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더 멀고 먼 우주를 향해 나가다

“중국 항공우주사업 60년 발전의 경험자와 목격자로서 나는 새로운 60년 동안 지속적으로 과학발전을 추진하고 실속 있고 조화로운 발전을 추진한다면 중국우주사업의 더듬이가 더욱 멀고 먼 우주까지 뻗어나갈 것이라 확신한다.”
온라인팀 news@inewschina.co.kr | 2016-11-07 10:48:51
  • 글자크기
  • +
  • -
  • 인쇄
  • 내용복사

글/쑨자둥(孙家栋)


1950년대 창립한 이래로 중국항천(航天: 항공우주)과학기술그룹(China Aerospace Science and Technology Corporation: CASC) 는 벌써 60년 발전의 길을 걸어왔다. 중국 항공우주산업의 역사를 뒤돌아보면 미사일 개발이나 위성 발사나, 유인 우주비행선이나, 베이더우(北斗) 위성항법시스템이나 아니면 달 탐사 프로젝트나 모두 시종일관 자국의 국가 사정에 맞는 발전의 길을 견지했다. 너무 이상만 쫓지 않고 실사구시의 자세를 유지하며 실제 수준에 맞춰 한걸음 한걸음씩 마침내 중국 특색의 발전의 길을 걸어왔다. 


60년동안 당 중앙의 여러 대에 걸친 지도자그룹의 현명한 의사결정과 친절한 보살핌 아래, 각 분야, 각 업계 및 전체 국민의 대대적인 지원을 받아, 대대로 우주인들은 적극적으로 노력하고 자주혁신을 통해 일련의 눈부신 성과를 거뒀다. 오늘날 항공우주활동은 중국 경제 건설과 사회 발전에 있어 더욱 더 중요한 역할을 발휘하고 있으며 이 덕분에 중국은 세계 우주대국 대열에 합류했을 뿐만 아니라 세계 첨단 기술 영역에서도 그 지위를 확립할 수 있었다. 

 

▲ © 중국의 우주비행사 자이즈강이 선저우7호 유인우주비행의 선외활동 임무를 수행하면서 중국 국기를 흔들고 있다.

항공우주사업의 기초정립: 미사일 발전 ‘3단계’

 

1956년 10월 8일, 중국의 첫 번째 로켓 미사일 연구기관인 국방부 제5연구원이 정식으로 설립되었고 이로써 중국 항공우주사업이 시작되었다. 


당시 네룽전(聂荣臻)원사와 첸쉐선(钱学森)동지는 전국 각지에서 인재를 모았다. 그 중 2,30명의 전문가는 대다수 유럽 및 미주지역에서 공부하고 귀국한 해외파로 런신민(任新民), 량셔우판(梁守槃), 주앙펑간(庄逢甘), 투셔우어(屠守锷)등이 있었다. 그 후 루위안지우(陆元久), 량스리(梁思礼)등이 합류했고 이외에 하얼빈 중국 인민해방군 군사공학학원, 베이징대학교, 칭화대학교, 베이징 항공우주대학교의 졸업생도 함께 했다. 


1958년 나는 소련 주콥스키 공군공학학원 비행기엔진과를 졸업한 후 귀국했다. 공군은 24명의 졸업생 중 16명을 선발해 미사일 연구를 하도록 보냈는데 나도 그 중에 포함됐다. 내가 갔을 때 미사일 ‘거치대’가 이제 막 설치되었고 ‘guided missile’이 ‘유도탄’으로 번역되었는데 이 또한 첸쉐선이 결정한 것이었다. 


그 해, 소련은 우리에게 소형 미사일인 ‘P-2’로켓 하나를 제공했다. 이는 소련이 2차세계대전 기간에서 연구 제작한 것으로 사정거리가 200여 킬로미터에 달했다. 우리는 이를 샘플로 복제하기 시작했다. 1959년 중국과 소련의 우호관계가 깨지면서 소련은 전문가들을 복귀시키고 일부 중요한 설비를 공급하다 중단했으며 일부 자료도 보내지 않았다. 이런 어려운 상황 아래서 우리의 과학기술인력은 매일 야근하면서 도면을 베끼고 원리를 연구하고 복제한 내용을 다시 소화하고 이를 다시 역설계하고 개선 혁신하는 등 일련의 작업을 한걸음씩 완수해 나갔다. 반년 후인 1960년 11월 5일 중국은 복제한 첫 번째 근거리 지대지 미사일 ‘둥펑(东风)1호’를 하늘에 쏘아 올리는데 성공했다. 


