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력파 측정: 2억 달러짜리 ‘도박’

LIGO가 중력파를 측정한 서사시 같은 역사를 돌아보면 진리의 진보에 대한 과학자들의 절박함과 광적인 추구는 세계 어디나 다름이 없으며, 그들이 자신의 이상을 추구할 수 있을 지의 여부는 외부환경에 달려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온라인팀 news@inewschina.co.kr | 2016-03-14 11:5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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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명도: 태양과 지구 주변에 가득한 왜곡된 시간과 공간 그림/레이저간섭계 중력파관측소(LIGO)

 

기자/쳰웨이(钱炜)

 

미국 동부 현지시각 2016년 2월 11일 오후 10시30분. 미국국가과학기금회(NSF)이 개최한 기자회자회견에서 70세를 넘긴 두 명의 노인—76세 킵 손(Kip Thorne)과 84세 레이너 웨이스(Rainer Weiss)가 사람들 앞에 일어나 포옹하며 중력파 측정에 성공한 역사적인 순간을 발표했다. 이 순간을 위해 수염을 기른 대머리 손은 반세기를 연구하며 기다렸다. 


캘리포니아공과대학(Caltech) 손 교수의 사무실 문 앞 벽에는 액자들이 줄지어 걸려 있다. 액자는 총 10개인데, 액자마다 손과 천문학자 또는 물리학자가 내기했던 내용이 들어 있다. 이중에는 스티브 호킹(Stephen Hawking)과의 내기도 있다. 내기의 내용은 블랙홀의 성질, ‘노출 특이점(Naked Singularity, 시야에 존재하지 않는 블랙홀)’이 존재하는가, 예상된 우주 대척도 위에서의 성질 등등 매우 다양하다. 내기내용 중에는 Caltech 전용 편지지에 손으로 쓴 것도 있다. 손교수가 자신이 내기를 건 10년 이내, 즉 1988년 5월 5일 전에 인류가 중력파 측정에 성공할 것이라는 내용이다. 내기는 축재다. 분명히 졌으면서도 낙천적인 성격의 손 교수는 1981년 5월 6알 중력파에 관한 또 다른 내기를 걸었다. 프린스턴대학의 예레미아 오스텍(Jeremiah Oscteck)을 상대로 고급 와인 한 박스를 걸었는데. 과학자들은 2000년 1월 1일까지 중력파를 측정하지 못해 손교수가 또 졌다. 


이번에는 드디어 손교수가 이겼다. 미국의 중력파 측정기관—레이저간섭계 중력파관측소(LIGO)의 공동창시자로서 손교수는 발표회에서 “이번 발견을 통해 파란만장한 먼 여정이 시작될 것이다. 우주의 굴곡진 면을 탐험하는 것이다.”라고 밝혔다. 


중력파의 근원을 찾아라 


중력파를 찾아내야 하는 이유에 대해 미국 과학보급작가 마르샤 바투샤크(Marcia Bartusiak)는 ‘중력은 우주의 통치자로서 가장 미세한 척도에서의 통제메커니즘과 우주의 본질적인 특징을 알아냈다.’고 기술했다. 


아인슈타인의 넒은 의미의 상대론에 따르면 4차원 시간과 공간은 탄성이 무한한 고무패드처럼 늘어나거나, 압축되거나, 펴지거나, 구부러지거나, 톱니바퀴 모양까지 다양하게 변형될 수 있다. 


시공의 무대에 있는 물체는 움직이든 충돌하든 부드러운 시공의 단자 면 위에 끝없는 파문이 일어난다. 물체는 왔다 갔다 흔들리며 장력에너지를 가진 파동을 내보낸다. 과학자들은 이 원리를 이미지로 들어 비유한다. 중력파는 장력에 따른 시공의 잔잔한 파동으로 고무침대 위의 작은 공이 튕길 때 침대보 위에 진동을 일으키고 전달하는 것과 같이 빛의 파장처럼 밖으로 전파된다. 그러나 전자파는 공기 중에 전파되는 것인데 반해, 중력파는 시공 자체의 파동이다. 이 파동은 공간을 늘이고 누르기를 반복한다—아코디언을 연주할 때 풀무처럼. 중력파가 행성이나 항성, 또는 다른 물체를 만나면 멈추는 것이 아니라 그 물체를 그대로 뚫고 계속 진행하며, 이 과정에서 주변공간을 끊임없이 팽창, 축소시킨다.


