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와 알프스산맥

스위스의 산업과 알프스산맥의 경관에 강한 인상을 받은 것은 두 해 전 11월이다. 중국 베이징수도비행장에서 탑승해 유럽 중부에 위치해 있는 중립국 스위스를 방문할 기회를 가졌다.
오재헌 기자 newschina21@naver.com | 2021-07-16 12:40:39
  • 글자크기
  • +
  • -
  • 인쇄
  • 내용복사
[중국신문주간 한국어판 오재헌 기자]

스위스는 중앙유럽에 있는 연방 공화국이고 내륙국이며 정식 명칭은 헬베티아연방이지만 스위스연방이라 부르기도 한다. 

 

 

▲필라투스산에서 본 설산봉우리들  사진/주청룡(연변작가협회 회원)

 

1848년에 스위스연방정부가 수립되었으며 면적은 4만1,284평방킬로미터이고 인구는 2018년도 통계로 85만890명이며 수도는 법률상으로 없으나 베른이 사실상 수도 기능을 하고 있다. 스위스는 1815년 빈회의를 통해 영구 중립국으로 인정받았고 이에 따라 유럽 연합(EU)에도 가입하지 않고 있으며 스위스의 중립정책에 따라서 많은 국제 기구가 본부를 스위스에 두고 있다.


국토의 대부분이 알프스산맥의 능선에 걸쳐있어 높은 산과 얼음으로 덮여 있으며 고원과 깊은 계곡, 호수도 많다. 이 때문에 세계적인 풍광을 자랑하는 관광업이 발달되었으며, 세계 최고의 관광산업국가로 평가받고 있다. 전통적으로 시계, 공구 등 정밀기계 산업이 발달되었으며 낙농업(젖소나 염소 따위를 길러 그 젖을 가공하는 일을 기본으로 하는 농업)도 세계적인 수준이다.

 

 

▲스위스의 낙농업  사진/주청룡(연변작가협회 회원)

 

스위스 시계 역사의 시초 시발점으로는 바로 종교개혁을 이끈 칼뱅(1509~1564 프랑스 태생의 스위스의 종교 개혁가)이다. 1509년 프랑스에서 태어난 칼뱅은 종교 박해를 피해 망명 중 1536년 제네바에 입성하여 불과 2년 후인 1538년 기존 교회와의 마찰로 제네바에서 추방당하게 되었다.


칼뱅교리는 목사로 있으면서 금욕주의를 주장하여 ‘사치품 금지법’을 내놓아 칼뱅의 금욕주의 여파로 제네바 성 피에르대성당의 화려했던 벽화와 치장품이 모두 없어지고 현재의 수수한 모습으로 남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규칙적인 생활과 예배시간 엄수를 위해 ‘시계’는 사치품에서 제외되었다. 이 소식이 종교박해를 받던 이탈리아와 프랑스의 신교도 시계 제작공들에게 알려지면서 일자리를 잃어가던 제네바의 보석상들과 결합하여 대량으로 시계생산에 들어가게 되었다.


모든 산업 발전에 전쟁을 빼놓을 수가 없듯이 1,2차 세계 대전으로 그나마 정밀시계를 생산하던 프랑스, 독일, 영국, 이탈리아의 시계산업은 항공 등 정밀도를 요구하는 군수산업 체계로 흡수되면서 그 역사가 끊어지고 중립국으로서의 스위스만 (소수의 독일과 이탈리아를 제외) 번창하게 되었으며 그 후 스위스 시계는 혁신에 혁신을 거듭하여 지금도 그 명성을 이어 가고 있다. 1970년대까지 전 세계 시계 과반수를 스위스에서 생산했다는 통계도 있다고 한다.


스위스 세관에서 입국수속을 받은 우리는 설산구경을 하려고 알프스산맥에 위치해 있는 필라투스산으로 향했다. 이번에 우리가 여행을 하는 나라들은 전부 알프스산맥에 위치해 있는 나라들이다. 가이드는 알프스산맥과 우리가 가려는 필라투스를 소개하였다.

 

▲루체른 사진/주청룡(연변작가협회 회원)

 

알프스산맥은 유럽의 중부에 있는 남서쪽 지중해의 제노바 만에서 북동쪽의 빈까지 1,200㎞의 활 모양으로 뻗어 있는 산맥으로서 동쪽으로 방향을 바꾸는데 서부(프랑스 남동부와 이탈리아 북서부), 중부(이탈리아 중북부와 스위스 남부), 동부(독일, 슬로베니아, 오스트리아의 일부) 알프스로 나뉘어지며 각각 여러 개의 산맥들로 이루어져 있다. 