복제에 성공한 후 중국은 자체적인 미사일 설계를 시작했다. 1964년 6월 29일에 이르러 ‘둥펑2호’미사일의 비행 실험이 성공을 거뒀고 사정거리는 800여 킬로미터까지 늘었다. 이는 중국 미사일산업 발전에 있어 기념비적인 의미를 지닌다. 중국의 과학기술인력은 미사일 연구제조의 핵심기술을 확보했을 뿐만 아니라 체계적으로 미사일 연구제조의 과학적 규칙을 고민해 이를 총정리했으며 전체 설계를 강화하는 개념을 제기했다. 또한 반드시 실행가능성 논증과 지면실험의 기초 위에 신뢰성을 출발점으로 방안을 논증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1966년 문화대혁명이 시작되면서 항공우주사업은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미사일 연구제조에 있어 팀 구성원은 여전히 본연의 직무에 충실했다. 미사일은 총괄적인 작업으로 장기간의 단체 협력 중에 모두들 상호 협력하는 습관을 키웠고 이에 따라 재미있는 현상이 하나 나타났다. 즉 정치적으로는 모두 각자의 관점이 다를지는 몰라도 미사일 연구제조에 있어서만은 계속 서로 보조를 맞췄다. 


‘둥펑3호’가 발사에 성공하면서 중국은 자체적으로 미사일을 연구제조할 수 있는 능력을 완벽하게 갖추고 있음을 증명 받았고 사정거리도 다시 2500여 킬로미터까지 늘어났다. 그 후 중국은 ‘둥펑4호’와 ‘둥펑5호’ 등의 미사일을 연속적으로 연구제조하기 시작했다. 


중국의 미사일 발전 과정은 복제에서부터 시작해서 사정거리 개선, 엔진 양력 조정 등과 같은 개선 단계에까지 이르렀다. 이와 동시에 개선 과정에서 팀을 단련시키고 자신감을 높이고 기술을 확보했다. 연구팀은 유명 원로 전문가와 청년 학생으로 구성되었고 대형사업에 있어 필요한 2가지 중요한 여건을 갖췄다. 첫째 제어시스템을 어떻게 제어할 것인가 등 기술을 숙련되게 익혔고, 둘째 미사일 설계, 연구개발단계에서 생산까지 인재 팀을 구성했다. 이에 대해 네룽전 원사는 “성과를 내고 인재를 배출하는데 있어 외따로 나를 자극하지 마라. 난 팀을 만드는데 중점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 


미사일사업 발전과정에서 중국은 독립자주와 자력갱생을 중시했다. 초기 소련은 우리에게 도움이 되었지만 정부는 결국은 스스로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 당시, 소련은 우리에게 “미사일은 우리가 모두 가지고 있으니 걱정 말라. 너희가 필요할 때 우리가 주면 된다”고 약속했지만 중국 정부의 지도자는 시동일관 독립적이고 자주적으로 미사일사업을 발전시킬 것을 강조했다. 


학습, 모방에서 개선까지 다시 독자적으로 연구제작하기까지 중국의 미사일사업은 ‘3단계’의 발전과정을 걸었으며 이와 동시에 중국 항공우주사업 발전을 위해 튼튼한 기초를 다졌다. 이를 기초로 중국 과학자는 1960년대 중반부터 항공우주 운반로켓 개발을 모색했으며 마침내 ‘창정(长征)1호’ 운반 로켓으로 ‘둥방홍(东方红)1호’위성을 지구 저궤도로 쏘아 올리는데 성공해 자체 제작한 로켓으로 자국 위성을 성공적으로 발사한 5번째 국가가 되었다. 수십 년 동안 운반로켓 기술이 거둔 엄청난 성과는 중국 위성기술, 유인우주비행기술과 달 탐사 기술의 발전을 이끌었다. 

 

▲ © 6월 25일 중국의 차세대 운반로켓인 창정7호가 하이나 원창 항공우주 발사장에서 성공적으로 발사되었다.

