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중뤄(丙中洛): 인간과 신이 함께 사는 땅

이곳의 땅은 마치 강력한 큰 힘을 지닌 듯 민족간의 거리와 종교간의 갈등, 문화간의 차이를 융화할 수 있다.
온라인팀 news@inewschina.co.kr | 2016-03-31 11: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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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덩샤오샤(邓小夏)


전화 속 친구가 물었다. 어디야? 답: 빙중뤄(丙中洛) 질문: 거기가 어딘데? 답: 멀지 않아. 광저우(广州)에서 쿤밍(昆明), 쿤밍에서 다리(大理), 다리에서 류쿠(六库), 류쿠에서 푸궁(福贡), 푸궁에서 궁산(贡山), 궁산에서 43km만 오면 돼. 윈난(云南) 북서부 헝돤(横断)산맥지대에 위치하며 칭장(青藏)고원의 누장(怒江), 란창강(澜沧江), 진샤강(金沙江)의 ‘삼강’에서 발원해 수 백리를 흐르는 진풍경이다. 이중 누장은 북쪽에서 남쪽으로 윈난 전체를 가로지르고 동서의 비뤄(碧罗)산과 가오리궁(高黎贡)산 사이를 흐르며 유명한 누장 대협곡을 만들어낸다. 대협곡은 산이 높고 가파르며 수직높이 차가 4천m 이상의 깊은 골짜기로 수직의 자연경관과 입체적인 기후가 장관을 이룬다. 빙중뤄가 바로 협곡으로 들어가는 북쪽 대문이다. 


윈난 남서부지역은 오래 전부터 세계 모험가들이 추구하는 에덴동산이 되었다. 미국의 모험가 조셉 로크(Joseph Locke)는 미국잡지 <내셔널지오그래픽(National Geographic)>에서 일하며 20여년동안 많은 희귀종을 찾아 미국으로 옮겨와 연구했다. 그는 “세계의 어느 곳이 탐험가와 촬영기자들에게 이토록 감동적이면서도 가장 웅장하고 아름다운 풍경을 선사할 수 있을까? 아직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윈난 북서부, 티베트 동남부에 있는 차룽(察龙)산맥 헝돤(横断)산맥) 외의 다른 곳은 없을 것이다” 라고 찬탄했다. 


각지의 절친 몇 명이 쿤밍에 모여 빙중뤄로 출발했다. 8월의 윈난은 비가 많이 오는 여름으로 협곡에서 낙석과 산사태가 자주 발생해 산에 들어가기 좋은 시기는 아니나 최근 날씨가 개인 것을 알고 바로 출발했다. 


협곡의 남쪽 입구 누장을 통해 주(州)정부소재지 류쿠(六库)로 들어가면 대협곡이 시야에 들어오고 가파른 돌산, 굽이굽이 이어지는 산길, 세찬 강물, 빽빽이 흐르는 험한 여울이 펼쳐진다. 


300여km 안쪽 협곡의 한편에는 천길 낭떠러지가 이어지고 다른 한편에는 강물이 거세게 흐르는데, 길이 좁고 급커브라 노면중간이 훼손되고 갑자기 낙석이 나타나 운전기사들의 기술과 승객들의 담력을 시험하곤 한다.


우리는 하루 온종일 비 오다 개이다가 반복되는 날씨 속에 가고 서기를 계속한 결국 날이 어두워지기 전에 빙중뤄 산 입구에 도착했다. 


야경의 강은 노란 실크리본처럼 거대한 반도를 휘돌아 흐른다. 북쪽에서 흘러내려오는 누장은 이곳에서 산에 가로막혀 U자 모양으로 크게 굽어 방향을 바꿔 남쪽으로 흘러간다. 현지 리수(傈僳)족 사람들에게 ‘부집게(火夹)’라 불린다 훗날 ‘누장 제1물굽이’로 불리고 있는 이곳의 명칭은 야루짱부장(雅鲁藏布江) 제1물굽이와 엇비슷하다. 