질량을 가진 우주의 모든 물체는 중력파를 내보낼 수 있다—움직이고 있다면. 그러나 중력파의 세기는 질량의 크기, 운동의 특징에 따라 달라진다. 항성과 같은 거대한 물질은 강한 장력을 갖지만 거의 움직이지 않기 때문에(전체 항성계를 따라 움직이는 것을 제외하고) 복사되는 장력이 매우 작다. 지구가 태양 주변을 돌 때도 미약한 중력파를 계속해서 끊임없이 방출한다. 이러한 복사효과는 우주의 생명이 다하는 때가 와도 우리의 관심을 끌지 못한다. 달이 지구 주변을 돌 때 방출하는 중력파는 더 약해. 줄넘기를 하고 있는 아이가 뛰는 사이 역시 1~2개의 장력이 방출될 가능성이 매우 적다. 당시 과학자들은 강한 중력파는 항성간의 충돌, 초신성의 폭발, 블랙홀의 탄생 등 우주의 가장 격렬한 운동에서 나온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훗날 자세한 계산을 통해 초신성 폭발로 방출되는 중력파가 생각보다 크지 않음을 발견했다.


손교수는 그의 스승 ‘블랙홀의 아버지’ 존 휠러(John Wheeler)의 행적을 따르지 않았다. 1970년대는 블랙홀 연구의 황금기이나 이는 또한 긴장되고 격렬하며 혼란한 경쟁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런 느낌보다는 홀로 있는 것과 자유를 좋아한 손교수는 미국 물리학자 조셉 웨버(Joseph Weber)의 영향을 받아 중력파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우주 사이에 어떤 천체와 일이 가장 강한 중력파를 만들어낼 수 있는 지와 같은 기초이론 분야에 착안점을 두었다. 


손교수는 질량이 큰 두 개의 블랙홀로 이뤄진 쌍성시스템이 서로 주변을 돌고 부딪혀 합쳐지기까지의 과정에서 가장 큰 중력파가 방출되며 탐측될 가능성도 가장 크다고 명확히 밝혔다. 이번에 LIGO가 탐측한 중력파가 바로 지구에서 13억 광년 떨어진 태양 30개 정도의 질량을 가진 블랙홀 두 개가 부딪혀 발생한 중력파이다.


이러한 중력파는 얼마나 강할까? 사실 마침 현장에 있으면 죽는다. 중력파는 물체 자체의 크기만큼 주변 사물을 누르고 늘일 수 있어 신장 1.8m인 사람의 경우 0.001초 안에 3.6m까지 늘어난 다음 0.9m로 눌리고 또 다시 늘어난다. 블랙홀이 충돌하면 현장의 다른 힘을 무시하고 중력파의 압력만 해도 주변 행성과 위성을 산산조각낼 수 있다. 매우 공포스런 모습이다. 다행히 이런 파장은 지구까지 몇 천만, 억 광년 이상의 먼 길을 오면서 일반 사람은 수소원자핵의 100억분의1 정도밖에 변형시키지 못한다. 우주의 성난 파도가 양자의 진동 정도로 약해진 것이다. 


중력파 신호는 매우 약해서 아인슈타인이 처음 발견했을 때 관심을 갖는 과학자가 거의 없었다. 탐지도 되지 않을 정도로 약한 효과를 위해 수고를 해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또한, 중력파가 존재여부를 둘러싼 격렬한 논쟁 역시 40년간 이어지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중력파가 근거 없이 날조된 것—상대론 방정식의 허무맹랑한 산물이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이러한 가능성은 중력파가 정말로 ‘생각의 속도로 전파된다’는 짓궂은 추측을 낳을 수도 이다. 아인슈타인 자신도 이 점을 의심한 적이 있으니 말이다. LIGO의 전(前)주임 배리 배리시(Barry Barish)는 ‘중력파는 자연계에서 가장 예리한 파장이다. 이것이 중력파의 매력이자 책망 받는 부분이다—이 특징 때문에 탐지하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라고 기술하기도 했다. 