‘둥방홍1호’: 우주정복의 첫발을 내딛다

 

1957년 소련이 세계 최초로 인공위성을 쏘아 올려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이는 인류가 최초로 지구상의 천체를 우주로 쏘아 올려 운행한 것으로 중국도 이를 크게 주목했다. 그 해 첸쉐선, 자오지우장(赵九章)를 필두로 한 과학자들은 위성 연구제작을 시작할 것을 건의했다. 그러나 중국 정부는 위성발사를 위해서는 반드시 발사능력이 있어야 하고 그러지 않을 경우 위성을 하늘에 올릴 수 없다고 생각했다. 당시의 경제 상황상 중국은 아직 위성을 연구 제작할 여건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우선 기초적 연구제작 활동을 하기로 결정했다. 


1965년 과학원은 위성연구제작을 다시 건의해 마침내 비준을 얻어냈고 과학원 위주로 중국의 위성 연구제작이 시작되었다. 그래서 과학원은 ‘651’로 명명된 사업을 전개하기 시작했고 651연구원을 설립해 당시 원부위원이었던 자오지우장이 원장을 맡았다. 


하지만 1년여 후 문화대혁명이 시작되었고 과학연구활동은 국내 상황의 영향을 받았다. 국제적으로 소련과 미국이 이미 잇달아 첫 번째 위성을 발사했고, 일본, 프랑스도 연구 제작 중이어서 중국도 서둘러 첫 번째 위성을 연구 제작해 발사해야 했다. 그 후 네룽전은 중국과학원 원래의 연구제작인력 위주로 제5연구원과 총괄본부를 설립했고 또한 미사일 연구제작팀 중 일부 인력을 선발하는 등 전국의 역량을 위성 연구 제작에 집중했다. 


‘651프로젝트’에서 시작해 팀은 관련 방안을 설계해냈다. 하지만 위성이 하늘에 올라간 후 우주의 전자 상황, 대기상황과 같은 여러 탐사활동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나왔다. 이럴 경우 여러 종류의 탐사 계측기가 필요했다. 위성 발사의 난이도가 커서 만약 탐사까지 고려한다면 설상가상이 될 상황이었다.


당시 첫 번째 위성 발사를 연구하는 것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과정으로 첫 번째 목적은 위성과 인프라를 연구 제작할 능력을 구비하는 데 있었다. 항공우주의 기본기술을 확보해 발전시키고 연구제작팀을 조직해서 항공우주사업 발전이 첫발을 뗄 수 있도록 기초를 다졌다.


목표를 분명히 한 후 팀은 원래 방안을 기초로 단순화를 했고 ‘발사성공’이라는 주요임무를 분명히 하고 얼마나 많은 물건을 탑재할 수 있을지를 강조하지 않았다. 이렇게 모두들 원래 위성의 우주물리탐사라는 임무를 내버려둔 채 위성이 ‘위로 올라가 꽉 붙잡고 듣고 볼 수 있도록’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였다. 


마침내 1970년 4월 24일 중국은 ‘창정1호’로켓을 사용해 ‘둥방호1호’위성을 우주로 쏘아 올렸다. 위성은 안전하고 안정되게 정확히 궤도에 들어갔고 지구 상공 에서 악곡 <둥방홍>를 소리 높여 연주해 전세계를 놀라게 했다. ‘둥방홍1호’위성의 무게는 173킬로그램으로 중국보다 먼저 위성을 쏘아 올린 4개 국가의 위성 무게를 모두 합친 것보다 더 무거워 중국 로켓의 운반 능력이 크다는 것을 보여줬다. 전체 운행 기간 동안 위성의 각종 계기는 안정적인 성능을 보였고 원래의 설계 요구를 훨씬 뛰어넘는 시간 동안 작업하는 등 예상 목표를 완벽히 달성했다. 


