 철학을 좋아한다. 직원들에게 추천하는 책도 모파상의 소설, 니체의 논저, 융의자서전 같은 책들이다. 


《Little Door Gods》가 처음 창작된 2012년과 2013년은 베이징, 상하이, 광저우를 탈출하는 화제가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백수’가 된 왕웨이도 마침 고향 푸저우로 돌아갔다. 왕웨이는 20세에 고향을 떠나 세계를 다니며 떠돌이 생활을 했다. 고행에 대한 그의 기억은 어릴 적 거리와 골목에 멈춰있다. 고향으로 돌아가자 그 기억들은 이미 여행지로 변해 있었다.


왕웨이는 “어릴 때 기억은 참 따뜻하지만, 진짜 어린 시절의 푸저우로 돌아가 살라고 하면 굉장히 힘들 것 같아요. 추억은 추억일 뿐 매일 거리를 걷고 따뜻함을 느끼지는 못할 거에요. 이틀이면 귀찮아질 걸요. 아이러니이기도 하죠”라고 말했다. 이러한 감정들이 그를 건드려 그는 이야기에 샤오잉 모녀의 이야기를 넣었다. 좌절을 겪은 모녀가 대도시에서 고향으로 돌아가 할아버지 대에서 내려오는 훈둔(馄饨)가게를 물려받는 이야기는 뿌리, 고향 그리고 현대생활에 대한 왕웨이의 생각이 담겨 있다. 


2014년초 《Little Door Gods》의 첫 번째 편집본이 나왔다. 편집자도 장편작업은 처음이라 모두가 흥분했다. 최종편집 마무리에 세시간 반이 걸린 것은 애니메이션에 허용되는 시간을 훨씬 넘어선 시간이다. 첫 작품이어서인지 편집본은 처음 설정한 재미와 몇 단락이 삭제되었으나 왕웨이는 이야기 플롯의 틀을 유지했다. 


《Little Door Gods》의 스토리는 신의 세계와 인간세계의 두 이야기가 독립적이면서도 겹쳐지는 부분이 있다. 두 문신형제가 퇴출 된 후 인간세상으로 내려와 작은 마을의 홀어머니 샤오잉(小英)과 그 딸 위얼(雨儿)을 만나는 이야기이다.


그 후 《Little Door Gods》는 몇 차례의 시사회를 열었는데, 관객들 역시 스토리가 너무 복잡하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관객들의 관심을 두 문신에게 집중시키기 위해 왕웨이는 사오잉 모녀의 이야기를 일부 줄이려 해보았으나 스토리 라인을 버리기가 아까웠다. 


《Little Door Gods》 개봉 후 애니메이션의 특수효과 수준이 전반적으로 인정을 받았다. 관객들의 의견은 플롯에 집중되었다. 투더우에는 ‘만들기는 잘 만들었는데 플롯이 너무 정신이 없어 영화에 기본적인 논리성과 조리가 부족하다’는 리뷰도 있었다. 


이야기 하고 싶은 이치가 이야기 한 편에 담을 수 있는 용량을 넘어 시간을 줄이기 위해 디테일을 포기하고 플롯을 축약할 수밖에 없다 보니 이 이야기를 처음 접한 관객들은 다소 어리둥절해 했다. 《Little Door Gods》는 압축시킨 쿠키처럼 입에 들어가면 뻑뻑하고 소화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 전체관람가 등급이다 보니 애니메이션영화는 표현하고 싶은 것이 많기 마련이다. 

 

▲ © 《Little Door Gods(门神)》 스틸컷 사진/CFP


《Little Door Gods》은 시작일 뿐

 

창립 초기 Light Chaser의 직원은 20여명 밖에 되지 않았다. 애니메이션 사업이 처음인 왕웨이는 자신이 쓴 극본의 많은 플롯이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될 수 있을지 확신조차 없었다. 


가령 왕웨이가 제일 처음 완성한 극본에서는 캐릭터 옷 한 벌을 바꾸는 것이 이렇게 힘든 과정인 줄 전혀 몰랐다. 4계절이 있고, 계절이 바뀌면 옷이 바뀌는 수준이었다. 그는 “계절 하나에 새로운 캐릭터 하나씩을 만드는 것과 똑같다”고 덧붙였다. 


