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인화로 모색하는 개별자의 역사와 일체중생의 미학

글/김성호 미술평론가 newschina21@naver.com | 2019-08-29 11:3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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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김성호 미술평론가]

▲ 문재인 대한민국 대통령

 

 

중국 작가 왕지에의 개인전 <한반도의 목걸이-북위 38>은 최근의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를 가시화한다. 다만 그가 탁인(拓印) 기법으로 찍어낸 화면에는 그 어디에도 국제적, 정치적 상황들은 묘사되지 않는다.

 

이번 전시 전면에 등장한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과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 그리고 한국의 문재인 대통령의 초상은 이러한 주제를 가시화하는 상징이 되고도 남지만, 대부분의 출품작은 특정할 수 없는 무명의 인물들로 가득하다. 그들은 작가 왕지에가 중국인으로서 한국과 북한을 자유롭게 왕래하면서 만났던 그야말로 ‘특별하지 않은 사람들’이다.

 

동시대를 살고 있는 남북한의 개별 주체들의 초상을 통해서 그는 무엇을 우리에게 선보이려는 것일까? 필자는 그것을 ‘개별자의 역사와 일체중생의 미학’으로 해설하면서 그의 작품을 세밀하게 살펴보고자 한다.


탁인화로 창출하는 아이코노텍스트
작가 왕지에는 탁인화라 작명한 자신의 조형 언어를 통해서 인물화를 그린다. 정확하게 이야기한다면 전각(篆刻)으로 낙관(落款)을 만드는 방식이라는 점에서, 그리는 것이 아니라 찍어낸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이다.

 

▲ 도널드 트럼프 미국대통령
주지하듯이, 전각이란 ‘나무, 돌, 금옥 따위에 인장을 새기는 행위나 그러한 글자’를 지칭한다. 흔히 ‘전자(篆字)로 글을 새긴다’는 의미에서 유래한 ‘전각’은 그의 작업에서는 판화에서 지칭하는 원판과 같은 위상을 지닌다. 다만 그가 청전석(青田石)으로 만들어 놓은 5천 개가 넘는 작은 전각들(각각 5cm x 2cm x 2cm) 중에서 수백 개로부터 수천 개가 하나의 조합을 이루어 하나의 화면을 구성한다는 점에서 그의 ‘전각’은 원판을 이루는 기본 질료라 하는 것이 더 맞는 표현이 될 것이다.

 


그런 면에서, 그의 작업에서 ‘기본 질료들의 조합’ 즉 ‘전각의 조합’은 곧 원판이며, ‘낙관’은 ‘무수한 전각의 조합’이 종이 위에 흔적을 남긴 하나밖에 없는 원화이다. 따라서 그의 ‘전각을 통한 낙관’ 즉 탁인 기법으로 낳은 원화(原畫)는 유일성, 단품성(單品性)을 확보한 오리지널 회화임과 동시에 엄밀한 의미에서 하나밖에 없는 모노타입(monotype)의 판화가 된다.


이번 전시에서 그는 각 작품마다 이백여 개의 전각들을 조합해서 쉔지(宣紙)라 불리는 중국 전통의 ‘쌀 종이(rice papers)’ 위에 낙관을 한, 10점의 정방형의 약 20호 크기의 원화(68 x 68cm)를 출품하고 있는데, 작가는 전시된 원화 작품을 ‘판화 중성지에 잉크젯 프린터’로 찍은 에디션 판화를 준비하는 것 또한 잊지 않았다.


우리의 논의에서 관건은 작가 왕지에의 탁인화가 창출하는 아이코노텍스트(iconotexts)로서의 의미론에 관한 것이다. 그는 자신이 직접 돌 위에 ‘한자로 새긴 전각(텍스트)’을 조합해서 쌀 종이 위에 매우 신중하고도 느린 속도로 마치 명상 혹은 수행과 같은 낙관의 행위를 반복한다. 이러한 어렵고도 지난한 노동을 통해서 드러내는 ‘사람의 얼굴(이미지)’은 ‘텍스트로부터 이미지로’ 이동하는 창작 과정의 전환뿐 아니라, 작품 속에 ‘텍스트와 이미지’를 함께 병존시키는 창작 결과물의 존재론적 의미론을 드러낸다.

 

▲ 조선의 소녀 인물상

프랑스의 시인이자 이론가인 네를리쉬(Michael Nerlich)는 ‘이미지와 텍스트가 분할될 수 없는 한 덩어리’로 된 이러한 총체적 상태의 존재를 아이콘과 텍스트의 합성어인 ‘아이코노텍스트(iconotexts)’라는 용어로 규정하였다.

 

이것은 중국과 한국의 전통 속에 발견할 수 있는 문자도(文字圖)나 서화(書畫)는 물론이고, 오늘날 서예와 회화의 접목을 시도하는 캘리그램(calligramme) 그리고 영상과 사운드까지 뒤섞여 드는 일명 ‘시청각적 시(詩)’라 불리는 오늘날의 멀티포엠(multipoem)의 존재와 많이 닮아 있다.