그러나 손교수는 계속해서 중력파를 찾았다. 전자파의 물리적인 성질과 달리 중력파탐지기를 이용해 연구하는 물체는 가시광선, 전자파 또는 X선을 통해 발견할 수 없는데, 현재 천문학자들이 빛, 전자파, X선을 이용해 연구하는 물체들의 중력파도 탐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렇듯 장력의 우주와 전자기의 우주는 전혀 다르게 보인다. 따라서 중력파의 발견은 우주에 대한 인류의 인식을 변혁할 것이다. 


우여곡절의 탐지

 

▲ 2 11일 미국 캘리포니아공과대학(Caltech) MIT, 레이저간섭계 중력파관측소(LIGO)의 연구원들이 워싱턴에서 개최한 기자회견. 화면에 과학자들이 포착한 중력파신호 그림이 전시되었다.
중력파를 찾아내리라는 뜻을 처음 세운 사람은 조셉 웨버이다. 그는 1960년대말 공진법(共振法)을 활용해 중력파를 측정하기 시작했다. 그는 큰 막대기 모양의 금속 물체를 사용하고 중력파가 물체의 고주파 주파수에 공명을 일으키는 특징을 이용해 금속막대의 진동에서 중력파의 신호를 뽑아내고자 했다. 그는 실험결과를 발표하며 중력파를 발견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의 실험은 반복할 수 있는 사람이 없고 이론적으로 어떤 과정에서 이런 강렬한 중력파 신호가 나오는지 논증하기도 어려웠다. 그러나 그의 막대탐지연구는 일부 과학자들이 중력파사업에 뛰어드는 동기가 되어 1970년대부터 일부 물리학자들이 이론과 실험으로 중력파이론 연구 및 탐지실험에 가담했다. 손교수도 그 중 하나다. 

 


반신반의 중에 중력파 탐지연구가 진행되고 있을 때 고무적인 소식이 하나 들려왔다. 1975년 미국천문학자 러셀 헐스(Russel Hulse)와 테일러가 쌍성펄서(Binary Pulsar) 한 쌍을 발견한 것이다. 과학자들은 궤도주기의 변화를 통해 이 쌍성이 에너지를 잃었으리라 짐작했는데 에너지 소실율이 중력파 유발과 일치해 중력파가 존재한다는 간접적인 증거가 되었다. 이 연구로 헐스와 테일러는 1993년 노벨상을 수상했다. 


중력파 연구과정에서 손교수 역시 웨버 실험에 존재하는 치명적인 결함을 발견했다. 막대탐지기의 최종정밀도가 ‘불확정성원리(Iindeterminacy Principle)’의 제약을 받는다는 점이다.


‘불확정성원리’는 양자역학의 기본적인 특징이다. 한 물체의 위치를 고도로 정밀하게 측정하고 싶다면 측정과정에서 반드시 물체에 반작용을 가해 무작위의 예측할 수 없는 방식으로 물체의 속도를 방해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거시적인 사물측량에서 측량의 반작용으로는 극히 작은 속도방해밖에 일으킬 수 없으나, 원자, 전자 및 중력파와 같이 작은 크기를 측정할 때는 ‘불확정성원리’의 효과가 두드러진다. 


이러한 생각이 방향이 명확해지자 손교수는 자신의 학교에 중력파 탐지계획을 세우기를 희망했고 학교측을 설득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그는 물리이론학자에 지나지 않아 사업에는 경험 많은 실험학자와 함께해야 했다. 손교수는 큰 힘을 들여 영국 글래스고대학의 로날드 드레빌(Ronald derevell)을 발굴했다. 드레빌은 손교수에게 막대탐지기의 방법은 통하지 않으며 새로운 간섭계의 탐지기를 마련하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당시 이런 생각을 한 사람은 드레빌 한 사람만이 아니었다. 미국 MIT의 실험물리학자 레이너 웨이스(Rainer Weiss) 역시 물체간 거리에 대한 중력파의 변화와 물체간의 원래 거리와 정비례하는 사실에 주목했다. 이럴 경우 물체간의 거리를 매우 멀리하고 거울로 만들어 레이저로 거리를 측정하는 방법으로 거울간의 거리를 측정하면 중력파측정의 정확도를 배로 높일 수 있다. 이 구상에 따라 그는 일찍이 MIT에 간섭계탐지기를 마련하기 시작했다. 