여인숙에 투숙하는 손님들은 보통 하루를 끝내기 전 계산대 앞에 모여 술 한잔 하며 그날 보고 들은 것들을 이야기하며 정보를 나누기를 좋아한다. 여인숙 사장은 젊은 청년으로 선전(深圳) 외국계 IT기업에서 일했었다. 산악자전거 마니아인 그는 누장 대협곡 자전거 일주를 마친 후 이곳의 그림 같은 풍경과 조화롭게 공존하는 주민들에 매료되어 남았다. 최근 며칠에는 이 젊은 사장의 친구 하나도 베이징에서 왔다가 이 곳에 여인숙을 열고 싶어졌다. 그는 현재 젊은 사장의 도움으로 농민과 주택임대 하는 일을 의논 중이다.

 

북쪽에서 흘러내려오는 누장(怒江)은 이곳에서 산에 가로막혀 U자 모양으로 크게 굽어 방향을 바꿔 남쪽으로 흘러간다. 현지 리수(傈僳)족 사람들에게 ‘부집게(火夹)’라 불린다 훗날 ‘누장 제1 물굽이’로 불리고 있는 이곳의 명칭은 야루짱부장(雅鲁藏布江) 제1 물굽이와 엇비슷하다.

 

대협곡 깊은 곳에 숨어있는 빙중뤄는 누장이 윈난으로 들어가는 첫 번째 관문이자 협곡에서 가장큰 ‘제방’이다. 윈난, 티베트, 쓰촨(四川), 미얀마가 인접한 곳에 위치한 이곳은 천 년 이상 누족(怒族), 티베트족, 리수족(傈僳族), 두룽족(独龙族) 등 열 개 정도의 민족의 삶의 터전이다. 백 년 이상 된 성당, 더 오래된 티베트불교, 현지의 리수둥파교 등 여러 민족과 다양한 종교가 공존해 ‘인간과 신이 하나된 인간세계의 선경(仙境)’, ‘인류문화생태공원’이라 불린다.

 

 

빙중뤄의 지세는 북쪽이 높고 남쪽이 낮다. 사면이 산으로 둘러 쌓여 산들이 이어지고 강줄기가 교차하며, ‘설산은 성이요 강은 연못(雪山为域、江河为池)’이란 이야기도 있다. 이렇게 지리적으로 공격은 어려우나 방어는 쉬운 지형 이유 때문인지 각 민족의 조상들이 이곳에 정착하기 시작했다. 가장 많은 민족은 누족으로 이 지역 전체인구 5000여명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이들이 이곳 최초의 원주민이며, 티베트족, 리수족, 두룽족과 다른 민족은 훗날 건너온 민족들이다. 청(清) 시기에는 칭짱(青藏)고원에서 들어온 티베트족이 이 일대를 통치하기도 했다. ‘빙중뤄’가 바로 티베트어로 ‘대나무 산골자기 시냇가 옆의 티베트족 마을’ 이란 뜻이다. 


마을의 이름에서 어떤 민족이 모여 사는 곳인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이름에 ‘뤄(洛)’가 들어가는 마을은 티베트족, ‘퉁(桶)’이 들어가는 마을은 누족과 리수족(누족 언어로 ‘화평’, ‘평안’의 뜻), ‘당(当)’이 들어가는 마을은 두룽족이 모여 산다.


빙중뤄에는 다양한 종교가 공존한다. 대부분의 누족은 천주교를 믿고 티베트족 중에도 천주교가정도 있으며, 티베트족이 아니면서도 티베트불교를 믿는 가정도 있다. 모든 가정이 기본적으로 두 가지 이상의 민족으로 이뤄져 있어 단일민족 가정은 찾아보기 힘들다. 


특수한 지리환경의 영향으로 빙중뤄의 기후는 변화가 많다. 겨울에는 날씨가 맑으면 푸른 누장 뿐만 아니라 하루에 두 번 해가지는 기경도 볼 있다—북쪽이 높고 남쪽이 낮기 때문에 태양이 비뤄쉐산(碧罗雪山) 뒤에서 떠올라 궁당선산(贡当神山)에 가로막혔다가 두 시간 후에 가오리궁산(高黎贡山)에서 다시 떠오른다. 