 

그것은 이미지이면서 동시에 텍스트인 ‘이미지/텍스트’로서의 복수체 또는 융복합체로서의 존재적 위상을 견지한다. 오늘날의 기호학 담론으로 풀어본다면, 아이코노텍스트는 ‘기표와 기의가 합해진 기호’이며 동시에 이러한 ‘기호로부터 변주된 채, 새로운 기의를 기

다리고 있는, 새로운 기표로서의 존재’와 같다고 할 것이다.


한반도의 목걸이-일체중생의 미학
작가 왕지에의 탁인화가 견지하는 ‘새로운 기표로서의 존재’와 그의 아이코노텍스트가 기다리는 ‘새로운 기의’란 무엇인가?


이러한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 우리는 여기서 애초의 그의 전각에 새겨진 텍스트가 무엇인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것은 <금강경(金剛經)> 속 한자(漢字) 텍스트들이다. 전각의 숫자는 무려 5,160개에 달하는데, 그는 2004년부터 2006년까지 청전석으로 된 전각에 ‘하나마다 한 자씩’ 정성으로 텍스트를 새겨 넣어 이러한 텍스트 전각을 완성했다.


주지하듯이, 금강경은 글자 그대로의 의미를 따르면, ‘피안에 이르게 하는 금강석 같은 지혜’ 즉 지혜의 정체(正諦)를 금강의 견실함에 비유하여 ‘완전한 지혜’를 설파한 불교의 경전이다. 구체적으로 ‘인도의 사위국을 배경으로 부처의 십대 제자 수보리(須菩提)와의 문답을 또 다른 제자인 아난존자(阿難尊者)가 정리한 것을 인도의 승려 구마라습(鳩摩羅什)이 한문으로 바꾼 것’이다. 이 경전은 “인간이 스스로 ‘나’라는 존재가 있다고 착각하여 ‘나’라는 자아에 의해 발생되는 생각들인 ‘아상(我相)’으로부터 벗어나야 진정한 행복을 느낄 수 있다”고 설파한다.\

 

▲ 조선의 남성 청년 인물상
금강경은 ‘금강반야바라밀경’ 또는 ‘금강반야경’으로 불리기도 하는 만큼, “사물에 대한 분별심 없는 직관을 통해 보다 그 사물을 있는 그대로 파악할 수 있다”고 보는 <반야경(般若經)>의 사상을 근간으로 한다. 이러한 ‘반야 사상’은 공(空) 사상 등, 중국 도교의 근본과 비슷한 점이 많아 중국에 유행할 수 있었다.

 


또한 작가 왕지에의 작업과 관련하여, 금강경은 무엇보다 ‘대승(大乘)불교’의 경전이라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겠다. 대승불교는 석가에게만 한정하던 보살(菩薩)이라는 개념을 넓혀 해탈과 ‘일체중생(一切衆生)’의 성불 가능성을 인정함으로써 자기만의 구제보다는 이타(利他)를 지향하는 종교 활동을 광범위하게 펼쳐 나갔다. ‘일체중생’이 ‘일체유정(一切有情)’의 의미처럼 ‘이 세상에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을 지칭하듯이, 대승불교가 이전까지의 승려들만의 종교였던 ‘소승(小乘)불교’를 밀쳐 내고, ‘민중을 위한 종교’로 확장한 새로운 불교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작가 왕지에의 탁인화가 드러내는 금강경의 텍스트는 이러한 대승불교에 나타난 일체중생의 미학을 실천한다. 보라! 금강경의 한자(텍스트)로 만들어진 인물들(이미지)은 그의 지인들이다. 그들은 작가 왕지에가 중국인으로서 한국과 북한을 자유롭게 왕래하면서 만났던 그야말로 ‘특별하지 않은 사람들’이다.

 

그들은 무명의 인물들, 즉 ‘민중’이다. 작가 왕지에는 한국과 외교 관계를 지닌 중국 작가의 입장에서, 동시대를 살고 있는 남북한 지인들의 개별 초상을 하나하나 탐구함으로써 자신의 ‘일체중생’이라는 미학적 관심을 표명한다. 그는 ‘민중의 구성원인 개별 주체’에 대한 미시적 탐구를 통해서 최근에 ‘한반도가 당면한 미래적 운명’에 대한 거시적 탐구를 도모한다. 그런 면에서 그의 작품은 인물 이미지(기표)와 일체중생의 사상(기의)이 한 덩어리로 뭉쳐진 이미지/텍스트(아이코노텍스트)인 셈이다. 이것이 바로 이번 전시에서 선보인 작품이 지니는 ‘새로운 기표로서의 존재’이자 그것이 기다리는 ‘새로운 기의’이다.

 

▲ 왕지에 회장(우), 반기문 전유엔사무총장과 함께
북한과 남한 사이에 그어진 ‘북위 38도’의 보이지 않는 경계선(이미지)은 분단을 은유하고 설명(텍스트)한다. 따라서 그가 이번 개인전을 위해 제시한 전시명, <한반도의 목걸이-북위 38>에서 ‘한반도의 목걸이’란 ‘북위 38도’가 애초에 함유하고 있는 분단의 의미로부터 통일(에 대한 기대)의 의미로 전환된다.