‘둥방홍1호’위성의 성공은 중국 우주사업의 첫 번째 이정표가 되었다. 중국은 위성시스템, 운반로켓시스템, 지상 관측제어 시스템, 발사장, 응용 시스템 건설이라는 위성 연구 제작 사업을 비교적 전면적으로 완성했고 이를 통해 항공우주활동의 서막을 열고 중국이 이미 항공우주시대에 진입했음을 선포했다.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중국의 항공우주사업은 시작 및 초기단계에 처해 있었고 ‘양탄일성(两弹一星: 핵폭탄, 미사일, 위성)’의 성과는 국가경제와 국방건설에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녔다. 위성 연구제작 사업은 ‘발사성공’이라는 첫 임무를 완수한 후 일련의 ‘귀환식’위성을 연구 제작해 ‘지구로 다시 돌아오는’목표 실현을 위해 튼튼한 기초를 다졌다. 


1980년대 후반기부터 국가경제건설이 정상궤도에 오르면서 위성 연구제작도 경제건설, 국가건설에 도움을 주기 시작했다. 1990년대 기상위성, 측지위성이 성공적으로 연구 제작되었고 응용위성, 해양위성 등도 경제건설에 적극적인 역할을 했다. 위성산업은 경제발전을 이끌었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경제성장점이 되었으며 또한 향후 유인우주비행, 심우주 탐사 등을 위해 견실한 기초를 다져주었다. 


‘베이더우(北斗)’: 중국의 위성항법시스템


정보사회에서 위성은 수집한 정보를 전달하는데 큰 특징이 있다. 하지만 이는 개괄적 전달이 아닌 구체적이고 상세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으로 지상의 인터넷과 우주 정보를 결합했다. 정보의 수집 또는 전달은 모두 매개체에 의존하는데 이에 따라 위성시스템이 갈수록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일찍이 1970년대 미국은 이미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연구에 힘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당시 중국은 이런 종류의 위성을 연구개발할 실력이 없었다. 왜냐하면 이는 수십 개의 위성으로 항행 유도의 정확도를 확보해야 하기 때문이다. 21세기에 들어와 중국의 경제능력과 연구개발인력 및 기술 수준이 끊임없는 향상되어 ‘베이더우(北斗)’위성항법시스템의 연구개발이 진행되기 시작했다. 


2000년 우선‘베이더우’ 항법실험시스템이 세워져 중국은 미국, 러시아에 이어 독자적인 위성 항법 시스템을 가진 3번째 국가가 되었다. 중국의 당시 국가사정을 결합해 ‘베이더우’1호가 먼저 우선 연구 제작되었고 초기 2개였던 위성은 4개로 늘어났다. 그 목적은 중국이 이 분야의 기술을 확보했는지를 검증하고 지상에서 위치확인, 추적이 가능한지와 전체 시스템 관리가 원활히 이뤄지는지를 테스트하기 위한 것이었다. 


주력 발전시켜야 할 항공우주프로젝트로 확정된 중국의 ‘베이더우’계획은 ‘2단계’의 발전 노선을 따랐다. 1단계는 현재 사용 중인 ‘베이더우2호’1기 공정으로 2012년 12월에 이미 망 구성이 완성되었고 여기에는 궤도에서 일하고 있는 총 14개의 위성(원래 방안은 12개였으나 예비용으로 2개 위성을 추가)이 포함되었고 지상 기반 보정 시스템을 강화하고 각 방면의 응용을 추가했다. 현재 이 지역적 위성은 중국 주변지역에서 잘 사용되고 있다. 또한 원래의 GPS사용자도 ‘베이더우’에 가입하고자 해서 이럴 경우 사용과정에서 GPS 사용이 어려울 경우 ‘베이더우’를 사용할 수 있다. 중국은 현재 ‘베이더우’2기 공정을 진행 중인데 2015년 5개의 실험 위성이 성공 발사되었으며 ‘베이더우’2기공정은 2020년에 완성될 예정이다. 


사용가치에 있어 ‘베이더우’항법시스템이 만약 다른 위성과 협력해 함께 일한다면 그 효과가 더욱 잘 구현될 것이다. 현재 ‘베이더우’는 국가안보에 있어 긍정적인 역할을 발휘하고 있다. 예를 들어 군사영역에 있어 이전에 전략미사일은 발사 후 자체의 정확한 위치 확인에 의지해야 했는데 이제는 미사일이 비행 과정 중 ‘베이더우’를 이용해 정확한 항행 유도를 제어할 수 있어 낙하점의 정확도가 이전에 비해 많이 향상되었다. 또한 중국에서 출항하는 배는 ‘베이더우’항법시스템만을 사용한다. 이외에 ‘베이더우’위성항법시스템은 교통관리, 스쿨버스 운행유도, 노인 위치 확인 등과 같이 경제건설 및 일상생활에 서도 갈수록 더 큰 역할을 하고 있다. 


