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인트앤드루스, 북해변의 작은 중세도시

골프는 스코틀랜드국민들의 오락거리이다. 여인들은 시냇가에서 빨래를 하고 말에게 물을 먹이고,남자들은 근처 한 켠 운동장에서 돌아가며 스윙을 하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온라인팀 news@inewschina.co.kr | 2015-12-08 11:55:44
  • 글자크기
  • +
  • -
  • 인쇄
  • 내용복사

▲ © 중국신문주간 한국어판


글/장루스
세인트앤드루스(St Andrews)에 도착한 후에야 작은 중세도시에 반한 내가 제대로 찾아왔음을 느꼈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4세기 예수의 첫 제자 안드레가 X형 십자가에서 처형된 후 그의 오른손 셋째 손가락과 팔뼈, 무릎 뼈와 치아 하나가 신도 세인트 레굴루스(St Regulus)에 의해 그리스 파트라스에서 잉글랜드 바닷길을 통해 스코틀랜드 동해안 파이프주의 작은 마을 킨리몬트(Kinrymont)로 옮겨졌다. 배는 뼈들을 옮긴 후 바로 동해안 가에 가라앉았다. 이때부터 마을은 세인트 앤드루스라 이름 지어지고 세인트 앤드루슨는 스코틀랜드의 수호신이 되었다. 에든버러시 중심의 ‘세인트 앤드루스’광장처럼 ‘세인트 앤드루스’라는 지명은 스코틀랜드 도처에서 흔히 볼 수 있다.


12세기 이 곳은 ‘황실자치마을’ (지방행정구역의 하나로 일부 자치도시가 황실의 특허상태를 수여 받아 ‘황실자치도시’라고도 불린다)이 되었다. 1158년 북해변에 당시 스코틀랜드 전체에서 가장 큰 건물인 로마식성당——세인트앤드루스 대성당이 지어지기 시작했고 그 옆으로 성도들의 ‘성물’을 놓아두는 세인트 레굴루스 우실성당과 세인트앤드루스 요새가 지어지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유럽 각국의 기독교 신자들이 배를 타고 다리를 건너 있는 힘을 다해 세인트 앤드루스로 순례를 왔다. 세인트앤드루스 옛 성에서부터 북쪽에서 남쪽으로 북쪽거리, 시장번화가, 남쪽거리의 세 거리로 나뉘는데, 세 거리 모두 로마로 통해 요새에서 만난다.


14세기 스코틀랜드 독립전쟁기간에 세인트앤드루스 요새가 무너지고 스코틀랜드 종교개혁시기 1559년에는 대성당도 무너져 무너진 담벼락만 남았다. 근처 언덕에서 바다의 만을 내려다보면 유일하게 남은 옛 담벼락과 로마식 첨탑이 위엄 있게 도시를 지키고 있다.


대성당이 무너지자 주민들은 도끼와 망치를 들고 성당 앞에 모여 두들겨 부시고는 지붕을 뒤집어 벽돌들을 집으로 가져갔다. 이 중세의 오래된 마을을 돌아다니다 자세히 보면 당시 대성당의 벽돌이 올려져 있는 집을 볼 수 있다. 사실 생각해보면 당시의 자재를 재활용한 셈이니 지금의 환경보호 트랜드에도 잘 맞는다.


마을에서 1분 정도 걸어가면 동쪽모래사장에 도착한다. 북해는 날씨가 추워 8월에도 해수욕을 하기 어렵다. 해변 절벽에는 기암괴석들이 보인다. 세인트앤드류대학에는 전통이 하나 있는데, 매주 일요일이면 학생들이 빨간 두루마기를 걸치고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수 있는 절벽을 줄지어 다녀오는 모습이 장관을 이룬다.


김이 가득 자란 암석이 바다로 이어진다. 현지 자선단체의 창립자 페트릭(Patrick)이 20년째 살고 있는 곳이다. 그가 이 돌들은 ‘마녀의 돌’이라 부른다고 알려주었다. 중세 암흑기에는 집에 여인이나 여자가 있으면 ‘행동이 기이하다’고 의심을 받아 교회가 아무 증거 없이도 ‘마녀로 의심 됨’이라는 죄명으로 여자를 해변의 바위로 끌고가 바다에 빠뜨릴 수 있었다. 여자가 익사하면 결백하다는 것이고 살아있으면 ‘마술을 부렸다’고 여겨 바다에서 끌어내 다시 처형시켰다고 한다.


