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은 직장인들의 묘지명과도 같은 것이다

사무실 칸막이는 표준화된 ‘사람을 감시하는’ 공간이다. 사람들의 모습과 말투, 행동을 감시할 뿐만 아니라 그들의 상상력을 틀 속에 가두기도 한다.
오재헌 기자 newschina21@naver.com | 2019-03-16 10:3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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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신문주간 한국어판

 

 [중국신문주간 한국어판 오재헌 기자]

 “엄마와 아빠는 출근했어요.”

현대 도시의 한 평범한 사내 아이에게 ‘출근’이란 단어는 곧 ‘일’이라는 뜻이다.

 

교사 가정에서 자란 아이에게 ‘출근’은 ‘가르치는 것’이 될 수 있고 장사를 하는 집안에서 자란 아이들에게는 ‘물건을 파는 것’이 될 수도 있으며 노동자 가정의 아이들에게는 ‘우물을 파는 일’이나 ‘쇠를 두드리는 일’, ‘자동차 수리’가 될 수도 있다. 그럼 출근이란 무엇일까? 출근은 제대로 된 일은 할 것이 없지만 밤낮없이 바쁜 사람들이 만들어 낸 개념이란 말인가.
 

‘직장의 비밀 역사’라는 책을 보면 확실히 출근에 대해 이런 의미로 해석했다. 출근이라는 개념은 근무 대상에 따라 정해진게 아니라 장소에서 나온 개념이다. 사무실에 앉아 있으면 무엇을 하든 중요하지 않다.

 

스테이플러로 한 묶음의 종이를 찍어 한 페이지씩 읽어보든 아니면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든, 회의를 하든 컴퓨터로 이것저것 검색을 하든, 가만히 앉아 다른 생각에 잠기든 다 ‘출근했다’고 이야기한다. 

 

이상적인 상황에서 사무실은 서재처럼 바닥에서부터 천장까지 책으로 도배돼 있어야 있으며 그 사이 공간을 활용할 수 있는 사람은 가장 많아야 두 사람이다. 그러나 이는 이상에 불과하다. 현실적인 사무실은 직원들에게 집과 같은 느낌을 주지 않을 뿐 더러 잠깐 머물렀다 가는 공간이라는 느낌이 들게 한다. 

 

제2차세계대전 후부터 사무실은 ‘칸막이’라는 단어와 연결되어 있었다. ‘출근하는 사람’은 매일 3면으로 된 칸막이에 둘러싸인 책상에 앉아 있으며 칸막이 높이 때문에 서로 쳐다보지도 못한다.

 

일어서보면 전체 사무실 풍경이 다 한눈에 들어와 사적인 공간을 확보하기 힘들지만 사람들은 사람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일하고 싶어할 때가 있다. 명암은 상대적인 것이며 감독과 견제, 협박, 위협까지 난무할 수 있는 공간이기 때문에 아이들은 이 공간을 재미없는 장소라고 한다. 그들은 이른바 정치는 어른들의 놀이라고 생각한다. 

 

사무실은 아무리 사용해도 다 쓰지 못할 종이와 펜, 메모지, 압정, 접착 테이프, 봉투, 잉크 팩 등의 물건으로 둘러 쌓여 있으며 계속 반복될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사무실 용품이 주는 쾌감이란 새로 펼친 공백의 백지와도 같아 처음에 사용할 때에는 조그마한 즐거움을 가져다 준다. 

 

사무실과 연결된 또 다른 단어는 ‘화이트 칼라’다. <직장의 비밀 역사>에서 화이트 칼라는 처음에는 비꼬는 단어로 나타났다.

 

이 단어는 지난 세기 초 미국을 떠들썩했던 좌파 작가 업튼 싱클레어가 만들어 낸 단어이다. ‘지위가 낮은 가난한 사람들을 조롱하기 위해 만들어진 단어’이고 스스로는 가난하고 남루한 노동자들과 다른바 문서관리와 타이핑을 할 수 있어 그 재능으로 통치계급의 지위에 오를 수 있다는 오만함에 기반해 만든 단어이다.

 

나중에 계급투쟁이 느슨해지면서 ‘화이트 칼라’는 어떠한 감정적 색채도 띄지 않는 단어가 되었으며 안정적인 수입이 있고 반듯한 직장생활을 하지만 이른바 ‘일을 한다’는 개념을 잘 모르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 되었다. 

 

책에는 아주 많은 분량으로 사무실 환경의 변화에 대해 소개했다. 한 동안 <직장의 비밀 역사>는 언론의 뜨거운 감자가 되어 다루어졌다.

 

책에서는 사무실 환경에 대해 참을 수 없을 정도이고 사람을 질식시키며 감옥과 무덤에 비유하기도 하였다. 장부를 둘러싼 ‘출근’을 장황하게 늘어놓는 ‘출근’자체가 지루해서 환경이 답답해질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이는 웃음을 자아낼 만한 이야기이다.

 

분명 시스템에 의해 돌아가는 ‘출근’은 그 자체가 재미없는 일이지만 책에서는 환경만 가지고 논의하였고 사무실 환경이 사람들로 하여금 미칠 지경에 이르게 한다고 소개하였다. 대공장 시대에 일했던 화이트 칼라가 아닌 근로자들, 조립 라인에서 매일 반복되는 일을 하는 노동자들의 경우 일 자체에서 어떠한 즐거움도 얻을 수 없었다. 이들과 화이트 칼라 사이에는 마치 거울이 존재하는 것 같았으며 이들은 서로의 모습을 통해 자신의 몸에 감돌고 있는 부정적인 에너지의 근원을 보게 되었다.  

 

<직장의 비밀 역사>의 원래 제목은 ‘깍두기로 썰었다’는 뜻의 Cubed이고 <직장의 비밀 역사>는 부제인 ‘A Secret History of the Workplace’를 번역한 말이다. 중국어 번역본은 ‘사무실의 진화사’라는 제목으로 되어 있지만 사실 원 제목에는 더 깊은 의미가 담겨있다.

 

책은 화이트 칼라들의 칸막이형 사무실을 직장(workplace)으로 간주하고 다루었으며 근무 장소와 칸막이를 동일하게 생각한다는 암시가 들어있다. 사무실 칸막이는 표준화된 공간으로 푸코가 저술한 책의 용어로 표현하면 ‘사람을 감시하는’ 공간이다.

 

사람들의 모습과 말투, 행동을 감시할 뿐만 아니라 그들의 상상력을 틀 속에 가두기도 한다. 칸막이에서 일했던 사람이 회사를 바꾼다고 해도 단지 다른 칸막이 공간으로 이동한 것일 뿐 이것이 무언가 잘못됐다고 느끼지는 않을 것이다. 

 

저자는 말미에 구글을 방문했던 체험을 담았다. 업무환경에 대한 철학은 우리 시대에 이런 유형의 회사들이 등장하면서 실질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그러나 저자는 단지 묘사를 했을 뿐 명확한 태도를 비판적인 태도를 명확히 취하지 않았다.

 

계급은 여전히 건재하고 통치와 지배는 여전하며 돈과 자본의 패권은 약화되고 않았고 오히려 더 강화되었다. 환경의 혁명이 일할 때의 기분을 개선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일하는 보람은 과연 있을까? 아니면 일의 근본적인 의미는 무엇인가? 이 문제를 제기하지 못한 것이 이 책이 갖고 있는 아쉬움이 아닐까 싶다. 

[글/ 윈예투이(云也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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