▲ 빙중뤄(丙中洛) 중딩(重丁)성당

▲ 빙중뤄(丙中洛) 티베트불교사원 푸화사() 문간에서 불경을 낭독 중인 사미승 

이때는 때마침 누장의 우기로 진흙과 모래가 떠내려와 강물의 색이 황하같다. 그러나 우기의 빙중뤄는 자욱한 안개 사이로 가까이는 통나무집, 현수교, 초원이 보이고 멀리는 사원의 오색깃발과 흰색 성당이 보여 신선의 세계에 있는 듯하다. 

 

이른 아침 보슬비를 무릅쓰고 여관을 나서면 멀지 않은 곳에 깃발이 나부끼는 흰 탑으로 티베트족마을을 표시한 것을 볼 수 있다. 길이 눈에 띄게 넓어지는 것을 보니 재정비한 지 얼마 안 된 것임이 틀림없다. T자도로에는 눈에 띄는 중딩(重丁)성당의 표지판이 멀리서 온 손님들을 맞는다. 성당의 흰색 첨탑 두 개는 멀리서도 보인다. 일요일이 아니라 문은 닫혀있다. 지나던 마을주민이 문을 지키는 티베트족 정(丁)여사를 찾아가면 성당 안으로 안내해 줄 것이라 일러주었다. 


두 개의 탑 꼭대기는 현지에서 나는 기와로 되어있어 중국과 서양의 절충이라는 의미가 있다. 탑 위에는 십자가가 세워져 있고 성당은 사각기둥과 인방 위 벽면의 화초로 바로크스타일을 연출했다. 천사들은 중국인과 서양인의 혼혈아 같고 성당 문 앞에는 티베트어로 방이 적혀있다. 여사는 성당이 전에는 지금보다 훨씬 크고 아름다운 석조건물 이었는데 문화대혁명 때 무너져 지금의 건물은 1996년에 다시 지어진 것이라 소개했다. 성당 벽에는 성당의 최근 소식을 알리는 사진이 붙어있고, 사진에는 외국 성직자가 있다. 복원된 것이긴 하나 성당은 여전히 빙중뤄에서 가장 인기 있는 곳으로 문 앞에 언제나 차들이 주차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성당을 건축한 프랑스 Annet Genestier(중국이름: 任安守)신부는 자신이 성당 마당에 직접 심은 약 밤나무 아래 묻혔다. 묘비에는 ‘Annet Genestier 신부, 1854년 4월 14일 프랑스 클레르몽시 돔(Dôme) 현(县) 출생. 1886년 봉인. 같은 해 중국을 찾아 티베트교구에서 선교. 1898년부터 별세할 때까지 궁산 빙중뤄에 교회당 지어 선교하다”라고 적혀 있다. 그는 지금까지도 설산 자락 아래 신의 영토를 지키고 있다. 오늘날 천주교는 빙중뤄에서 티베트불교와 현지의 다른 원시종교를 넘어 가장 큰 종교가 되었다. 


성당을 둘러싸고 있는 중딩촌이란 마을은 대부분을 차지하는 누족뿐 아니라 두룽족, 리수족, 티베트족의 네 개 민족 52가구가 모여 살고 있으며, 불교, 천주교, 기독교, 원시종교가 있다. 딩(丁)여사집안은 여섯 민족의 여섯 식구이다. 딩여사는 티베트족, 남편은 누족, 첫째 사위는 백족(白族), 둘째 사위는 이수족, 세 번째 사위는 광시장족(广西壮族), 며느리는 나시족(纳西族)이다. 딸과 사위들은 대부분 주(州), 현(县) 등 정부기관의 공무원으로 빙중뤄에 있는 집에서는 자주 머물지 않는다. 온 식구가 모여 앉아 이야기를 나눌 때는 중국어(보통어)를 사용한다. 몇 대가 내려가면 무슨 민족이라 말하기 어려워질 정도로 정말 민족융합이다. 


빙중뤄의 가장 대표적인 티베트불교사원은 가오리궁산 주봉우리 가와가푸(嘎娃嘎普)산 아래 있는푸화사(普化寺)이다. 