이로서 1980년대 미국 국내에는 두 개의 간섭계중력파탐지기 연구팀—MIT의 웨이스 팀과 Caltech의 드레빌팀이 생겨났다. 1984년 연구경비를 더욱 잘 활용하기 위해 NSF는 두 연구팀을 합쳐 드레빌, 웨이스, 손을 공동대표로 세웠다. 드레빌이 웨이스와 연합하지 않아 손교수는 솔직하게 이것이 ‘취약한 결혼’이라 솔직히 고백했다.


오래지 않아 NSF는 제삼자평가를 통해 이렇게 분산되고 틈이 있는 연구 팀을 더욱 긴밀히 단결되는 팀으로 재편성해야 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에 따라 1990년까지 두 연구팀에 새로운 지휘자가 세워지고 전국적인 과학시설 ‘레이저간섭계 중력파관측소(LIGO)’ 건설이 제안되었다. LIGO는 두 개의 ‘L’자 모양 진공시스템으로 구성되는데, 하나는 워싱턴의 핸퍼드, 또 하나는 루이지애나주의 리빙스턴 부근에 있다. 


사실 NSF가 처음부터 이 사업을 낙관한 것은 아니다. 더구나 당시는 미국 연방예산의 축소로 많은 대규모 과학프로젝트가 중단되던 시기였다. 그러나 NSF 물리분야의 정·부지도자는 탁월한 안목으로 이 사업을 낙관했고, Caltech과 MIT가 이 같은 사업을 다시 인수할 수 있을 때까지 사업을 계속해서 관리하면서 위험을 낮추기로 결정했다. 이에 대해 웨이스는 “기적이죠. 폐기될 수도 있었던 프로젝트의 많은 요소들이 NSF 덕에 살아남게 되었으니까요.”라고 회고했다. 


1990년 NSF가 LIGO의 최종제안을 심사했다. ‘경비’문제를 제외한 모든 절차가 순조로워 보였다. 프로젝트에 필요한 경비는 총 2억1100만 달러였는데, 이는 당시 NSF 천문학예산 총액의 두 배에 달하는 금액이기에 경비지출을 위해서는 미국국회의 동의를 얻어야 했다. 2년간의 힘겨운 로비 끝에 LIGO는 경비를 받아 건설을 시작하게 되었다.


오늘날의 LIGO이 있기까지는 치열한 논쟁, 정계와 과학계의 타협, 개성이 강하고 불같은 성격의 선배 과학자들과의 투쟁이 있었다. LIGO의 서사시 같은 역사를 돌아보면 진리의 진보에 대한 과학자들의 절박함과 광적인 추구는 세계 어디나 다름이 없으며, 그들이 자신의 이상을 추구할 수 있을 지의 여부는 외부환경에 달려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월 11일 발표회에서 현재 NSF 주임 프랑스 코르도바(Frans Córdoba)는 “1992년 LIGO 최초의 기금사업을 허가한 것은 NSF 역사상 최대의 투자였다. 위험성이 매우 높은 투자였지만 그것이야 말로 NSF가 감당해야 할 사업이다. 우리는 발견 중에 있지만 앞길이 분명하지 않은 기초과학과 사업을 지원한다. 우리는 개척자들을 지원한다. 이것이 바로 미국이 오늘날까지 세계 첨단지식을 이끌어갈 수 있는 이유이다.”라고 밝혔다. 


(본 기사는 킵 손(Kip Thorne)교수의 저서 <블랙홀과 시간굴절(Black holes and time warps: Einstein's outrageous legacy)>과 마르샤 바투샤크(Marcia Bartusiak)의 저서 <아인슈타인의 미완성교향곡(Einstein’s Unfinished Symphony: Listening to the Sounds of Space-time)>을 참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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