2020년의 국제 수준을 참조해서 우리는 열심히 ‘베이더우’를 개선하고 있으며 현 단계에 이미 서비스가 국토 주변까지 커버하는 성과를 거뒀다. 2020년 36개의 위성이 모두 성공적으로 발사되면 전세계를 커버할 수 있을 것이다.


‘베이더우’위성항법시스템은 중국 항공우주사업의 중요한 공정으로 그 발전과정 또한 마찬가지로 중국의 항공우주사업이 실제 수요에 따라 한걸음 한걸음씩 발전하고 있다는 것을 검증한다. 


유인우주선에서 달 탐사까지: 우주사업, 황금기를 맞이하다


중국의 전체 국력이 안정적으로 강성해지면서 중국의 항공우주계획도 유인우주선, 달 탐사 공정, 2세대 위성위치확인시스템, 고해상도 지상 관측 공정, 차세대 운반로켓 등 과학기술분야의 중대 전문 프로젝트를 국가 중장기 과학기술 발전 계획에 포함시켰다. 또한 일련의 국방 중점 설비 사업을 시행하는 중대한 정책 결정을 내려 항공우주사업의 번영발전을 위해 발전 방향을 분명히 제시했다. 수십 년의 힘든 투쟁과 장기간 축적된 기초 위에 중국의 항공우주사업은 큰 발전의 황금기를 맞이했다. 


2003년 10월 5일 중국이 자체적으로 연구 제작한 ‘창정2호F’ 로켓이 중국의 첫 번째 우주비행사인 양리웨이(杨利伟)를 태운 ‘선저우5호’우주비행선을 우주로 올려 보냈고 이로써 중국은 전세계에서 3번째로 독자적으로 우주비행사를 우주로 보낸 나라가 되었다. 


‘선저우5호’의 유인 우주비행 성공은 기념비적인 의미를 지닌다. 이는 중국이 유인우주비행기술에 있어 위대한 성과를 거뒀으며 독자적 지식재산권을 가진 대량의 핵심기술과 관건 기술을 획득했고, 수많은 중대한 성과를 거뒀음을 의미한다. 이와 동시에 우리나라 기초학문연구의 심화를 이끌고 정보기술과 공업기술의 발전을 추진했고, 과학기술성과의 산업화로의 전환을 가속화했고, 중국 하이테크 산업군의 형성을 촉진했음을 보여준다. 특히 자질이 뛰어난 과학기술 인재팀을 양성하고 우리나라 유인우주사업 수요에 부합하는 과학관리이론과 방법을 형성하고 대형 공정 건설에 대해 현대화 관리를 하는 귀중한 경험도 축적했다. 


중국이 유인우주공정을 시행한 이래로 수많은 항공우주종사자는 ‘양탄일성’정신의 격려와 고무를 받아 강한 애국심을 보여주었고,‘특별히 어려움을 잘 견디고, 특별히 잘 투쟁하고, 특별히 난관을 잘 극복하고 특별히 헌신할 수 있는’ 유인우주사업 정신을 키우고 널리 알려 중국 항공우주문화의 귀중한 자산이 되었다.


‘선저우 6호’, ‘선저우 7호’ 유인우주비행선이 잇달아 순조롭게 성공을 거두면서 국제사회에서 중국의 지위와 발언권도 제고되었다. 그 후 ‘선저우8호’는 ‘톈궁1호’목표 비행체와의 무인 랑데부/도킹을 순조롭게 완성했다.‘921’유인우주계획의 중요한 성과로서 ‘톈궁1호’와 ‘선저우9호’, ‘선저우10호’는 유인 랑데부/도킹에 성공해 중국 항공우주 역사의 중요한 장을 열었다. ‘톈궁2호’우주실험실은 발사 성공에 이어 ‘선저우 11호’유인우주비행선, ‘톈저우1호’화물비행선과 잇달아 랑데부/도킹을 진행해 유인우주공정의 2단계 목표를 실현하고 최종적으로 중국 유인우주공정의 ‘3단계’전략을 실현하고 2022년 우주정거장을 건설하기 위해 견실한 기초를 다질 것이다. 