그는 나이트클럽의 연국도 썼다. 등장인물도 많고 여러 색의 조명이 2~300개나 사용된다. 조명하나 만으로도 애니메이션 제작자가 무너졌다. Light Chaser Animation 의 시각효과 총감독 한레이(韩雷)는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조명이 애니메이션영화에서 가장 어렵다. 빛에 따라 조성되는 환경분위기와 명암 차이는 인력과 시간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라 매우 복잡한 컴퓨터 계산법과 랜더링 기술로 처리되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결국 4분짜리 한 컷을 완성하는 데 5개월이란 시간이 걸렸다. 영화 전체에서 가장 많은 비용을 소모한 장면이다. 왕웨이는 이렇게 ‘꾸역꾸역’ 작품을 완성한 것이 작은 기쁨을 느끼면서도 경험을 교훈 삼아 이후 작품에서는 ‘장기자랑’에 급급하지 않을 것이라 말했다. 


왕웨이는 《Little Door Gods》의 최종 제작수준을 자부한다. 당시 27명이 쌍둥이호반(双子湖畔)에서 의논해 정한 신조 ‘과학기술과 예술을 융합해 전에 없던 탁월한 작품을 끊임없이 만들어 낸다’ 가 지금까지도 열심히, 철저히 지켜지고 있다. 


그러나 그는 진정한 세계 일류와의 차이도 알고 있다. “랜더링 할 때는 7~8겹으로 나눠서 겹 마다 조명의 피사계 심도와 통제를 다르게 해 작업해요. 더 많아도 무너지거든요” 무너지면 시스템이 돌아가지 않는다. 픽처스의 경우 작품의 모든 화면을 캡처하기 때문에 거의 다 그림같이 감상할 수 있다. 일부는 Light Chaser 의 화면이 연출할 수 없는 부분이다. 


현재 Light Chaser 의 직원은 200명, 평균연령은 28세이다. 


Light Chaser 의 열 여덟 번째 직원인 쑤하오단은 스토리보드 제작을 맡고 있다. Light Chaser에 입사하기 전 그녀는 애니메이션회사 두 곳에서 일 헸는데, 1년 동안 한 편을 제작했지만 실패했다. 그녀는 자신을 “그때는 거센 파도가 치는 바다에 떠 있는 배처럼 앞으로 헤쳐나가고 싶지만 파도가 너무 컸다”고 표현했다. Light Chaser 에서 안정을 느낀 그녀는 안심하고 일에 몰두할 수 있었다. 


이미 수 백 번, 수 천 번을 보고도 쑤하오단은 표를 사 극장에 가서 영화를 보았다. “처음 볼 때만큼의 놀라움과 기쁨은 없지만 음악이 흐르자마자 울 뻔 했어요” 그녀에게 《Little Door Gods》는 아주 오래 전에 했던 일이다. 1년이 흘러 그녀와 팀은 Light Chaser의 두 번째 애니메이션 작품의 스토리보드를 만들었으며, 현재 세 번째 작품 스토리보드 구상에 쉴 새 없이 들어갔다. 


아쉬움과 부족함이 많고 완벽하지 않은 《Little Door Gods》이나 성의를 다했다. 쑤하오단은 Light Chaser 의 두 번째 작품은 조금 더 나아지리라 믿는다. 《Little Door Gods》를 통해 팀이 적응을 하고 프로세스도 최적화 되었다. 두 번째 작품부터는 그녀와 스토리보드 팀도 일찍부터 극본회의에 개입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Little Door Gods》 보다 훨씬 재미있을 것이라 밝혔다. 


Light Chaser의 한 직원은 <손오공의 귀환>으로 손오공의 역경을 알 수는 있지만 그 방법이 성공했다는 데 찬성하는 것을 대표하는 것은 아니라는 요지의 글을 썼다. '8년의 연마로 메인 작가가 배출된 한편 많은 업계종사자의 꿈이 좌절되기도 했다. 작품기획을 완성하는 데 8년이 걸리지는 않는다. 그러나 참여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대승(大圣)> 작업이 끝나고 다음 발자국을 어디에 디뎌야 할지 모른다.’ 그는 또한, ‘인터넷이라는 Boss가 쳐들어와 CG업계에 건강한 바람을 불러 일으켜 화려한 표면의 딱딱한 진흙을 털어 주었다’라며 고마워 했다. 


왕웨이는 지금까지 과학기술 관련 일만 해왔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별 다른 기억이 없다며 “과학기술제품의 비애죠. 출시된 첫날부터 구식이 되어버리니까요”라고 말했다. 그는 또한, Light Chaser의 목표는 사람들에게 기억 되어 전해져 내려갈 만한 작품을 만드는 것이라 밝혔다. 


《Little Door Gods》는 Light Chaser 의 시작일 뿐이다. 왕웨이는 이제 막 애니메이션 영화 전당의 문을 열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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