빙중뤄를 둘러싸고 있는 산들 가운데 이름이 있는 명산은 10개로 각각의 신주가 있다. 가와가푸산은 빙중뤄 10대 명산 중 으뜸이다. 해발 5,128m 로 빙중뤄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이자 누장주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이다. 


중딩촌을 떠나 한 시간 정도 걸어 산등성이 두 개를 넘어야 가파른 산봉우리 위에 자리한 푸화사에 도착한다. 티베트의 일부 번화한 사원들에 비해 푸화사는 한산하고 고요하다. 본당은 티베트스타일로 느티나무 밑의 조각상이 마을 수호신의 모양을 바라보고 있는 듯하다.


사원은 보수 중이었다. 얼룩덜룩한 목재구조 건물에 100년 세월 풍파의 흔적과 문명의 융합이 새겨있다. 빙중뤄에서 가장 오래되고 아름다운 건물이라고 한다. 불교가 들어올 때만 해도 이 곳은 화전을 일구는 원시상태를 유지하며 모든 것에 영이 있다고 믿는 원시종교를 믿고 있었다. 북쪽 티베트를 통해 전해진 불교는 한동안 빙중뤄의 가장 중요한 종교가 되었다. 1897년 티베트 차와뤄(察瓦洛) 일대에서 선교하던 프랑스천주교회 캉딩(康定)교구의 Annet Genestier 신부가 빙중뤄에 선교한 것이 중딩성당의 기원이다. 기독교는 이보다 늦은 1934년 궁산 츠카이(茨开) 일대에서 활동하던 미국의 모스(莫尔士)목사를 통해 남쪽에서 북쪽으로 누장을 거슬러 올라가 빙중뤄에 전해졌다. 


여름에도 산속은 쌀쌀하다. 푸화사 문간에서 열 살 된 사미승이 큰북을 치고 옷을 얇게 입은 사미승 몇 명이 리듬을 타며 불경을 낭독하는 소리가 은은하게 들린다.


푸화사에서 한 골목 떨어진 곳에는 허름한 교회가 하나 있는데, 벽에 리수족 문자로 어느 집안의 누가 얼마를 헌금했다는 내용인 듯한 공고문이 있다. 성도들은 근처 동풍촌(东风村)과 다른 마을사람들인데, 동풍촌에는 라마교 신자가 더 많고 기독교와 원시종교를 함께 믿는 사람도 많다. 


빙중뤄 주민들은 종교간의 엄격한 경계를 두지 않는다. 한 젊은이의 이야기에 따르면 자기 집에서 자기와 아버지는 티베트불교를 믿는데, 여동생 둘은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기독교로 개종해 매주 예배를 드리고 돌아오면 교회에서 했던 활동을 이야기하고 다른 식구들도 재미있게 듣는다고 한다. 


빙중뤄에서는 민족 전통복장의 차이가 아니면 민족을 구별하기 어렵다. 민족간의 거리와 종교간의 알력, 문화간의 차이를 융합할 수 있는 강력한 힘이 있는듯하다.


푸화사에서 내려오니 날씨가 개었다. 추나통(秋那桶)에 가서 우리춘(雾里村)의 전원풍경을 보기 가장 좋은 때이다. 


빙중뤄가 누장협곡의 정수라면 추나통 일대의 마을은 그 중에서도 전원풍경이 가장 아름다운 곳이다. 추나통 북쪽으로 지나가는 ‘빙차(丙察)’도로는 티베트로 들어가는 여덟 번째 도로로 불리며 톈좡좡(田壮壮) 감독이 차마도고를 그린 다큐멘터리 <아쌈(阿萨姆)>의 배경이 된 곳이기도 하다. 


우리춘은 우산 모형의 평원에 위치하며 한편에는 비뤄설산이, 한편에는 가와가푸산이 있다. 검은 돌 판으로 지은 누족의 전통가옥 목릉방(木楞房)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흰 구름 떠 있는 파란 하늘아래로 고요하게 펼쳐지는 푸른 산과 물이 속세를 떠나온 듯하다. 


가와가푸산에서 눈이 녹아 흘러내린 물은 동풍촌 옆의 푸화사와 교회. 중딩촌의 성당을 지나 세차고 자유롭게 흐르는 누강으로 흘러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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