유인우주공정이 성공적으로 시행된 후 어우양즈위안(欧阳自远)원사를 대표로 하는 중국 과학자들은 앞다퉈 달 탐사 문제를 연구하고 있다. 중국 과학자는 예전부터 달 탐사에 관심이 많았고 줄곧 중국이 심우주 탐사활동을 전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심우주 탐사 활동의 의미는 매우 중대해서 우주의 기원과 변화 및 인류의 미래 발전에 영향을 미친다. 


2004년 미국은 야심이 넘치는 새로운 우주 계획을 제정했다. 우주비행사를 다시 달로 보내 그곳에 영구기지를 세우고 달 기지를 이용해 우주비행사를 멀고 먼 화성으로 보낸다는 것이다. 이는 인류의 달 재탐사의 나팔을 불어 달 탐사의 열기를 다시 촉발시켰고 유럽, 러시아, 일본, 인도 등도 모두 유인 달 탐사 계획을 만들었다. 


현재 중국은 우주대국으로서 오늘날의 과학기술 발전을 이뤘으며 세계로부터 심우주 탐사활동을 전개할 능력이 있다는 인정을 받았다. 우리는 달 자원을 공정하게 개발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달 탐사와 평화로운 개발 이용에 있어 일정한 공헌을 해야 한다. 


2004년 중국은 ‘창어(嫦娥)프로젝트’라고 불리우는 달 탐사 프로젝트를 정식으로 전개하기 시작했다. 2007년 10월 24일 ‘창정3호 A’로켓은 ‘창어1호’달 탐사위성을 우주로 쏘아 올렸다. 지구궤도를 벗어나 달로 날아간 위성은 1년간 달 주변을 돌며 비행한 후 달에 충돌해 순조롭게 임무를 달성했다. 


‘창어1호’의 발사 성공은 중국의 강대한 국력과 관련 첨단 과학기술을 성공적으로 보여주었고, 우주의 거대한 자원을 효과적으로 확보하고 평화롭게 이용하는데 대한 중국의 결의과 행동을 보여줘 과학연구의 창의력을 높이고 민심을 응집하고 국가 경쟁력을 강화하는데 중요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또한‘창어1호’ 의 성공적 달 여행은 중국이 외계 개발과 탐사에 있어 일정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달 탐사 프로젝트 계획의 순조로운 시행은 장차 정보, 재료, 에너지, 미세 전기 기계 등 기타 첨단 기술의 발전을 이끌고 중국 우주 기술의 비약적 발전과 중국 기초과학의 전면적 발전을 촉진할 것이다. 


2010년 10월 1일 ‘창어2호’는 순조롭게 발사되어 각종 임무를 초과 달성했다. 2013년 12월 2일 ‘창어3호’는 성공적으로 발사되었고 12일 후 달 연착륙과 달 표면에서의 순찰탐사, 달표면의 형상과 지질구조 조사 등 과학적 탐사를 성공적으로 시행했다. 다음 단계에서 ‘창어5호’의 주요 과학적 목표에는 장차 착륙지역에 대한 현장 조사와 분석, 그리고 달 샘플의 지구 귀환 후 분석과 연구가 포함될 것이다. 


장차 중국은 자신의 실제 상황을 결합해 그것과 상호 적합한 미래 달 탐사 계획과 화성 탐사를 포함한 기타 행성에 대한 탐사계획을 제정하고 눈부신 항공우주 사업의 역사를 계속 써나갈 것이다. 


우주사업 발전과 우주 강국 건설: 끊임없는 우주의 꿈


중국 항공우주사업은 거시 계획에 따라 착실하게 발걸음을 내디디며 끊임없이 앞을 향해 발전해 나가고 있다. 미래에는 더욱 광활한 발전 전망이 있을 것이다. 


안정적으로 중대한 전문 프로젝트를 시행하는데 있어 ‘톈궁2호’우주실험실은 우주정거장에 필요한 재생 생명보호기술과 우주 보급 기술을 평가하고 또한 잇달아 유인우주선 및 화물우주선과의 도킹을 진행할 것이다. 이후 장기간 사람들이 궤도에서 관리하는 우주정거장을 건설하고 대규모의 우주과학연구와 응용프로젝트를 진행할 것이다. 