 

 

즉 하나의 부정적 기의의 이미지로부터 긍정적 기의의 이미지로 변주된 것이라 하겠다. 이러한 변주란 그의 작품에서의 ‘새로운 기표로서의 존재’와 그것이 기다리는 ‘새로운 기의’를 극대화하는 장치이다.


북위 38- 물화에 담긴 개별자의 역사
유념할 것은, 작가 왕지에가 이름을 특정할 수 없는/않는 ‘민중’만을 대상으로 자신의 탁인화 즉 ‘전각 인물화’를 탐구해 온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는 2004년 전각 작업을 시작한 이래 완성된 전각의 조각적 설치의 언어에 대한 탐구나 2009년 전후의 탁인화의 기하학적 조형을 탐구하는 시기를 거치기도 했다. 그가 전각 인물화를 본격적으로 탐구한 것은 대략 2010년 전후의 일이다.

 

2013년 이전에는 기다란 족자 형태의 대형 종이 위에 중국을 비롯한 세계의 정치 지도자의 모습을 형상화한 ‘정치인 시리즈(Politicians Series)를 선보인 바 있다. 2013년 이후에는 국제 사회에서 긍정적/부정적으로 커다란 주목을 받은 인물들을 탐구한 ‘사회 초점 시리즈(Social Focus Series)’를 선보였다.

 

폭로 사이트인 위키리크스(wikileaks)의 최고책임자인 ‘줄리안 어산지(Julian Paul Assange)’나 몇 년 전 미국 국가안보국 NSA의 대량 감시에 대해 폭로하며 유명세를 떨친 ‘에드워드 스노든(Edward Snowden)’과 같은 인물뿐만 아니라, 인간 체세포를 이용한 배아줄기세포 실험에 대한 조작된 논문을 발표했던 한국의 황우석 박사와 같은 인물들이 이 시리즈의 주인공이다.


작가 왕지에의 전 작품 속에서, 이러한 세계적 지명도를 지닌 인물들에 대한 ‘아이콘’으로서의 탐구는 금강경이 심층에 견지하는 ‘일체중생’의 주변에서의 ‘프롤로그’로서의 탐구였다고 한다면, 이번 전시에서 무명의 인물들에 대한 ‘반(反)아이콘’적 탐구는 금강경의 ‘일체중생의 미학’에 대한 본격적인 탐구에 이르렀다고 하겠다.

 

한편, 이번 전시에서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과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 그리고 한국의 문재인 대통령 초상은 이러한 양 방향을 중첩시키는 징검다리라 할 것이다. 이러한 차원에서 이번 개인전은 무명의 개별적 인물들을 유명인들과 비교한 채, 인물 탐구를 지속함으로써 역사의 미래를 예술가로서 조망하는 작업이라고 정의할 수 있겠다.

 
작가 왕지에는 중국의 장족(藏族)이라고 하는 티벳 자치구 ‘지우즈(久治)’현 출생으로, 동관(东关)회족이라고 하는 이슬람 자치구에서 성장했던 만큼, 그의 작품에는 국제적 정치 질서로부터 소외되거나 희생이 된 소수민족의 정서가 지속적으로 관통한다.

 

1989년 칭하이사범대학 예술과를 졸업한 후, 1993년 베이징에 정착하고 예술 창작에 종사하면서도 그는 다양한 문화 예술 활동을 동시에 펼쳐왔다. 한편으로는 다양한 국제적 프로젝트의 기획자로, 한편으로는 청년 작가들의 국제적 협회의 수장으로, 또 한편으로는 문화예술 NGO에서의 활동가로 일해 온 경력이 그것이다. 그의 무수한 경험이 그의 작품 속에 고스란히 남아있게 된 배경이다.

 

 ‘탁인화’라고 작명한 그만의 독특한 장르를 통해서 작가 왕지에가 탐구하는 ‘모두 함께’의 사회적 메시지와 더불어 ‘일체중생’의 미학이 또 어떠한 방향에서 진행되어 나갈지 기대하게 하는 대목이라 할 것이다.

 

▲  작가 왕지에
왕지에(王皆, Wang Jie) 프로필
예술가, 탁인화(拓印畵)창시자, 문화사절, 민간외교가, 불교학자, 북경청년국제문화예술협회 설립자 및 회장, 북한 진달래아동기금회 고급자문.
개인전, 단체전 등 수십 회.
수상
2019 제31회 한국단오선면전 최우수상(한국)
2019 대한민국국제문화예술제 대상(한국)
2019 제주 인터내셔널 아트쇼 2019 대상(한국)
2014 중한창의도시문화대전-동방지혜 문화공헌상(한국)
소장
미국보험회사 AIG, 매리어트그룹, 중국 판판그룹, 주중프랑스대사관, 주중체코대사관, 프랑스 파리공상회, 중국 프랑스환경위원회, 프랑스 샤또루시, 프랑스 앵드르주정부, 영국 웰레스변호사그룹, Facebook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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