 

산맥에서 가장 높은 산은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국경에 있는 몽블랑(해발 4,807m)이며 평균 해발고도는 2,500m이다. 3,000m 이상의 높은 고산지대에는 식물이 자라지 않으며 암석과 만년설이 덮여 있다.


필라투스산은 스위스 중부의 루체른 남쪽으로 15㎞ 떨어진 곳에 있는 알프스산맥의 산으로 루체룬을 내려다 볼 수 있다. 필라투스산은 여러 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으며 주봉인 톰리스호른봉은 해발 2,132m이다.


필라투스라는 이름의 유래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있다. 기원 36년에 이름 높은 이스라엘 지역의 로마 총독 폰티우스 필라투스가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명령하였다고 한다. 그 해에 로마 제국의 제2대 황제 티베리우스가 병이 걸리자 예수를 불러다 자기의 병을 치료하여 줄 것을 요구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티베리우스는 예수가 필라투스에 의해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다는 것을 알고 폰티우스 필라투스를 체포하여 감옥에 가두게 하였다고 한다 감옥에 갇힌 폰티우스 필라투스는 자살을 하였다. 그리하여 그의 시체를 이탈리아의 테베레강에 버리자 바로 무서운 폭풍이 일어나면서 물이 범람하였다고 한다. 할 수 없이 그의 시체를 건져내 라인강에 던졌는데 라인강에서도 여전히 그런 현상이 나타났다고 한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그의 시체를 먼산(바로 지금의 필라투스산)의 작은 호수에 버렸다고 한다. 이렇게 하였지만 여전히 그의 유령이 난을 일으켜 광풍이 휘몰아치며 호수의 배를 뒤집어놓았다.


이때부터 이 산을 그의 이름을 빌어 필라투스산이라고 하였으며 중세기까지 현지 사람들은 그의 유령을 건드릴까 봐 그 산을 올라가지 못한다는 금지령이 내리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1585년에 루체른 교회에서 일찍 축출당한 한 목사가 한패의 용기 있는 촌민들을 이끌고 산에 올라가 그 유령과 싸움을 벌이면서 호수에 돌을 가득 뿌렸다고 한다. 

 

 

▲ 삭도를 타고 본 필라투스산의 운해  사진/주청룡(연변작가협회 회원)

 

그러자 그 호수가 메워지고 그 유령이 다시 나타나지 않았고 이때로부터 필라투스산으로 올라가지 못한다는 금지령이 취소되었다고 한다. 그 호수도 지금은 말라버린 호수로 있다.


우리는 가이드의 안내로 케이블카를 타고 산꼭대기로 올라갔다. 올라갈수록 구름은 더욱 짙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산꼭대기에 거의 오를 무렵, 아마 8/10쯤 올라갔을 때 케이블카가 구름층을 뚫고 오르면서 푸른 하늘에서 해님이 우리를 반겨 방긋 웃으면서 눈부신 햇살을 내리 뿜었다.

 

우리는 너무나도 기뻐 모두 일제히 “야!” 하고 외쳤다. 산꼭대기에 다 올라 케이블카에서 내리니 이곳은 해발 2,000미터 좀 넘는 산이라 눈이 없었는데 저 멀리 사방에 모두 이보다 더 높은 수십 개의 설산봉우리 보이는데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우리의 발밑은 전부 구름바다였다. 중국 태산에서와 말레이시아의 운정고원에서 운해를 내려다보는 것 같았다. 산꼭대기에는 관광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모두 삼삼오오 핸드폰이며 카메라를 들고 저 멀리 설산봉우리와 운해를 배경으로 여러 가지 포즈를 취하며 사진을 찍느라 야단법석이었다.


우리는 산봉우리의 산책로를 따라 한 바퀴 빙돌면서 설산봉우리와 운해를 구경하였다. 산세가 너무 험한 데는 짧은 산굴을 뚫어 산책로를 닦아놓았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유람에서의 하나의 경관이었다.
알프스산맥은 스위스의 얼굴이고 자랑이 되기에 손색이 없다.

글/주청룡(연변작가협회 회원)

 

 

[저작권자ⓒ 중국신문주간 한국어판.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카카오톡 보내기 카카오스토리 보내기
오재헌 기자 다른기사보기
  • 글자크기
  • +
  • -
  • 인쇄
  • 내용복사

헤드라인HEAD LINE

포토뉴스PHOTO NEWS

많이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