달 탐사 공정은 착륙지점의 형상탐사와 지질배경실사를 기초로 유인 달 착륙의 전 과정에 대해 시뮬레이션을 진행해 미래 유인 달 착륙의 안전성과 신뢰성을 높일 것이다. 이와 동시에 중국은 심우주 탐사와 우주과학 발전을 가속화하고 적절한 시기에 화성 선회 탐사, 소행성 동반 비행, 심우주 태양 천문대, 태양 극지 탐사, 화성 샘플 채취 후 귀환 등의 프로젝트 방안을 제출해 심우주 탐사와 우주 과학 발전을 위해 기술적 지원 제공을 가속화할 것이다. 


베이더우 위성항법시스템 공정은 지역 위성항법시스템을 기초로 2020년 무렵까지 30개 위성으로 구성된 고정밀 수동 위성항법시스템을 전면 건설해 전세계에 정밀도와 신뢰도가 높은 위치확인, 항행 유도 및 시간 동기화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동시에 우리는 현재의 응용 위성 체계를 지속적으로 개선할 것이다. 펑윈(风云)4호 광학탐사기상위성, 해양 레이더 관측위성, 육지자원관측 등 위성을 연구 제작 발사하고, 지속적으로 통신, 기상, 해양, 자원 등의 위성 시리즈를 완벽히 갖추고 경제 사회 발전 수요를 만족시키는 우주 인프라를 건설할 것이다. 


위성 응용 분야에 있어 중국은 장차 ‘둥방홍 5호’이라는 대형 통신위성 플랫폼과 첨단 위성이동통신시스템, 광통신, 광대기탐사레이더, 고해상도 적외선 영상 등 시스템과 부하 기술을 발전시킬 것이다. 독자적 펄서 항행 유도, 양자 정보 및 신형 우주 추진 등 기술 탐색과 우주 응용 연구를 전개할 것이다. 갈수록 증가하는 경제사회발전수요를 만족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기술을 비축해 나갈 것이다. 이와 동시에 첨단 우주 기술이 에너지 절약 및 환경 보호, 차세대 정보, 바이오, 첨단장비제조, 신 에너지, 신자재 등 전략적 신흥 산업으로 전환되는 것을 추진할 것이다. 


항공우주사업은 중국의 전략적 첨단 과학기술 산업과 국가의 전략적 안전 기반이다. 항공우주사업을 발전시키는 것은 당과 국가가 중국의 과학기술사업 발전을 추진하고 중국의 경제 실력, 과학기술 실력, 국방실력과 민족의 응집력을 증강하기 위해 추진하는 부국부강의 전략적 정책 결정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광활한 우주를 탐색하고 우주사업을 발전시키고 우주강국을 건설하는 것은 우리가 꾸준히 추진해온 우주의 꿈이라고 지적했다. 여러 대에 걸친 우주인들의 지속적인 투쟁을 거쳐 중국의 우주사업은 ‘양탄일성’, 유인우주비행, 달 탐사로 대표되는 눈부신 성과를 거뒀고 자력갱생과 자주혁신의 발전여정을 거쳐 견실하고 풍부한 우주정신을 축적했다. 


중국 항공우주사업 60년 발전의 경험자와 목격자로서 나는 새로운 60년동안 지속적으로 과학발전을 추진하고 실속 있고 조화로운 발전을 추진한다면 중국우주사업의 더듬이가 더욱 멀고 먼 우주까지 뻗어나갈 것이라 확신한다. 


(글쓴이는 운반로켓 및 위성기술 전문가로 중국 우주 과학기술 그룹 고위급 기술고문이자 중국과학원의 원사 겸 국제우주항공과학원의 원사다. ‘양탄일성’ 분야의 공헌으로 2009년 국가 최고 과학기술상을 수상했다.)

 

[저작권자ⓒ 중국신문주간 한국어판.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카카오톡 보내기 카카오스토리 보내기 daum
온라인팀 다른기사보기
  • 글자크기
  • +
  • -
  • 인쇄
  • 내용복사

헤드라인HEAD LINE

포토뉴스PHOTO NEWS

많이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