현재 절벽에는 차가운 바람만이 분다. 하늘과 땅을 덮은 갈매기 때 중 한 마리가 차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페트릭이 ‘나쁜 자식들’이라며 투덜거렸다. 스코틀랜드 연해지역 사람들은 이 하얗고 풍성한 날개를 가진 바다 새를 싫어한다. 페트릭에 따르면 갈매기들이 도처로 먹이를 찾아 다니면서 길거리의 쓰레기통을 엎어 온통 엉망으로 만들어 버린다고 한다. 그는 더불어 갈매기에게 절대로 먹이를 주지 말라며 손에 먹을 것을 들고 있으면 갈매기가 내려와 낚아채 갈수도 있으니 조심하라고 주의를 주었다.


그날 저녁 세인트앤드루스의 서점에서 <클라우드 아틀라스(Cloud Atlas)>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데이비드 미첼(David Mitchel)의 독서행사에 참가할 수 있었다. 데이비드의 감성적이고 감동적인 낭송소리 사이로 지붕 위 갈매기들의 울음소리가 수시로 들려왔다. 순간 소설 속에 있는 듯 몰입되었다.


세인트앤드루스는 17세기 영국의 내전으로 몰락하기 시작해 19세기에는 현지의 오래된 대학조차 이전을 생각할 정도로 바닥까지 몰락했다. 훗날 다행히 골프장과 클럽으로 명맥을 유지했다.


세인트앤드루스의 서쪽 모래사장은 영화 <불의 전차(Chariots of Fire)>의 첫 부분에 주인공이 달리는 대표적인 장면의 촬영지이다 촬영 당시 제작비가 부족해 원래 촬영지로 계획했던 켄트 주를 이곳으로 잠시 바꿨다. 2012년 런던올림픽 개막식에서는 ‘미스터 빈(Mr.Bean)’이 나와 서쪽 모래사장에서 느린 동작으로 뛰어가며 <불의 전차>의 장면을 모방해 이 대표적인 장면에 특별히 경의를 표하기도 했다.


서쪽 모래사장에 옆으로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골프장——세인트앤드루스가 인접해 있다. 세인트앤드루스는 세계 골프스포츠의 발원지다. 페트릭의 안내로 작은 길을 지나 머리를 숙여 골프장의 하얀 울타리를 넘어가 세계 각지 골프 애호가들의 메카 “The Old Course”에 섰다. 가랑비가 내리긴 했지만 바다를 따라 나있는 풀밭은 발을 디뎌도 꿉꿉하지 않았다. 장비를 갖춘 선수들이 멀지 않은 곳에서 스윙을 하고 있었다. 2015브리티시오픈대회가 끝나고 이틀 후라 관전대는 반만 남아있었다. 1860년에 시작된 브리티시오픈대회는 매년 열리며 세계 4대 골프대회 중에 역사가 가장 오래된 대회이다.


이곳 주민들은 600년전부터 골프를 치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골프는 스코틀랜드 국민들의 오락거리다. 1457년 스코틀랜드 국왕 제임스 2세가 젊은이들이 놀이에 정신이 팔려 뜻을 잃으면 안되며 양궁연습에 더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한다는 생각으로 골프금지령을 내렸으나 50년도 되지 않아 그의 왕위를 이은 제임스 4세가 골프에 빠지면서 골프금지령도 폐지되었다.


잔디밭 옆으로는 작은 시내가 한 줄기 흐른다. 세인트앤드루스 역사를 깊이 연구한 페트릭에 따르면 이 시냇가에서 여인들은 빨래를 하고 말에게 물을 먹이고, 남자들은 근처 한 켠 운동장에서 돌아가며 스윙을 하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옛 골프장은 아직까지도 사람들이 드나들며 공공장소로 남아있다. 골프장에 들어갈 때는 공에 맞지 않도록 조심하기만 하면 된다. 페트릭에 따르면 이곳의 사람들은 유명인을 만나는 것에 익숙하다고 한다. 세계각지에서 골프를 치러 온 인기연예인들 역시 파파라치의 부담이 없는 이곳의 한적함을 누린다.


골프장의 동쪽으로는 순교자기념비가 하나가 바다를 향해 서있다. 이 기념비는 종교개혁 전에 처형되어 죽은 신교도들을 기리는 것으로 가장 대표적인 인물로는 개신교개혁가 페트릭 헤밀턴(Patrick Hamilton)이 있다. 그는 유럽 각지를 돌아다니며 여러 개신교 개혁가들의 생각을 듣고 스코틀랜드로 돌아와 도처에 선교를 할 계획이었으나 안타깝게도 24세의 젊은 나이에 이단의 공격을 받아 계획을 실행하지도 못하고 불에 타 죽었다. 지금의 세인트앤드루스대학 한 학부의 문 앞이 바로 헤밀턴이 순교한 곳으로 바닥에 그의 이름의 첫 자음 ‘PH’가 새겨져 있다. 문을 지나다닐 때 이 두 글자를 밟지 않는 것이 이 학부 학생들 사이에 자발적으로 지켜지고 있는 불문율로 헤밀턴에 대한 존경을 표하며 어길 경우 ‘불길한 일’이 일어난다고 여겨진다. 페트릭의 표시에 따라 고개를 들어 학부 정문의 위를 올려다 보니 담장 위로 사람얼굴의 윤곽이 희미하게 보인다. 헤밀턴의 얼굴로 ‘계속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고 한다.


중세 스코틀랜드의 종교중심지였던 이곳에는 스코틀랜드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도 있다. 세인트앤드루스대학의 역사는 604년으로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에 이어 영국에서 세 번째로 오래된 대학인데, 각 학부가 소도시 곳곳에 분산되어 있다. 옥스퍼드, 케임브리지와 마찬가지로 대학이 부흥이 소도시의 발전으로 이어진 경우이다. 페트릭에 따르면 세인트앤드루스대학은 학생의 40%가 외국학생이라 한다. 정년퇴임을 앞둔 나이의 페트릭은 각국의 젊은이들이 풍기는 글로벌 한 분위기를 좋아한다. 이들이 없다면 세인트앤드루스는 여전히 폐쇄적이고 단조로운 마을이었을 것이다.


우리는 한 학부로 들어갔다. 페트릭이 빅토리아 여왕 시대에 지어진 기숙사건물을 가리키며 2001년 모든 영국인들이 아는 동창——영국왕실 윌리엄(William) 왕자가 지내던 곳이라 설명했다. 그는 예술사를 전공했다가 지리로 전공을 바꿨다. 윌리엄 왕자의 입학소식이 전해지자 세인트앤드루스 대학에 지원하는 여학생이 급증했다. 그러나 왕자는 머지않아 이웃 기숙사건물에 살던 케이트(Kate)와 사귀었다. 우리 앞에 펼쳐진 이 잔디밭이 둘이 자주 산책을 하던 곳이다. 그 후 둘은 세인트앤드루스에 방을 얻어 동거를 했는데, 둘이 슈퍼마켓에서 먹을 것을 사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다고 한다. 둘의 결혼식은 2011년 세인트앤드루스시에서 성대하게 치러졌다. 천 명의 시민이 초대되었고 런던의 결혼식과 동시에 축하가 이뤄졌다.


물론 세계적으로 유명한 대학과 골프클럽이 있다 보니 국제적인 체인점과 음식점 입주 등 각 분야의 국제화문제도 생겨났다. 페트릭에 따르면 세인트앤드루스가 한때는 미국 양대 패스트푸드점의 ‘침입’을 막은 적도 있었으나 ‘현지에서 독립적으로 경영되는 가계와 지역특색은 외국업체에 점포를 임대해주지 않는 등 주민들의 노력으로만 보호할 수 있다’는 규정 때문에 정부가 법적으로 체인점의 입주를 막을 수 없었다.


그러나 두 달 전 미국의 유명 카페 체인점을 시작으로 어찌됐든 국제브랜드의 입주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되었고 세인트앤드루스 역시 시대의 흐름에 따를 수 밖에 없게 될 것이다.

 


 

[저작권자ⓒ 중국신문주간 한국어판.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카카오톡 보내기 카카오스토리 보내기 daum
온라인팀 다른기사보기
  • 글자크기
  • +
  • -
  • 인쇄
  • 내용복사

헤드라인HEAD LINE

포토뉴스PHOTO NEWS

많이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